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독을 들이다.

by 복덕


해가 가기 전에 그리다 만 연꽃그림 연화도를 완성해야 한다. 불현듯 민화 그리기를 그만두고 수채화에 푹 빠져 민화 붓을 잡지 않았다. 항상 마음 한편에는 그리다 만 연화도가 넘실댄다. 아들의 장원급제를 염원하면서 그렸던 터라 미완성으로 둘 수는 없다. 의무적으로라도 꼭 완성해야만 하는 숙제다. 민화수업 마지막 시간에 선생님은 연꽃 가장자리 한 귀퉁이에 그려 넣어야 하는 작은 여귀는 화실에 와서 그리라고 말씀하셨다. 그냥 선생님 여뀌 그림 한번 보여주시면 될 일인데.


안 보여 주면 내가 못 그릴 줄 아나 하면서 괜한 오기가 올라왔다. 그 오기로 민화 그리기를 놔 버렸다. 장원급제를 염원하면서 그린 그림이다. 이제는 더 이상 미룰 수가 없다. 올해가 한 달 남짓 남았다. 내년 1월 중순에 아들이 국시를 본다. 내가 마음으로 눈독 들여놨던 나의 암시를 실천해야 한다. 마음에 걸리던 여귀를 위하여 일단 이것저것 자료를 찾아보았다. 지금까지 그렸던 여귀 그림을 다시 펼쳐도 보았다. 신사임당 초충도와 겸재 정선의 초충도를 보면서 감을 잡아보기도 하였다. 수채화 수업을 종강하던 그날부터 연화도의 못다 그린 여백을 채워 나갔다. 이번 연화도는 연잎을 연꽃보다도 더 화려하게 잡아서 모든 이목을 끌고 있으니까 물가에서 노는 청둥오리는 평화롭게 색칠하고 한 잎 두 잎 떠다니는 개구리 풀은 자유롭게, 물결은 은은하게, 유독 눈독 들인 여귀는, 여귀는 어떻게 표현할까.


넓은 세상 한편에 오롯이 서 있는 아들이 눈에 들어온다. 눈독을 들이지 않아도 자꾸 눈이 간다. 박완서의 산문 ‘노란 집’에서는 사람도 너무 눈독이나 손독이 들면 아무리 좋은 자질을 가지고 태어나도 제대로 꽃피기 어렵다고 했다. 내 이 여귀를 눈독 들여도 눈독 들인 티가 안 나게, 그렇다고 풀 죽지 않게, 당당하고 알차게 그려 보리라.


연화도도 완성하고 아들의 국시도 끝나고 만사가 평화롭고 한적한 하루에 모과차를 끓인다. 모과향이 온 집안에 수증기를 타고 스며든다. 지난가을에 눈독 들여서 쟁취한 모과다. 아파트 공원에 모과나무가 두 그루 있다. 어린이 놀이터를 사이에 두고 한 나무는 오른쪽에, 한 나무는 왼쪽에 마주 보고 있다. 이사 온 첫해는 그냥 떨어진 모과를 한두 개 주워서 향만 맡고는 말았는데 이듬해에는 모과가 주렁주렁 열렸었다. 감질나게 몇 개 주워 모으다가 보니 어느 날 한 개도 남지 않고 모과가 없어져 버렸다. 내 것도 아닌데 내 것을 잃은 양 허전했다. 우리 말고 다른 이들도 눈독 들이고 있었던 모양이다.


가을은 또 어김없이 찾아왔다. 나는 창가에 사이드 의자를 갖다 놓고 앉아서 바깥을 내다보는 것을 즐겨한다. 남편하고 강아지는 하루에 두 번은 공원을 나다닌다. 그러면 나는 창밖을 보면서 그들의 행동을 예의 주시한다. 남편은 건강 챙긴다고 소나무향을 이곳저곳 맡고 다니고 강아지는 나무 사이로 다니면서 영역 표시한다고 난리다. 매일 하는 그들만의 루틴이다. 나의 눈길은 모과나무에서 머문다. 울긋불긋한 잎 사이로 노르스름한 모과가 한 개 같기도 하고 두 개 같기도 하고 오른쪽에 있는 나무에 열려 있다. 해걸이를 하는지 열매는 달랑 두 개만 열리고 잎만 무성하다. 왼쪽 나무에 눈길을 돌려보니 구석진 곳의 가지는 보이지 않지만 열 개는 달려 있는 것 같았다. 남편은 공원을 돌 때마다 모과나무를 올려다보곤 한다. 어느 날은 주머니가 불룩하게 모과를 넣어 오기도 한다. 나는 작은 소쿠리를 장식대 위에 정해 놓고 모과를 모으기 시작했다.


어느 날 외출하고 바로 창가로 가서 공원의 모과를 세어 보았다. 아니 한 개가 없어졌다. 나는 속으로 어떤 놈이 한 개 따 갔다고 구시렁거리면서 돌아서는데 장식장 위 소쿠리에 모과가 한 개 더해져 있었다. 어이쿠 남편이 따 왔었네. 사람의 생각이 밖으로 드러나지 않는 것은 얼마나 큰 다행인지 모르겠다. 속으로는 격정적이어도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할 수 있으니까.

한날 아침에 오른쪽 모과나무 밑에서 나무를 흔들어 보는 사람이 있었다. 잎이 떨어진 모과나무에 커다란 모과가 두 개 열려 있는데. 나는 눈으로 쟁탈전을 벌였다. 다행히 그 사람은 그냥 갔다. 점심때쯤 또 창밖을 내다보았다. 두 개의 모과는 보이지 않았다. 눈독 들인 보람도 없이 없어져 버렸다. 이제 온 신경을 남은 모과나무에 쏟기로 했다. 가지가 안 보이는 곳에 서너 개가 더 있다고 하니 모두 열서너 개는 내가 관리하는 셈이다.

산책하러 간 남편이 안 와서 밖을 내다보니 막대기를 던져 모과를 떨어뜨리고 있었다. 모과를 주머니에 넣어 올 때마다 저런 의식을 하나 보다. 어이쿠! 저래도 되나 괜히 가슴이 콩닥콩닥 뛴다. 남편은 돌팔매질도 백발백중으로 잘하는 사람이다. 돌팔매질 기술을 모과 떨어뜨리는 일에 쓰고 있다. 그 후로도 남편은 막대기를 던져 남은 모과 아홉 개는 우리가 다 가져왔다. 소쿠리가 그득하니 모과들이 쌓여 있다. 반질반질 노랗게 예쁜 향이 난다. 어물전 망신은 꼴뚜기가 시키고 과일전 망신은 모과가 시킨다더니 무슨 의미로 한 말인지 모르겠다. 예쁘기만 한 모과다. 아홉 개나 되는 모과를 향으로 다 날릴 수는 없어서 여섯 개는 깨끗이 씻어서 설탕에 재워 모과차를 만들었다. 마실 때 꿀 한 스푼 넣어서 달콤 시큼하니 건강한 맛이 난다.


친구들과의 모임에 나가서 모과에 눈독 들여 쟁취한 얘기를 하였더니 한 친구가 말했다. 자기 집 뜰에 모과가 100개쯤 열렸었다고. 지천으로 귀찮아서 그대로 썩였다고 한다. 헐 그럴 수가. 무관심 속에 방치됐다가 자랑스럽게 키워낸 열매를 눈빛 아니 눈독조차 못 받고 그대로 후드득 떨어뜨리다니. 망연자실해진다. 복잡한 심정이 인다. 우리가 하는 일에 열매 맺기가 얼마나 힘들던가. 온전히 키워낸 열매를 속절없이 무용하게 만들다니, 눈독을 들여서라도 그 쓰임새를 만들어 주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커다란 아쉬움만 남는다.

나는 또 가을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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