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자매의 나들이

by 복덕


작년 10월의 마지막 날 자매들만 나들이를 가기로 했다. 모두 예순 살 이상인 늙은 여자들이다. 번호를 붙이자면 제일 큰 언니가 일 번이고 막내가 오 번이다. 우리는 몇 년에 한 번씩 이렇게 모여서 나들이를 가곤 한다. 삼 번인 나는 이번이 두 번째다. 젊었을 때는 무얼 했는지 이런 모임에 참석을 하지 않았다. 이번 나들이 계획을 세울 때도 먼저 내 의견을 물었다. 어디든 간다고 하였다. 세상에서 제일 소중하고 스스럼없는 사이가 아니던가. 이런 소소한 행복은 누리면서 살아야 할 일이다. 일 번의 딸과 사위가 운전을 해 준다고 한다.


12인승 승합차를 타고 출발하였다. 거제에 사는 이 번은 어제 벌써 와 있었다. 부쩍 어디 놀러 가는 데 적극적이다. ‘나 나들었네’ 하고 뭉기적 거리는 것보다는 좋았다. 오늘 하루 일을 쉰다고 한다. 용돈벌이로 굴 까는 일을 한 달에 10일 정도 한다. 용돈벌이 보다 오늘의 나들이가 중요한 모양이다. 휴게소에서 오늘의 일정을 자세하게 듣기로 하였다. 휴게소 벤치 옆에서 서성이고 있는데 만면에 웃음 뛴 낯선 늙은 여자가 다가왔다. 그러면서 우리더러 다 똑같이 생겼다며 “여가 첫째고, 여가 둘짼 갑네” 하면서 서열을 붙이고는 재미있어한다. 이때 이 번이 일침을 놓는다. “아, 그러면 형제들이 닮았지” 보면 모르냐고 한다. 또 우리는 떠들썩하게 한바탕 웃고 만다.


거창으로 목적지를 정해 놓고 휴게소에서 세부 설명을 듣고 출발하였다. 제일 먼저 선비 마을에 들러 선비님이 걸었다는 산책길도 걸어 보고 마을도 한번 휙 둘러보고는 은행나무 풍경을 보기 위해 길을 나섰다. 은행나무가 단풍이 왔을까 안 왔을까 하면서 은행나무 터널을 향하였다. 다행스럽게도 노란 은행나무 잎이 한산하게 우리를 맞아 주었다. 평일이라 관광객이 별로 없어서 좋았다. 사진 공모전에서 상을 받아 이곳이 알려졌다고 한다. 우리는 인원이 많으니까 사진 찍기도 재미있었다. 다섯 명 늙은 여자들은 제각기 포즈를 취하면 조카는 알아서 사진을 찍어 주었다. 또 다른 포즈로 높이뛰기 사진을 찍어 달라고 하였다. 일 번과 이 번은 뛰지 말고 삼, 사, 오 번만 뛰자고 하였다. 하나, 둘, 셋 찰칵. 그리고는 웃고 떠들고, 일 번과 이 번이 자기들도 높이 뛸 줄 안다고 하였다. 그래서 다 같이 높이뛰기 한 번 더. 와하하.


늙은 여자들이 재미있게 놀고 있으니까 사진을 찍고 있던 유튜버가 뒷모습으로 높이뛰기 한번 사진 찍게 해 달라고 하였다. 오케이. 그러고 나서 우리는 맛집을 찾아 거창읍으로 왔다. 인터넷에서 본 메뉴와 직접 와서 본 메뉴가 달라서 우왕좌왕도 해 본다. 다시 식당을 나와서 현지인에게 물어보기로 한다. 앞에서 걸어오는 젊은 여자 직장인들. 혹시 맛집을 알고 있을까요. 조카가 묻고 있는 사이 젊은 여자 직장인의 옷에 박혀 있는 글씨를 보게 되었다. 거창군청이라고 쓰여있었다. 나는 화들짝 반색을 하면서 아는 체를 했다. 거창군청에 근무하냐고 좋겠다고 말을 붙여 보았다. 퇴직하신 부군수님을 안다고 넌지시 자랑도 했다. 거창군청에 근무하는 젊은이들이 아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점심을 맛있게 먹고 감악산 별 바람 언덕을 보기 위해 길을 재촉했다. 산꼭대기까지 올라가느라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힘이 들었다. 더구나 사 번과 오 번의 목소리에 몸살이 날 지경이었다. 우리 자매들이 목소리가 다 크다. 게다가 좋거나 싫거나 흥분을 하게 되면 정화되지 않은 목소리 톤이 사람을 힘들게 한다. 내 뒷좌석에서 짱짱 거리는 소리에 나는 기절 직전까지 갈 지경이다. “아, 목소리 좀 작게 해 줘.” 두 번 세 번 해도 듣지를 않는다. “아, 목소리 좀 작게 하라고!” 그게 작게 한 소리란다. 아들 둘을 키우다 보니 목소리가 그렇게 되었단다. 아들 셋 키웠으면 기차 불통 터지는 소리 났겠네. 변명도 여러 가지다. 사 번도 한마디 한다. 지는 회사 소음 때문에 목소리가 커졌다나. 목소리 작게 할 마음이 전혀 없다는 뜻이다.


별 바람언덕에는 커다란 바람개비가 돌아가고 있었다. TV에서 보던 것과는 다르게 그 웅장함에 나는 덜컥 불안을 느낀다. 요즘은 어디에서든 불안이 엄습해 자꾸 주위를 두리번거리기도 한다. 오늘은 평일이라서 다행이라 싶다. 공휴일이었으면 사람들한테 치여서 불안은 더 커졌으리라. 내 폰으로 사진을 찍어 주기도 하였다. 온갖 포즈로 실컷 찍어 주리라. 갈대숲에서도 찍고, 색깔 의자에서도 찍고, 커다란 바람개비를 배경으로도 찍었다. 우리는 자유자재로 최선을 다해서 오늘을 보내면 된다.


일 번 딸과 사위는 늙은 여자들에게 뭐라도 더 보여 주려고 빡빡하게 움직인다. 창포원을 거쳐서 Y자 출렁다리에 도착을 하였다. 나는 출렁이는 이런 곳은 잘 가지 않는데 나 때문에 분위기를 깰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다리 언저리에서 사진만 찍기로 하고 매표소로 향했다. 일 번과 이 번은 당연히 무료입장으로 저쪽으로 서라고 한다. 나더러 주민증을 보여 달란다. 입장료는 내도 그만이지만 또 이런데 오면 무료입장을 은근 기대하게 된다. 주민증을 안 가져왔다니까 나이를 속이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나는 기어코 폰을 열어 주민증을 찾아본다. 산에 오니까 내 나이로 안 보이나. 기분 좋음이 온몸으로 전해진다. 이게 뭐라고. 다행히 폰에 주민증이 있어서 보여 주고는 무료입장을 하게 되었다. 조카가 나를 지켜보더니 이모, 젊게 보니까 좋지요 한다. 아이쿠나, 속마음을 들켜버렸네.


산꼭대기에 있는 출렁다리까지 걸어서 올라가는 것이 일이었다. 사 번과 오 번은 산길을 잘도 올라간다. 나는 이 번과 보조를 맞추고 뒤처지는 일 번은 딸이 보조를 맞추어 시간 차를 두고 우리는 출렁다리에 도착했다. 입구에서 사진만 찍다가 출렁다리를 자꾸 눈에 넣어본다. 건너도 되겠다는 자신감도 키워본다. 다른 사람들도 떠들며 웃으며 건너가는 모습도 재미를 더해 주고 있었다. 날씨도 너무 쾌청하고 출렁다리는 일렁이지도 않았다. 이 번이 성큼성큼 앞으로 나가고 사진을 찍어야 하는 내가 그 뒤를 따랐다. 폰을 떨어뜨리지 않으려고 조심을 하면서 한 명씩 건너오는 모습을 찍고 또 용기 내어 출렁이게 한번 흔들어 주고 옴마야! 사 번이 비명을 지르고 이렇게 즐기며 가니까 출렁다리 아무렇지도 않았다. 괜히 겁먹었다.


출렁다리를 내려와서는 매점 앞에 옹기종기 모였다. 매표소에서 준 상품권을 써야 하기 때문이다. 바나나우유를 사서 마시는 동안 해는 다 져 버리고 우리는 또 갈 곳이 한 곳이 더 남았다고 한다. 아름다운 모습들을 곳곳에 뿌리고 노란 코스모스가 넘실대는 넓은 코스모스 들판에 왔다. 온 세상이 노랗다. 때마침 저녁 하늘의 노을이 붉게 물들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아무도 없는 노란 코스모스 들녘에서 저녁노을을 등지고 늙은 오 자매는 한번 더 높이뛰기 사진을 찍었다. 늙은 아름다운 모습들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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