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삿짐 비용을 흥정하는데 별로 깎지도 못하고 괜한 언성을 높였다. 새로 이사할 아파트가 걸어서 5분 거리라서 이삿짐 비용도 쌀 줄 알았다. 그런데 거리와 상관없이 견적대로 비용을 받는다고 한다. 남들에게 보이는 것도 있고 하니 1톤 트럭으로 옮기는 것보다 멋지게 ‘익스프레스’ 이렇게 쓰여 있는 뚜껑 있는 차로 이사를 하고 싶었다. 주위에 이삿짐센터를 하는 지인들이 있어서 아는 안면을 차려야 했다. 뚜껑 있는 익스프레스 차를 알아보기 전에 먼저 아는 이삿짐센터에 전화를 하니 우리 이사하는 날은 빈 차가 없다고 한다. 그러면서 다음날로 하라고 한다. 기가 막힌 소리다. 이사하기 좋은 날 받아서 계획을 다 세워 놓았는데 다음 날로 하라니 할 말이 없었다. 부랴부랴 익스프레스에 전화했더니 우리 이사 날에 남은 차가 있다고 하였다.
지인 이삿짐센터에서 차가 없다고 했을 때 우선은 안심을 하였다. 몸이 안 좋았던 때라 이삿짐을 어떻게 거들어야 되나 하고 걱정도 하던 참이었다. 아는 안면에 멀뚱히 보고 있으면 예의 없다고 수군거릴 수도 있다. 이만큼 나이를 먹었는데도 다른 사람의 수군거림에 신경을 쓰고 있다. 되도록 모르는 곳에 일을 의뢰하면 객관적 입장이 되니까 잔잔한 오해도 없이 비용만 지불하면 된다. 내가 혼자 있을 때 견적을 내러 왔다. 견적이 생각보다 많이 나왔다. 30년 넘게 불려 온 짐이다. 구석구석 박힌 짐들을 예리하게 찾아서 계산을 한 것일까. 태풍 났을 때 짐을 몽땅 버린 적도 있지만 그동안 또 쌓여서 버릴 것투성이다. 버리고 갈 것이 많다고 해도 내가 혼자서 흥정을 해서인지 깎아 주지도 않았다. 5톤 뚜껑 있는 차가 올 거라고 한다. 선수금을 계산하고는 계약서를 써 버렸다. 아무래도 남편이 한마디 할 것 같아 노심초사하고 있는 데 아니나 다를까 익스프레스에 전화를 하고 난리다. 여자 혼자 있다고 덤터기 씌웠다고 막말을 한다. 저쪽에서는 계약파기 하자고 난리고 이쪽에서는 계약파기 하자 했다고 난리다. 옥신각신 끝에 겨우 10만 원 깎아서 이삿짐을 꾸려 본다.
버려지는 것들이 많다. 에어컨, 대리석 식탁, 피아노, 큰 액자, 컴퓨터 모니터와 장독 항아리며 다 사연이 구구절절한 물건들이다. 불현듯 이 버려지는 짐들이 늙어 가는 우리네를 닮은 것 같아 씁쓸하다. 버려지기 전에 쓰임새를 찾아야 할 텐데. 거실에 걸려 있는 에어컨을 떼어 달라고 하는 사람들이 여럿 있었다. 이사 가기 싫은 남편은 에어컨 떼어 내면 집이 더 헌 집 될 수도 있고 언제 재개발이 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라서 아무도 안 줄 거라고 한다. 이 집을 새로 지을 때 평생 여기서 살 것인 양 식탁도 대리석으로 장만한 것인데 아파트에는 이 무거운 걸 가지고 가기가 싫었다. 우리가 아파트로 이사할 거라곤 생각지도 못한 일이니까. 사람의 마음이 이토록 변하기를 거듭하고 있다.
“거실 한편에 버티고 있는 피아노야 너는 우리를 따라갈 수 없단다.”
피아노를 어루만지며 피아노에게 말을 붙여 본다.
그 옛날 내가 중학생이었을 때 피아노로 음악시험 쳤을 때가 생각났다. 나의 어린 시절에 부잣집의 상징이었던 피아노를 큰 애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 사 주었다. 내 맘 속에 피아노 실기 시험은 무언가를 가로막는 커다란 잔상으로 남았나 보다. 이런 석연치 않은 애매함을 더 이상 남기기 싫어서일까. 피아노를 샀다. 감성이 풍부한 아이들의 미래를 위하여. 밥상 앞에서도 손가락 연습을 시키고 피아노 교본 바이엘도 연습하고 체르니도 연습하면서 베토벤, 모차르트와도 친해지는 음악적 소양을 길러준 피아노였다. 매미 태풍 때는 밀려드는 흙탕물을 고스란히 맞았던 피아노다. 다시 음을 조율하였지만 본래의 음을 찾을 수가 없었던 수난을 겪은 피아노다. 새로운 주인을 찾아 주지도 못한 채 이렇게 우리는 이사를 가야 한다.
결혼할 때 피아노를 가지고 가겠다던 딸은 막상 결혼을 하게 되니까 피아노를 가지고 가겠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손녀가 유치원 졸업즈음 이름 있는 일본산 피아노를 사고야 만다. 옛날에 내가 했던 것처럼 손녀에게 예쁜 드레스를 입힌다. 대회 곡을 연습시킨다. 그리고는 대회에 나가게도 한다. 본인이 걸었던 길을 답습하고 있다. 나하고 다른 세상을 살아온 딸은 나와는 다른 선택을 할 줄 알았더니 내가 했던 일을 더 열심히 되풀이하고 있다. 참 아이러니 한 일이다.
익스프레스에 부탁을 하였다. 피아노를 좀 가져가시라고 했다. 아무도 없는 집에 버려지는 것들과 함께 피아노를 같이 있게 하고 싶지가 않았다. 피아노를 그냥 주겠다고 해도 선뜻 가져가겠다는 답을 안 한다. 그러면서 이사하는 날 아침에 피아노를 이리 살피고 저리 살피고 온갖 곳에 전화를 하더니 피아노를 가져가겠다고 한다. 피아노를 할 사람이 나타난 모양이다. 어휴! 안심이다. 어디를 가든지 멋지게 한자리 차지하고 있었으면 좋겠다. 이제는 이렇게 덩치 큰 물건을 사지 않으리라. 사용하던 사람이 떠나 버리면 무용지물이 될 지경도 안타깝다. 버려지는 것들의 아우성이 들리는 듯하다. 이사를 해 보고 짐을 싸면서 알겠다. 우리에겐 많은 짐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나이에 맞게, 시대에 맞게 짐 줄이는 연습을 해야겠다.
익스프레스 5톤 뚜껑 있는 차가 오기로 했는데 1톤 트럭 두 대가 골목 앞에 나타났다. 길이 좁아서 큰 차가 들어올 수 없었다고 한다. 멋지게 이사하는 계획은 일장춘몽으로 끝났다. 1톤 트럭이 제격이다. 8월의 쨍쨍한 뙤약볕은 아침부터 사람을 지치게 했다. 뚜껑 없는 1톤 트럭은 남편을 태우고 다리를 건너고 또 찾아서 건너고, 멀리서 이사 오는 사람들인 양 해안도로를 지나서 어시장을 거쳐 아파트에 도착을 했다. 이렇게 순조롭게 이사가 진행되니까 괜히 마음이 순해져서는 이삿짐 날라준 분들께 넉넉한 식사비를 주었다. 이사하는 날은 관례대로 자장면을 시켜 먹었다.
뚜껑 있는 차가 아니어도, 계획대로 되지 않아도, 이렇게 웃으며 마무리할 수 있는 날이야말로 진짜 좋은 이사 날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