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운드디자이너의 이어폰 이야기
64 Audio사는 2010년에 설립된 미국의 커스텀 인이어 메이커로서 타 브랜드에 비해 BA 드라이버를 많이 탑재하는 모델을 주로 개발하는데 18개를 탑재한 모델까지 라인업 되어 있다.
이번에 리뷰하는 Fourté Noir에 대한 몇 가지 기술적 특징을 보면, 다이내믹 드라이버와 BA 드라이버를 함께 탑재한 보기 드문 모델이다. tia(Tubeless In-ear Audio) 기술의 적용으로 오픈형 BA 드라이버가 탑재되어 있는데 표현 그대로 드라이버를 밀폐시키지 않으므로 소리를 전달하는 사운드 튜브도 없다. 이렇게 하여 드라이버 자체의 포텐셜을 극대화하고자 했다는 것이 개발사의 의도라고 한다. 그리고 리스너의 고막에 대한 부담을 최소화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제2의 고막이라고도 불리는 apex(Air Pressure Exchange) 기술을 개발 적용하여 불필요한 음압을 흡수하는 시스템을 가진다.
그러면 이제 실제 사운드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하는데 먼저 64 Audio Fourté Noir라는 네임을 보면 Noir에 꽂히지 않을 수 없다. 단순히 제품의 알루미늄 술의 블랙톤 색상을 두고 Noir라는 이름 붙였을지도 모르겠지만, 누아르 장르 작품들의 어두운 이미지처럼 사운드의 깊고 어두운 정서와 관련이 있지 않을까 하는 넘겨짚는 기대감을 갖게도 된다. 사실 누아르 영화라든지, 누아르 소설이라고 하면 보통 비정하고 암울한 암흑가를 무대로 한 장르의 작품들이 연상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니 필자는 암울한 암흑가를 연상하며 64 Audio Fourté Noir로 music tour를 시작해본다.
먼저 각 음역대별 음질의 성향 파악부터 해볼까 한다.
개발사에서 Fourté Noir를 “새롭게 튜닝하여 더욱 풍부하고 따뜻해진 저주파 반응과 업그레이드된 프리미엄 케이블을 통해 부드러운 고주파 반응을 선보”이는 제품으로 소개하였다. 그렇다면 정말 그런지 카피를 기억하며 천천히 음미하며 들어보고자 한다. 먼저 저음역대를 충분히 느끼게 해주는 음질의 성향에는 양감과 탄력성, 타격감을 꼽는다. Fourté Noir의 저음은 넘치는 양감을 자랑할 만하다. 풍년이라고 말하고 싶을 정도이다. 흔히들 넉넉해 보이는 분들에게서 기대하는 인자하고 푸근한 인상처럼, 저음의 양이 많으면 따뜻한 느낌도 같이 상승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시너지 효과이다. 그러니 개발사에서 말한 “더욱 풍부하고 따뜻해진 저주파” 평가란에 확인 도장을 눌러본다.
그럼 탄력성과 타격감에 대해서는 어떨까.
몸통이 큰 사람들이 둔하고 순발력이 떨어진다고 생각한다면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다. 그런 사람들 중에도 근력 좋은 사람들 예를 들면, 씨름 선수들을 빗대어 보면 그들이 상대 선수들을 쓰러뜨리기 위해 사용하는 허리와 다리의 기술들에는 근력이 기초가 되어야 한다. 양감이 많은 소리들도 사실 근력 높은 탄력성과 타격감을 가지려면 응집시키는 힘이 필요하다. Fourté Noir의 저음역대는 “양” 대비 탄력감과 타격감이 강하진 않다. 아니 탄력감과 타격감마저 둥근 듯 느껴져 따뜻함이 있다. 이런 성향은 온기감이 높고 윤기 있는 음악을 들려줄 수 있다. 그리고 포용력 있는 넓은 그릇처럼 장르 구분 없이 잘 담아낼 수 있다. 물론 좀 더 공격적이고 직선적인, 저음의 힘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아쉬움을 줄지 모르지만 말이다. 그래서인지 대편성 작품의 저음 악기인 콘트라베이스 군이 소리의 화면에 다 잡히지 않는 느낌이었다. 그 초저음역대의 moving을 섬세하게 그려내지는 못하는 안타까움, 바닥까지 끌고 다니는 저음들을 다 긁어모아 응집하여 다 잡아 들려주는 욕심의 부재, 심장으로 직격타를 날리는 킥과 베이스들의 공격력의 저하들이 아쉽다. 하지만 따뜻하고 성격 좋은 Fourté Noir에게 너무 까칠한 요구사항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다음 영역대로 넘어가 본다.
중음역대가 의외롭다.
나중에 음색 파트에서 얘기를 또 하겠지만, 중저음들이 예전에 듣던 톤에서 한 꺼풀 박피를 한 느낌이랄까... 그래서 완전 딴 음악처럼 감상하게 된다. 높아진 해상력 덕에 분리력 있는 스테이지의 움직임을 느끼게 된다. 그러면서도 두드라지게 강조되지 않는 음역대여서인지 부각되지도 않고 조화력 있게 저음과 고음 사이를 흘러 다닌다. 중음의 양은 저음과 함께 양이 많다. 하지만 저음과 다른 점은 좀 더 응집되어 있다고나 할까... 저음에서는 아쉬웠던 근력 같은 게 느껴진다. 그래서 더 탄탄한 음악의 흐름을 잡아 무대를 도는 게 느껴진다. 저음을 데리고 다니는 친절한 중음 언니라고나 할까... 주관이 있고 적극성이 앞서는 중음역대의 숨은 성향이 여러 음악을 들을수록 드러나는 것 같아 내심 기특하다.
이제 개발사가 소개한 “부드러운 고주파”영역을 체크해보자.
Fourté Noir도 해상력이 높은 제품들의 공통적 장점을 모두 갖고 있다. 선예감 있고 표현력이 뛰어난 선율들, 색채감 있게 들리는 음악이 있다. 하지만 이런 장점들에 항상 따라다니는 장미의 가시들이 있다. 치찰음들이다. 대개 고음의 우주 끝까지 올라가려는 그 정기를 받으려고 볼륨을 한껏 키웠다가 되려 공격당하며 음량을 줄여야 하는 사태를 만드는 반대 세력이기도 한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들이 개발사 저마다의 기술이라고 본다. Fourté Noir도 치찰음이 없지는 않다. 그런데 고음의 두께가 얇게 뽑히지 않는다. 제법 두께가 있어서 더욱 불편한 치찰음들이 존재하는데, 적당히 살짝 뭉개며 당당하게 직진한다. 그래서 이미 줄일 볼륨도 한 발 늦게 줄이게 되고 한껏 줄이기보다 반에 반만 줄이며 고음에서 귀를 떼지 않게 만든다. 그렇게 줄인 안정적인 볼륨에서 고음역대는 활개를 편다. 고음역대의 두께를 최대한 뽑아내면서도 치찰음을 줄인 볼륨을 찾아낼 때, 높게 평가하는 제품은 다른 음역대의 장점을 지우지 않는 최소의 양보 혹은 배려가 배인 제품이다. 그런 면에서 보았을 때 Fourté Noir는 적절한 만큼의 양보를 하면서 그 선에서 부드러운 고음역대가 다른 음역대와 조화를 이룬다.
사실 Fourté Noir에게 해주고 싶은 칭찬은 이제부터다. 바로 “해상력”이다.
SD급 영상을 보다가 UHD급으로 영상을 볼 때의 그 충격적인 ‘선명함’이란 마치 까막 귀에 맑은 눈을 달아주어 비로소 보이게 되는 그 찬란함과 같은 것들을 새로이 경험하게 된다. 해상력이 좋다는 타제품들과 비교해 볼 때 Fourté Noir에게는 “박피의 기술”이 들어 있는 듯하다. 한 꺼풀이 들어내 져서 속살을 듣는 듯한 해상력이다. 그래서 처음 중음역대가 이상하리만큼 분간이 안된다. 하도 맑게 잘 들려서 중저음 보컬이 고음 가수인 줄 착각할 정도이다. 해상력이 좋아지면 함께 좋아지는 것들로서 개방성, 색채감, 선예감도 모두 좋다. 해상력이 높으므로 전반적인 음색의 성향은 밝다. 무겁기보다는 가벼운 편이며, 차가움보다는 따뜻함이, 딱딱함보다는 부드러움이 느껴진다. 하지만 박피한 사운드라지만, 얇지 않으며, 공격적이지도 않다. 하지만 양감이 있기에 힘 있는 직진성 있는 음악들을 구현한다. 아쉬운 점은, 필자가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무대감이 잘 형성이 안되었다. 해상력이 좋기는 하지만 무대의 구성과 홀 안의 천정까지 느껴지는 공간감을 갖다 대령해주는 기술은 아직 부족한 듯하다. 그렇기에 입체감에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다른 뛰어난 능력이 있다. 신기하게도 조절되는 볼륨을 따라 다르게 들리는 무대의 정교함의 차이가 비교적 적다는 것인데 다시 말해, 볼륨을 높였을 때보다 볼륨을 낮추었을 때 압축된 정교함에 더 박수가 나온다. 극강의 정교함으로 만들어진 미니어처 집을 구경하듯, 조절된 볼륨 안에서 극강의 정교함을 모두 붙잡고 유지해내는 신기한 해상력에 정말 갈채를 보낸다.
네이밍은 참 중요하다.
대부분은 이름에서 오는 느낌을 인상과 결부시키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이든 제품이든 상호명이든, 이름을 통해서 본질을 이미지화하려 노력한다. 그런데 요즘은 “의외”의 효과로 성공을 거두는 케이스들을 본다. 이름에서 느껴지는 이미지와 실제 느낌이 반전인 것들도 있고 한편으로 그 의외로 인해 더 잘 기억되는 것들이 있다. Fourté Noir가 실제 그런 의도를 가졌든 그렇지 않았든 그런 효과가 오는 이름과 본질의 차이를 정리하자면 필자가 처음 Noir에서 연상한 어둡고 무거운 이미지는 한방에 날아가 버렸다. 박피의 기술을 가진 Fourté Noir의 미친 해상력과 환해지는 이 맑음은 세상 어떤 음악에든 등불을 비춰준다. 그러니 진짜 아이러닉한 네임이다. 진심으로 왜 Noir라는 이름을 선택했는지 개발진에게 물어보고 싶다. 성형한 사람들은 눈에 띄게 달라 보이지만, 박피한 사람들은 뭔지 모르게 달라 보인다. 이 은근슬쩍 달라 보이는 박피의 기술로 내가 좋아하는 음악들을 모두 대입해서 들어보고 싶을 뿐이다. 여러분도 한정판이라고 하니 있을 때 서둘러 경험해 보시길 권해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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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제조사 웹사이트와 본 원고의 기고 매거진에서 발췌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