사운드디자이너의 이어폰 이야기는 한국의 HIDITION NT-8
커스터마이징 시대에 많은 상품들은 고객에게 더욱 밀착하고자 맞춤형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분명 불편했지만 누구나 다 그렇게들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굳이 커스터마이징의 필요성을 말하지 않던 상품들. 하지만 섬세해지고 있는 고객들은 이것만큼은 커스터마이징하고 싶다는 물건들을 기업에 요청하기 시작했고, 커스터마이징의 깊이 있는 서비스가 기술이 되고 있는 시대이다. 동시에 유저의 사용감은 물론 기분까지 길어내어 제품의 철학에 배게 하는 시류 속에 있다. HIDITION NT-8은 바로 이런 시대의 흐름을 선두하며 나선 멋진 도전 그리고 그 과정이 거듭된 결정체이다. 그래서 꼭 한 번 만나보고 싶었던 이어폰이다.
유저의 사용감은 물론 기분까지 길어내어 제품의 철학에 배게 하는 시류
NT-8의 포지셔닝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NT-8의 개발사인 HIDITION에 대해 그리고 제품 라인업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HIDITION은 국내 최초로 커스텀 이어폰 개발을 시작한 개발사로서 2003년 설립되었다. HIDITION은 플래그쉽 제품들을 지속적으로 선보이며 국내외 마니아 층을 확보해 가고 있어 해외 리뷰어들의 디테일한 사용기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제품군을 보면 레퍼런스용 인이어 모니터로서의 충실한 기본기를 바탕으로 유저들의 사용 환경을 고려한 튜닝 노하우를 엿볼 수 있는 제품 라인업을 확장해 가고 있다.
HIDITION의 대표적인 모델 중에는 6개의 BA를 4 way로 구성한 NT-6 그리고 5 way로 구성한 NT-6 PRO 시리즈가 있는데 기본기가 탄탄한 제품으로 롱셀러의 명맥을 지켜가고 있다. 그 외에 Viento 모델은 넓은 재생 주파수 대역을 가지면서도 전반적으로 플랫한 특성을 구현한 제품으로서 대편성 오케스트라의 섬세한 표현력을 있는 그대로 담백하면서도 가감 없이 즐기는데 적합한 특성을 가진다. 그리고 이번 리뷰 제품인 NT-8은 NT-6와 Viento의 주된 특징을 규형 있게 조합한 모델이랄 수 있다. 음악을 그려내기 위한 하얀 도화지와도 같은 재생 대역은 넓게 유지하면서도 해상도 있는 각 대역 간 크로스오버 컨트롤이 자연스러워 음향적 기교의 표현력이 두드러진다.
또 한 가지 소개할 특별한 제품으로서 Waltz가 있다. 이 모델은 앞서 언급한 라인업에 배어 있는 HIDITION의 철학을 승계하기에 확장 가능한 또 하나의 USP(Unique selling proposition) 를 가진 제품이다. 사실 HIDITION의 다른 모델들은 유니버설 모델의 역할을 청음에 둔다. 하지만 이 Waltz의 경우는 개발 배경이 커스텀 이어폰이 아닌 유니버설 이어폰을 목적으로 개발되었다는 것이다. 사실 커스텀 이어폰과 유니버설 이어폰과의 간극의 존재는 필연적이지만 HIDITION의 소리를 오롯이 전달하고자 하는 모토의 연장선상에서 유니버설 전용 이어폰을 개발하게 되어 비로소 Waltz가 탄생하게 되었다고 한다.
HIDITION제품의 전체적인 또 하나의 특징은 하우징 설계에 대한 부분으로서 드라이버를 감싸는 하우징에서 내이로 이어지는 노즐 부분이 타 브랜드에 비해 길게 설계되어 있다. 그 이유에 대해서 이미 예상하거나 차이를 느낀 분들도 있겠지만 확인해 보니 재생부에서 고막에 이르는 내이의 다양한 구조속에서 반사나 회절로 인한 재생 특성의 변인을 최소화시키고자 하는 의도가 깔려 있다고 한다. 이러한 HIDITION 제품군에 대한 이해를 토대로 NT-8의 포지셔닝을 염두하면 이 글이 더욱 도움이 될 것 같아 본론을 이어가기에 앞서 훑게 되었다.
이제 NT-8의 실력을 낱낱이 들어보고자 필자는 고음역, 중음역, 저음역대 각각이 두드러지는 보컬과 악기 연주를 시작으로 다양한 영상매체들 - youtube 영상물, 고음질 영화, 드라마, 예능 프로 등의 청음을 위해 NT-8을 꽂아보았다.
자, 그럼 이제 고음역대부터 살펴보자.
보컬로는 아이유, Sia의 음악들을 활용했으며 악기 연주는 Violin 작품들을 선정하여 들어 보았다. NT-8은 아주 정직하게 고음 보컬의 색깔과 성질을 쭉쭉 뽑아낸다. 아이유의 쥐어짬 없이 고음으로 상승하는 순수하고 맑은 고음도, 세상을 향해 분노하듯 소리 지르는 Sia의 강인한 고음도 보컬 각각의 성질을 고스란히 담아서 포장 없이 들려준다. 가식이 없다. NT-8의 그런 강한 에너지 전달에 필자가 어지간해서는 올려보는 볼륨의 크기까지 올릴 수는 없었다. 고음 대역의 상승감이 타대역 대비 민감하다. 그래서인지 고음부의 고음 보컬의 강인함과 청자 앞으로 더 많이 나와 있는 정위감 때문에, 배경 음악을 들여다볼 접근 자체가 어렵다. 분명 배경 음악 안에도 NT-8의 실력이 숨어있는 것 같은데 거리 확보를 어렵게 하는 고음의 에너지에 일단은 일보 후퇴했다. 그래서 Violin 연주는 무반주 독주 연주만을 들어 보았다. 연주를 플레이하자마자 “와아~!” 찬사가 튀어나온다. Violin선율이 NT-8을 투과하자마자 귀 안으로 스펙트럼이 부채처럼 활짝 펼쳐지며 독주 연주라고 여겨지지 않는, 모두 다른 얼굴의 선율들이 여기저기서 등장해 댄다. 바흐의 파르티타 선율들이 입체적으로 건축물을 올리듯 작품을 그려낸다. 파가니니의 야성적인 작품에서도 휘몰아치는 에너지 속에 섞이지 않는 개별적인 선율들이 독립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보인다. 우와! 멋지다! 뭔가 NT-8에게 숨겨진 더 큰 재능에 대한 기대가 커지며 중음역대로 자리를 옮겨 본다.
바흐의 파르티타 선율들이 입체적으로 건축물을 올리듯 작품을 그려낸다
중음역대 음악으로 Chie Ayado, Adel, Jazz ensenble을 만나본다.
고음역대 보컬과 달리 중음역대 보컬에서는 볼륨업이 가능했다. 그 덕에 보컬을 감싸 안는 반주 악기를 더 가까이서 보게 된다. 아마도 안정적이면서도 공격적이지 않은 탄탄한 중음역의 보컬이 무대에서 좀 더 들어가서 서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역시나 고음으로 상승할 때는 급상승하는 에너지로 볼륨 조절이 필수이다. Jazz 앙상블 연주 역시 훌륭하다. 각 악기의 자리한 위치가 비대칭적이면서도 입체적이어서 현대작품이 연상되는 무대가 그려진다. 그런 독특한 무대에서 각 악기가 자리를 지키며 로테이션하며 카덴차를 연주하는 모습이 흥미롭게 보인다. 찰지고도 탄력 있게 연주되는 봉고의 연주 맛에 흠뻑 젖어보는 시간이었다.
이제 대망의 저음역대 확인을 해 본다.
언제나처럼 바렌보임의 Beethoven symphony no.7 2악장의 저음 악기들과 BTS의 킥과 베이스를 중심으로 청음에 들어간다. 먼저 BTS의 작품들을 훑었다. NT-8은 뻥튀기를 하지 않는다. 자체의 능력을 극사실주의로 들려주는 모델이다. 먼지 날리는 효과나 높은 천장감을 그려주지는 않는다. 그런 효과가 있다면 분명 더 좋을 음악들에게는 아쉬움을 줄 부분이다. 또한 마찰음들의 강한 어택으로 볼륨을 키우지 못해서, 킥과 베이스의 둥둥댐을 느끼기에도 좀 무리가 있다. 하지만 진한 화장보다는 민낯을 선호하는 요즘, 사실주의를 지향한 NT-8의 BTS의 음악은 남다른 맛을 전해주었다. 그러나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정말 대단한 것은 베토벤의 교향곡이었다.
NT-8에게 정말 와우~!!! 브라보~!!! 를 외치게 한 청취였다. NT-8의 진면모를 보려면 역시 대편성 교향곡을 투과시켜야 한다. NT-8으로 투과된 Beethoven symphony no.7 2악장의 서두는 저음 현악기인 첼로와 콘트라베이스의 무거운 발걸음이 음산히 흐른다. 특히 콘트라베이스의 심장의 막까지 진동시키는 무거운 울림은 정말 담아내기 어려운 저음 중 하나이다. 그런데 NT-8이 아무렇지 않게 한가득 담아냈다. 아니 그러고도 남아 돌아서, 청자가 들어보지 못한 온갖 소리들을 들려주기 시작했다. 현악기 군단이 활을 보잉하며 움직일 때 내는 의자의 삐그덕 소리, 음악의 프레이징과 방향이 바뀔 때 새로이 끌어모으는 연주자들의 호흡소리, 귀 안의 청력 세포들을 더욱 쭈뼛쭈뼛하게 세우는 놀라운 소리들이 음악과 함께 들려오며 현장감이 고조된다. 그것만이 아니다.
연주자들의 호흡소리, 귀 안의 청력 세포들을 더욱 쭈뼛쭈뼛하게 세우는 놀라운 소리들이 음악과 함께 들려오며
NT-8은 각 악기 배치를 아주 넓은 무대에 널찍널찍하게 펼쳐놓았다.
그리고 각 악기 군단이 거침없이 소리를 쭉 빼도록 길을 쭉쭉 뻗어놓았다. 그래서 각 악기가 기량껏 최대의 소리를 뻗어낸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각 악기 소리가 낱개 포장된 듯 섞이면서도 그 독자성을 유지한다. 그러니 악기 소리의 세포 하나하나가 살아서 전체 유기체를 만들어가고 그러니 음악은 살아서 움직인다. 음악이 움직이는 게 보인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하우스에서 유일하게 운영하는 스코어-데스크 석 (score desk seat)이란 것이 있다. 말 그대로 악보를 보면서 음악을 감상하도록 배려된 좌석을 말한다. 최근 예술의 전당에서도 운영을 시도하고 있는 좌석이기도 하다. 그런데 NT-8이 필자를 그 스코어 데스크 석에 앉혀 준 느낌이었다. 악기군 하나하나의 역할을 일일이 설명해주며 모든 악기군을 충실히 다 보여주고 있었다. 악기 편성이 복잡해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을 넓은 스펙트럼으로 NT-8은 무대를 한껏 넓혀서 보여줄 태세였다. 너무도 흡족스럽고 정말 몇 번을 반복하여 여러 교향곡을 감상한 행복한 시간이었다.
NT-8로 다양한 영상물들을 시청하며 감상해보니, 재미있는 구성으로 소리를 배치하여 들려줌을 감지할 수 있었다. 전경, 중경, 배경으로 나뉘어 소리들이 통합적으로 전달은 되면서도 각각이 낱개 포장되어 사운드가 탱글탱글 귀에서 따로 구른다. 정보 전달을 넘어선, 소리의 배치로 다시 그려지는 영상물 감상이 더 입체적이게 느껴진다. NT-8로 본 뮤지컬 감상 역시 칭찬하고 싶은 경험이었다. 필자도 커스텀 계열의 이어폰 리뷰는 경험이 적어서 인지 몰라도 NT-8에 단숨에 매료된 소감이다.
이제 NT-8의 강점을 중심으로 전체 평가를 한다면, NT-8은 소리의 넓은 스펙트럼을 만들어내는 프리즘이다. NT-8을 통과하는 작품들은 일류 셰프들이 쓰는 넓은 플랫 그릇에 담기듯 원재료들까지 속속들이 들여볼 수 있게 나열 배치된다. 그러니 이것저것 재료가 많이 들어간 대편성 작품들을 NT-8로 감상하면 넓은 무대와 각 소리의 독자성이 만들어낸 하모니를 충분히 즐기는 경험을 할 수 있다. 그러면 NT-8은 완벽한 물건인가? 떡볶이를 플랫 접시에 담아먹지는 않는다. 자고로 떡볶이는 먹는 내내 호호~불며 먹게 만들어 주는, 뜨거움을 지켜주는 움푹 들어간 그릇에 담아야 제맛이다. NT-8의 플랫함으로는 담을 수 없는 핫한 맛이 중심인 음악들은 NT-8로는 그 맛을 잃을 수도 있다. 각 음식마다 어울리는 그릇이 있듯, 커스텀 이어폰도 그러하다. 좋은 재료를 많이 넣었고 그 가치를 한껏 뽐내고 싶은 요리를 넓은 접시에 그림처럼 폼나게 데코레이션하는 것처럼, 대편성 작품들에서 더욱 빛을 발할 NT-8의 활약을 기대해본다.
NT-8은 소리의 넓은 스펙트럼을 만들어내는 프리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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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글과 사진은 필자가 프리미엄 헤드폰 가이드 매거진에 기고한 리뷰 글에 근거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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