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운드디자이너의 이어폰 이야기
Sennheiser가 The NAMM Show 2019에서 뮤지션을 비롯한 프로슈머를 고려하여 제작한 IE 400 PRO, IE 500 PRO를 발표했으며 이번 리뷰는 IE 400 PRO 모델로 진행했다. 근간에 재생 대역을 넓히기 위해 BA 멀티 드라이버를 채용하는 경우도 적지 않은 상황에서 단일 다이내믹 드라이버 구동을 선택한 것은 그것만으로도 청음에 대한 기대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참고로 재생 주파수 대역은 6Hz-19kHz이다. 그 외 TrueResponse 기술을 통해 지극히 자연스러우면서도 명료한 임장감을 폭넓게 표현하는 사운드 스테이지를 실현했다고 한다.
그럼 이제 ‘맑고 풍부한 사운드 구현’이라는 자기 평가서를 들고 나온 Sennheiser IE 400 PRO의 소리 실력을 들어보자.
IE 400 PRO에게서 가장 먼저 놀란 저음역대부터 언급하고 싶다.
모니터링 제품으로 생각할 수 없는 저 음역대의 넘치는 양감에 헉! 소리가 나온다. 저음역대의 넘치는 스태미나! 이렇게 실컷 퍼주어도 남는 게 있을까 싶은 식당에 앉아있는 듯 많이 많이 양껏 들려주는 저음역대에 충분히 귀가 부르다. 하지만 귀가 부르다고 소리의 질 또한 좋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양감이 증가하면 쫀쫀한 탄력성이 조금은 떨어질 수 있다. (살 많은 사람이 모두 근육이라고 말하지 못하듯!) IE 400 PRO의 저음역대는 밑지는 장사만큼 양이 넘치기는 하나 탄력성과 타격감 면에서는 질이 떨어지는 면이 있다. 하지만 넘치는 양 덕분에 탄력 있게 타격감 있게 귀로 쏟아져 들어오는 느낌이다. 그러니 필자는 저음 좋다! 보다는 저음 많다!라고 정확히 칭찬해 주고 싶다.
양껏 들려주는 저음역대에 충분히 귀가 부르다.
IE 400 PRO의 중음역대로 들어서면 화사함을 느끼게 된다.
보통은 고음역대에서나 느끼는 맑은 느낌이 중음역대의 선율들을 선명하게 조명한다. 하여 중저음 보컬들과 악기들의 선율이 깨끗하고 분리력 있게 들린다. 고음과 저음 사이에서 조연처럼 조화되려 노력하던 중저음의 역할보다는 중저음 본연의 화려함을 들려준다. 그러니 대편성 작품들의 악기들의 역할이 더 구분되어 잘 들리고 중저음 보컬의 밟은 톤의 음색을 즐기게 된다. 중음역대 역시 남는 장사를 못할 푸짐한 양이다. 그러니 IE 400 PRO로 듣는 음악들은 전체적으로 온기감이 있다. 곡의 온기감은 중음역대가 중추적인 역할을 하기에 그렇다.
중음역대 역시 남는 장사를 못할 푸짐한 양이다.
중음역대의 화사함에 고음역대가 궁금해지는 IE 400 PRO. 한마디로 쨍! 하다.
고음의 선이 얇고 거친 편이지만 표현력 넘치고 선예감이 살아 있다. 해상력 좋은 제품들의 공통적인 특징이다. 그래서 볼륨에 욕심을 내기에는 한계가 있다. 하지만 저음과 중음역대의 풍부한 양감 덕분에 날카로운 고음과 금속 악기들의 치찰음들을 견디어 낼 만은 하다. 결국 이런 고음역대의 피로감이 있다 보니 중저음 보컬들의 음악을 좀 더 질 높게 감상할 수 있는 것 같다. 고음역대의 날카로운 가시들은 IE 400 PRO의 숙제일지도 모르겠다. 고음역대 감상의 아쉬움은 모니터링 제품들의 공통된 특징이기도 하다. 하지만 IE 400 PRO의 경우는 제품 자체가 제한한 고음역대의 한계 때문이 아니라 볼륨을 더 높일 수 있지만 인간의 청력적 한계 때문에 접근하지 못하는 아쉬움이다. 그러니 고음역대는 일을 다 못 보고 화장실을 나온 듯 한 느낌이다. 하지만 저음과 중음역대의 양감 속에서 이런 해상력을 선보인다는 것 역시 인정해주고 싶은 기술이 아닐 수 없다. 사실 저음과 중음의 양이 증가하면 온기감과 윤기는 살지만 자칫 무겁고 어두워지는 단점이 생길 수 있다. 하지만 IE 400 PRO는 해상력을 높이면서도 채도를 적절히 높임으로 사운드를 가볍고 밝게 만들었다.
해상도 촘촘하면서도 채도를 적절히 높임으로 사운드를 가볍고 밝게 만들었다.
그래서 IE 400 PRO의 음역대 전체를 종합해보면 저음과 중음역대의 풍성한 양이 힘 있게 화면을 채우면서도 해상력을 높여 중음역대는 화려하게 고음역대는 쨍하게 들려주는 제품이라고 정리가 된다. ‘맑고 풍부한 사운드의 구현’이라는 자기 평가서에 확인 도장을 꾹 찍어본다.
그럼 IE 400 PRO가 들려주는 무대는 어떤 스타일인가?
IE 400 PRO는 무대 전체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무대 위에 같이 서 있는 듯한 사운드를 들려준다. 악기들의 소리가 사방팔방 청자 주위에서 에너지 넘치게 들려와서 청자가 소인국 사람이 된 것처럼 작게 느껴지게 한다. 특히 대편성곡을 감상할 때는 금관 악기 앞에 앉은 연주들의 고통을 알 것처럼 빵빵대는 소리를 힘으로 느낄 수 있다. 보통 2관 편성 오케스트라의 인원은 70명 정도인데 IE 400 PRO로 관현악 작품들을 감상하면 4관 편성 인원(100~120명)의 힘에 압도되는 듯하다. 음의 강도는 엄치 척! 그래서일까? 이런 어마 무시한 사운드는 무대가 하나의 시선에 들어오는 응집력을 주지 못한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무대 위에 있다 보니 무대와 조금 떨어져야 들리는 조화력과 어우러질 때 들리는 입체적인 느낌은 느끼기 어렵다. 무대 위에서 무대 끝이 잘 안 보인다. 하지만 워낙에 넘치는 에너지는 적극적이고 개방적인 사운드를 만들고 무대에서 뻗어가는 음장감 그리고 무대 주위에 산재한 소리 먼지들(울림을 필자가 다르게 표현함)이 현장의 생동감을 그려준다. 무대 위에서 느끼는 현장감이라 이 또한 색다른 무대감이 아닐지 필자는 생각된다. 연주자들이 경험하는 무대 위에서의 느낌을 주는 멋진 무대 경험이었다.
적극적이고 개방적인 사운드를 만들고 무대에서 뻗어가는 음장감 그리고 무대 주위에 산재한 소리 먼지들
그렇다면 모니터링 제품으로서의 가치는 어떨까.
악기군 하나하나 낱개 포장된 듯 분리된 소리들과 보컬과 반주 악기의 독립성이 흐트러지지 않았다. 각 음역대의 역할들이 충실하여 사운드의 정보량 또한 넘친다. 이 정도면 모니터링 제품으로서의 기능은 갖춘 것 아닐까 싶다. 다만 예전에 없던 장식적 기능들이 덧 입혀졌을 뿐이다. 무미건조하다고 생각되던 작업복에 전에 없던 기능들이 생긴 것이다. 그러니 간지가 난다. 작업복 같지 않다. 그러니 IE 400 PRO를 모니터링 만이 아니라 감상용으로도 사용할 만하다는 소감이다.
모니터링 만이 아니라 감상용으로도 사용할 만하다
IE 400 PRO로 시음(試音)을 하며 줄곧 연상한 것은 뷔페식 패밀리 레스토랑이다.
인기 있는 패밀리 레스토랑 중에 샐러드바를 무한 리필하는 뷔페식에 가면 정말 양껏 먹을 수 있는 즐거움에 그냥 행복하다. 단지 많이 먹을 수 있기 때문이 아니다. 무한리필 음식점 중에도 다시는 안 가고 싶은 곳이 있지 않은가. 분위기도 음식의 질도 아주 최고급은 아니지만 누구와 가든 두루두루 쾌적하게 즐기며 그럴듯하게 차려진 음식들을 이것저것 즐겁게 양껏 먹을 수 있다는 강점에 서민들의 즐거움이 되는 곳. 그런 곳이 또 손님이 끊이지 않는 법이다. 과연 남는 게 있을까 싶지만 많은 손님에 힘입어 음식의 질을 떨어뜨리지 않는다면 수요와 공급이 시너지 효과를 내며 계속 좋은 관계를 맺어 가지 않겠는가. Sennheiser IE 400 PRO 역시 모니터링 이어폰이라는 기본기에 더해 푸짐한 소리의 양과 해상력을 입혀서 수요 고객의 층을 넓히려 한 수가 보인다. 뷔페식 패밀리 레스토랑의 즐거움처럼 너무 전문성에 치우치지 않으면서도 대중의 필요를 충족시키려 노력한 Sennheiser의 멋진 노력에 박수를 보낸다.
모니터링 이어폰이라는 기본기에 더해 푸짐한 소리의 양과 해상력을 입혀서 수요 고객의 층을 넓히려 한 수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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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자료는 제조사 제품 상세페이지 및 본 원고의 기고 매거진인 프리미엄헤드폰가이드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