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운드디자이너의 이어폰 이야기
뮤지션이자 사운드 엔지니어였던 Franck Lopez가 2005년에 설립한 EarSonics은 프로페셔널 인이어 모니터를 개발하는 프랑스의 메이커이다. 프랑스의 자사 공장에서 개발, 생산 및 패키지에 이르는 모든 공정을 관리하며 독자적으로 엄격한 기준을 유지하며 고품질 제품을 출시하고 있다. 그리고 이번 리뷰 모델인 유니버설 IEM Grace를 발표했다. EarSonics Grace는 10개의 BA 드라이버를 탑재한 모델로서 EM10과 DNA의 일부를 공유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제 새로운 사운드를 느낄 수 있는 완전히 다른 세계에 발을 내딛으셨습니다.” - Franck Lopez
나는 매달 새로운 이어폰(헤드폰)을 받게 되면 데이트 앞의 설렘을 느낀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 시간은 항상 짧고 조금은 미안한 시간이다. 제품을 시간을 두고 애정을 갖기 위해 알아가는 과정이라기보다 평가를 위한 차가운 매스의 난도질하는 시간이 되기 때문이다. 물론 비인격적 사물이어서 기분은 안 상하겠지만. 그래서 이번 제품부터는 평가를 위한 시간이 아닌, (데이트를 하는 마음으로) 알아가는 과정으로 시간을 보내자는 마음을 갖고 귀에 꽂았다. 사람마다 존중받아야 할 개성이 있는 것처럼 제품에도 존중받아야 할 개성 같은 성능이 있음으로....
데이트 코스는 보컬 고음역대, 중음역대, 저음역대 음악들로 시작해서, 영화, 그리고 재즈 기악 앙상블 공연, 클래식 협연과 교향곡으로 잡았다. 이 코스는 언제나 정해져 있는데, 같은 잣대로 제품마다의 개성 차이를 분별하려는 의도이다. 그리고 편안 차림에서 정장 차림으로 다양하게 데이트하듯, 다양한 볼륨과 장시간 착용 그리고 흘려듣기에서 집중 듣기까지 다양한 각도로 만나보았다.
보컬 뮤직에서 만난 EarSonics Grace는 보컬 동설 (천동설에서 따온 필자의 표현) 능력을 과시하는 제품이었다.
어떤 음역대의 보컬을 들어보아도 언제나 보컬이 중앙에 가장 또렷하고 크게 자리 잡혀 있다. 그리고 배경 음악은 보컬을 감싸며 주위를 맴돌 듯 움직이며 흐른다. 정말 보컬동설이라는 표현이 딱 맞다. 하지만 보컬은 움직이지 않는다. 고음역대 보컬에서 필자는 고음의 얇기와 거친정도로 음질에 대해 이야기하는데,이제 Sia, 이하이, 아이유를 통해 제품의 고음 성능을 듣는다. EarSonics Grace는 고음의 직진성을 살리면서도 고음을 너무 가늘지 않게 뽑아냈다. 파찰음에서 생기는 날카로움이 마모되어 있지만 고음의 파워풀함과 표현력이 통쾌하게 전달된다. 이것은 고음을 서포트하는 두툼한 중음역대의 공이 아닐까 싶다. 중음역대 보컬에서는 중음의 양과 고음과의 조화력에 포커스하여 Adel, Chie ayado, 볼 빨간 사춘기를 들어보았다. 안정적이고 두툼한 중음역대의 양감은 무대에 가득 차며, 공간을 빈틈없이 꽉 채운다. 그래서인지 고음과의 매끄러운 이음새 역시 좋다. 저음역대 음악으로는 박효신, EDM-BTS를 듣는데, 필자가 저음의 양감과 탄력성, 타격감을 느끼는 데에 좋은 뮤지션들이다. 저음의 양감이 풍부하다. 선율 감 있는 음악의 물결치며 고막으로 전달되는 파동 감이 에너지 있게 밀려온다. 그런데 타격감에서는 의외이다. 보컬 중심적 성능이어서인지 퍼커션의 타격감이 살짝 한발 뒤에 있다. 그래서 더 쫀쫀한 탄력성을 느끼기에는 아쉬움이.. 그래서 다시 보컬들을 여러 차례 돌려 들었다. 그리고 EarSonics Grace의 개성을 이해했다. 보컬동설이 맞다. 보컬을 중심으로 음악이 돈다. 특이한 것은 보컬에 입혀진 진한 테두리선이다. 이렇게 보컬을 도드라지게 배경음악과 분리시켜놓고 보니 배경음악 역시 풍부한 양감으로 적극적이다. 그러니 전체적으로 풍부한 성량을 가지고 음악이 흐른다. 다만 이만한 성량에 비해 저음역대의 퍼커션의 박동감과 타격감의 감동은 살짝 아쉽다.
EarSonics Grace로 영화를 보았다.
해상도가 높지 않은 편이다. 되려 가공된 소리의 느낌이 자주 비쳐서 현장감보다는 세트장의 느낌을 갖게 되는 순간들이 있다. 소리가 전반적으로 맑지 않지만 귀에 담아지는 소리의 양은 많다. 어쩌면 이 녀석은 음악에 최적화되어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다.
EarSonics Grace의 보컬동설의 능력으로 재즈 기악 앙상블을 들었다.
Breno Vircimo Group, Japrs hires의 앙상블을 통해 필자는 악기 배치와 악기 간의 분리력, 스테이징과 공간감, 온기감을 챙겨 듣고 싶어 한다. EarSonics Grace는 공연장의 크기를 가늠하기 어려울 만큼 무대가 가깝게 포커싱이 되어있다. 그래서 귀 안으로 들어오는 화면은 연주 악기들로 꽉꽉 차 있다. 그래서 전체 공간감을 가늠하기에는 어려웠다. 하지만 충분히 가까운 무대로 인해 음악의 성량은 대용량이다. 다만 가까운 만큼 당연히 보이고 느껴져야 할 섬세함과 선예감은 의외로 두리뭉실하다. 악기 간의 간격은 철저히 떨어져 있지만 조화력이 잘 느껴지는 무대를 들려준다. 중음과 고음 간의 조화력이 훌륭해서 연주 전체에 온기가 높아 앙상블 연주에서의 조화력, 연합력을 강하게 보여준다. 다만 악기 하나하나의 개성을 낱개 포장하는 섬세함은 없다는 것.
공연장의 크기를 가늠하기 어려울 만큼 무대가 가깝게 포커싱이 되어있다.
EarSonics Grace의 전반적 특성을 종합하여 이해할 수 있는 마지막 데이트 코스로 클래식 협주곡 Tchaikovsky : Piano Concerto No.1, Pablo de Sarasate : Zigeunerweisen Op.20과 교향곡 Beethoven : Symphony No.7 in A major op.92를 감상했다.
EarSonics Grace는 보컬동설의 능력으로 협연 악기를 곡 중앙에 존재감 크게 자리 잡아 준다. 오케스트라는 철저한 배경음악으로의 역할에 위치해서 협연 악기가 주연이 되도록 뒤에서 조화롭게 하나의 움직임이 무대를 더욱 간결하게 들려준다. 주인공과 배경의 역할을 정확히 구분 지어주어 클래식 입문자들에게 친절한 가이더 역할을 해줄 것 같다. 교향곡에서 필자는 저음, 중음, 고음역대의 밸런스와 악기 배치, 무대 감 공간감, 음악의 재구 성력을 들어본다. EarSonics Grace는 전반적으로 각 음역대를 담아내는 큰 그릇을 가지고 있다. 특히 중음역대의 볼륨감이 탄탄해서 고음역대의 날카로움을 무마시켜 주고 저음역대 역시 너무 깊이 가라앉지 않게 끌어올려주는 역할을 톡톡히 한다. 다만 양감이 큰 반면 섬세함에선 다소 부족한 감이 있다. 그리고 각 악기들의 적극성이 정돈되지 못해서 주선율의 흐름이 방해받을 때가 종종 있다. 무대에 많이 밀착되어 있어 공간감을 느낄 여유는 없는 듯하다. 하지만 단합력은 음악의 열정으로 충분히 전달되어 장중한 폭포 앞의 압도감을 느끼게 해 준다.
하지만 단합력은 음악의 열정으로 충분히 전달되어 장중한 폭포 앞의 압도감을 느끼게 해 준다.
EarSonics Grace를 예로 들자면 뭐든 듬뿍듬뿍 많이 주는 인심 후한 식당 같다.
저음, 중음, 고음 그릇에 양껏 가득가득 담아 들려준다. 다만 그릇에 정교하게 담아주진 않는다. 하지만 기사식당에 가서 그릇에 음식이 어떻게 담겨 나오나를 따질 사람은 없다. 맛과 양이라는 기준에 준하면 훌륭한 음식이다. EarSonics Grace의 괄괄한 성격은 무엇이든 단순화시키는 능력이 있는 듯하다. 스케일 있게 음악의 폭포를 쏟아 받고 싶다면 귀에 꼭 한번 꽂아보길 바란다. 피곤함 없이 기분 좋게 스케일을 다 받아낼 수 있을 것이다. 양껏 즐기는 EarSonics Grace의 괄괄한 열정… 실컷 떠들어대고 싶은 날, 만나보고 싶은 친구이다.
양껏 즐기는 EarSonics Grace의 괄괄한 열정
#EarSonics #Grace #이어폰리뷰 #이어폰 #제품리뷰 #밑미1일1포
*.제품 이미지는 본 원고의 기고 매거진인 프리미엄헤드폰가이드에서 발췌함
https://www.earsonics.com/in-ear-monitors/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