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환자 아내의 시점
매운탕은 이름 그대로 매워야 제맛이라고 믿어왔다. 고춧가루가 풀어지며 국물이 붉게 물들고, 청양고추가 둥둥 떠 있어야 비로소 매운탕답다고 생각했다. 얼큰한 국물에 땀이 맺히고, 그 매운맛에 먹는 것이 우리 집 매운탕의 오랜 풍경이었다. 그래서 국물이 허옇게 맑아지면, 그것은 이미 매운탕이 아니라고 여겼다. 그런데 살다 보니, 매운맛을 덜어내야 할 날도 찾아왔다.
색깔이 허연 매운탕을 끓였다. 매운맛을 내지 않으려고 청량고추도 넣지 않았고, 고춧가루도 넣지 않았다. 대신 된장을 한 숟가락 풀고, 소금으로만 간을 맞췄다.
시원한 동태탕도, 대구탕도 아닌, 그저 애매한 색깔의 매운탕이었다. 희끄무레한 국물색 때문인지 숟가락이 잘 가지 않았다. 그래도 남편 앞에서 “나는 안 먹을래”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내 그릇에는 고춧가루를 살짝 뿌려 넣었다. 붉은 기운이 돌자 비로소 매운탕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과 마주 앉은 조그만 탁자 위로 김이 피어올랐다. 몇 개월 전부터 남편의 입맛이 변했다. 항암 치료가 시작된 이후로, 매운 음식은 멀어지고 되도록 싱겁게 먹어야 한다. 옛날 같으면 식탁에 앉기도 전에 “매운탕 냄새 좋다” 하면서 허겁지겁 식탁에 앉던 사람인데, 이제는 냄새에도 예민해져 조심스러워졌다.
찬거리를 잘 사 가지고 오던 남편. 요양병원에서 집에 올 때도 빈손으로 오지 않는다. 뭐 들고 다니지 마라 해도 꼭 뭔가를 사 들고 온다. 무거울 텐데, 괜히 고생하지 말라 해도 소용이 없다. 요양병원 앞에 있는 이마트는 남편의 유일한 쇼핑 취미활동 중 한 곳이다. 병원 생활이 단조로울 텐데, 그 앞 마트에 들르는 일이 작은 외출이고 작은 자유일 것이다.
어느 날 전화가 왔다. 이마트에 기가 막힌 매운탕거리가 있다고. 목소리가 한껏 들떠 있었다. 나는 시큰둥하게 매운탕거리야 어물전에 다 있지 않느냐고 반문하였다. 굳이 거기서 사 올 것까지야 싶었다. 그래도 집에 올 때 하나 사 오겠다고 했다. “당신이 보면 깜짝 놀랄 거야.” 괜히 자신만만한 말투였다.
사 온 매운탕거리를 살펴보았다. 꽁꽁 싸매었던 랩 포장을 벗겨 내니 생선 모양의 커다란 뼈가 먼저 나왔다. 그 아래로는 대가리 부분이 통째로 들어 있었고, 알도 실하게 붙어 있었다. 자투리 생선 살까지 모아 한 봉지에 담겨 있었다. 얼마나 큰 생선을 포로 떠냈는지 한 냄비가 그득하게 찼다. 싱크대 위에 펼쳐 놓으니 제법 장관이었다.
마산에 있을 때는 이런 형태에 잡어까지 뒤섞여 들어갔다. 이름 모를 작은 생선들이 국물 맛을 더 깊게 해 주었다. 그 시절에는 시장이 가까워 늘 신선한 생선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아침 장터의 소란함, 물기 어린 바닥, 아주머니들의 걸쭉한 사투리가 함께 떠올랐다. 그때의 매운탕은 빨갛고 얼큰했고, 국물 한 숟갈이면 속이 확 풀렸다.
지금 이 봉지를 앞에 두고 보니 어떤 매운탕이 될지 걱정이 앞섰다. 괜히 비리지는 않을지, 국물이 밍밍하지는 않을지, 남편이 괜한 기대를 한 건 아닐지.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남편의 그 마음이 먼저 보였다. 병원 생활 속에서 “기가 막힌 매운탕거리”를 발견하고는 내게 제일 먼저 전화를 걸어 자랑하던 그 마음.
국을 끓이다가 문득 국물 맛을 보았다. 아직은 싱거웠다. 된장을 풀까, 고춧가루는 넣으면 안 되고, 잠시 망설였다. 그러다 생각했다. 이 매운탕은 맛으로만 먹는 게 아니지. 당신이 들고 온 그 수고와 정성으로 먹는 거지.
냄비가 보글보글 끓기 시작했다. 김이 오르자 부엌이 조금 따뜻해졌다. 매운탕 냄새보다 먼저, 오래 함께 산 사람의 체온 같은 것이 번져 나오는 듯했다. 그날의 매운탕은 어떠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그 한 냄비가 유난히 넉넉했던 것은 또렷이 기억난다.
남편의 입맛에 맞추다 보니, 내가 먹는 음식의 고유한 맛들이 하나둘 사라져 버린 듯하다. 고춧가루의 매운맛, 마늘의 알싸한 향, 된장의 구수한 짠맛이 모두 희미해졌다. 대신 그 자리를 ‘조심스러움’이 차지했다. 조심스러운 손맛, 조심스러운 눈빛, 그리고 조심스러운 밥상머리.
오늘의 매운탕은 매운맛이 사라진 매운탕이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속에는 여전히 매운탕의 근본 맛이 숨어 있었다.
남편이 “ 시원하게 잘 끓였네” 하고 미소를 지었을 때, 그 말이 고춧가루보다 더 진한 맛을 냈다.
나는 남편의 그릇에 국물을 한 국자 더 떠주었다. 허연 매운탕이지만, 오늘 우리 밥상에는 그 어떤 음식보다 따뜻한 색이 번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