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죽거리를 지나다.

by 복덕


2025년 8월 15일.

“엄마, 샤갈 전 보러 가실래요?”

딸이 말했다.

순간 무슨 말인가 싶어 멍하니 바라보다가 뜻을 알아들었다. 수원에 이사 온 뒤로는, 이상하게도 상대방의 말이 귀에 또렷이 들어오지 않는다. 온갖 곳에서 수원 말씨가 넘실대는 것 같다. 말이 귓가에서 빙빙 맴돌다 뒤늦게 의미가 다가오곤 한다. 말소리의 강약이 달라서 그런가 보다. 결국 전시회를 가자는 말이었다.

“전시회 가자는 거야.!”

“예술의 전당에서 샤갈 전을 한데요.”

“응, 가자.”

두 말이 필요 없는 제안이었다.

딸은 방학이 끝나기 전에 손녀에게 전시회를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 그림을 좋아하는 엄마를 같이 대동한 것이다.


문득 우아 부인이 떠올랐다. 우아 부인은 딸 친구 엄마인데 하도 우아한 척해서 나 혼자 부르는 별명이다. 언젠가 딸 집에 가서 고흐 전을 보고 왔다며 한껏 자랑하듯 이야기했었다. 나는 속으로

‘지금 와서 고흐 전을 본들 뭐가 달라지겠나.’

하고 괜히 못 들은 척하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괜히 우아한 척한다고 흉도 보았다. 그것도 그럴 것이, 우아 부인은 무슨 말을 하든 꼭 덧붙이는 버릇이 있었다.

“너도 꼭 그런데 가 봐라.”

하지 않아도 될 말을 굳이 보탠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괜히 마음이 거슬렸다. 그림을 그려도 내가 더 많이 그렸고, 안목도 내가 나은 것 같은데, 왜 내가 굳이 따라 해야 하는가 싶은 마음이 앞섰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 이제 내 딸이 나에게 샤갈 전을 보러 가자고 한다. 나이 들어 내가 이런 제안을 받다니, 그것도 '예술의 전당'에서 라니! 순간 가슴속에서 묘한 설렘이 일렁였다. 예전 같으면 그저 무심하게 흘려들었을 텐데, 이번에는 달랐다. 샤갈이라는 이름만으로도 내 마음은 오래된 색연필을 꺼내듯 부드럽게 흔들렸고, 잊고 지내던 예술에 대한 그리움이 살짝 고개를 들었다.


나는 문득 우아 부인의 말투가 떠올랐다. 그때는 괜스레 잘 난 채로만 들렸던 말이, 지금은 어쩐지 나를 향한 다정한 권유였던 것 같기도 하다. 우린 다 같이 문화에 목마름이 있는 세대니까. 어쩌면 나도 언젠가 딸에게 비슷한 말을 하고 있지 않을까. 나도 모르게 이어받은 그 말투 속에 세월의 흐름과 마음의 변화가 겹쳐 보였다. 그리고 그 사실이 이상하게 나를 미소 짓게 만들었다.


돌이켜보면 나는 참으로 문화에 목이 마른 채 살아왔다. 평생 살면서 뮤지컬을 단 한 번이라도 정식으로 본 적이 있었던가. 이름난 전시회는커녕 작은 공연조차 발길을 잘 들이지 못했다. 그렇다고 꼭 불쌍하다 표현하고 싶진 않지만, 사실 내 삶은 문화라는 단어와는 멀찍이 떨어져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딸과 손녀와 함께 지하철을 타고 어느 지점에서는 버스를 갈아탔다. 차창 밖으로는 후드득 소나기가 지나가기도 하였다. 무심코 스쳐 가는 ‘말죽거리’라는 이정표가 눈에 띄었다.

“말죽거리다. 많이 들어본 지명인데.”

내가 생각해도 웃긴다. 뭔 내가 많이 들어봤겠나. ‘말죽거리 잔혹사’라는 영화제목은 들어 봤지. 어쨌든 들어본 지명에 화들짝 아는 체를 했다. 그리고는 딸 하고 같이 웃었다. 무언의 통함이 있는 듯이.


샤갈의 그림 앞에 서니, 마음이 이상하게 젖어들었다. 미술책에서 본 그림들이다.

샤갈은 사랑을 많이 그린 화가라고 한다. 연인과 포옹하는 모습, 서로를 향해 날아오르는 연인의 눈빛을 보면서, 나는 오래 함께한 남편을 떠올렸다. 지금은 병마와 싸우느라 웃음을 잃은 날이 많지만, 언젠가는 우리도 저렇게 가볍게 서로를 끌어안고 날아오르던 때가 있었다. 그 기억이 내 마음 깊숙이 따뜻하게 번졌다.


샤갈 전을 나오면서, 나는 스스로에게 속삭였다.

“문화에 목말라 살았다 했지만, 사실은 삶 그 자체가 내게는 하나의 예술이었구나.”

아이를 키우고, 살림을 꾸리고, 때로는 눈물로, 때로는 웃음으로 버텨낸 세월. 그 모든 날들이 샤갈의 화폭처럼 내 안에서 빛을 내고 있었다.

이제는 늦지 않았다. 예술의 전당에서 본 그림이 내 남은 날들의 또 다른 시작이 될 수도 있다. 나는 평범함 만으로 살아온 것이 아니라, 지금부터는 조금은 우아하게, 조금은 자유롭게 그렇게 삶을 색칠해 나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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