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 따라온 괘종시계

by 복덕


명절 뒷날에 식구들과 함께 창동 구경을 나갔다. 어른 다섯에 초등학교 2학년 되는 손녀 하나 딸렸다. 명절마다 마산에 오면 인형 파는 가게에 들르는데 손녀는 우선 한번 쓱 둘러본다. 웬만한 놀잇감은 다 있는데도 명절마다 들르는 우리들만의 명소다. 이번 가게 주인은 손녀에게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하여 아이에게 물건 권하기에 최선을 다한다. 내 지갑에서 스스럼없이 결재를 유도하고 있는 중이다. 아이손님한테도 저렇게 적극적으로 최선을 다하니 결재할 어른이 감동을 하기 마련이다. 우리는 찻집에 들러 담소를 나누고 남편은 급하게 주문이 들어와서 먼저 자리를 떠났다. 오랜만에 여유로운 하루를 보내고 있다.


손녀가 할아버지 가게에 가고 싶다고 하여 가게로 오게 되었다. 마침 남편과 물건 실어 주는 사장님과 둘이 차에 물건을 나르는 중이었다. 아이들을 인사시키고 그 사장님은 손녀에게 용돈도 쥐어 주신다. 손녀는 감사하다면서 인사를 하고도 가게 밖으로까지 따라 나와서는 우렁찬 목소리로 새해 복 많이 받으시라고 또 꾸벅 인사를 해서 사람들을 흐뭇하게 한다. 평소 목소리 작다고 한 마디씩 하였는데 괜한 한마디였다. 벌써 저렇게 고마움을 표할 줄도 아는구나 싶다. 아기 때는 어찌나 예민하던지 안방 벽에 걸려 있는 괘종시계 째깍 거리는 소리도 그냥 넘기지를 않았다. 손녀가 오는 날이면 시간마다 알려 주는 땡땡땡 소리도 나지 못하도록 종을 정지시키고 째깍 째깍 소리도 나지 않게 시계 건전지를 빼놓곤 했었다.


안방 벽에 40년 가까이 된 괘종시계가 걸려 있었다. 이사 올 때도 버리지를 못하고 챙겨 왔다. 남편의 알친구들 계모임에서 결혼선물로 괘종시계를 선물해 주었다. 1980년대 넉넉지 않은 시대에 시계 선물하는 게 유행이었던 것 같다. 특히 부엉이 시계를 많이 보았는데 정신없이 부엉이가 나갔다 들어왔다 부엉부엉 하는 것보다는 취향 따라서 우리는 기다란 괘종시계를 선물 받았다. 양덕동에서 오동동으로 이사 올 때도 애지중지하면서 우리 집 보물 1호 인양 귀하게 가지고 왔다. 안방 벽에다 걸어 놓고 시간마다 땡~ 울리고 2시면 두 번 땡땡 울리고 12시면 열두 번 땡땡~ 했다. 시누이 집에서 살 때는 눈치 보느라 울리는 종소리는 죽여 놓고 살았

다. 눈치 안 보는 우리 집으로 왔으니 실컷 땡땡 거려라 하고 신기하듯 즐기면서 살았던 적도 있었다. 2003년 태풍 매미 때는 안방까지 흙탕물이 밀고 들어와 모든 가재도구며 벽지며 물바다가 되었다. 안방 벽 높게 걸려 있던 괘종시계는 태풍이 오든지 말든지 땡땡거리고 있었다.


아이들이 커감에 따라서 괘종시계의 종소리는 죽여지고 시곗바늘만 무의식적으로 째깍째깍 하였다. 항상 그 자리에서 변함없이 시간을 알려 주었다. 우리의 삼라만상은 일사천리로 세월을 먹고 있었다. 아파트로 이사 올 때 버리는 짐 더미에 널브러져 있는 괘종시계를 발견하고 갈등을 느낀 적도 있었다. 요즘은 저런 기다란 시계가 또 있을까. 무슨 쓰임새가 있을까. 아파트에 달 때는 있을까. 모르는 척하고 가지고 가지 말까 이런저런 고민을 하고 있는데 남편이 어느 틈에 날아와서는 애지중지 포장을 하고 있었다. 잘 닦여진 괘종시계는 또 안방 벽 높이 걸렸다. 예민한 손녀로 인해서 건전지가 빼지곤 하였지만 어느 틈에 자란 손녀는 괘종시계 째깍 거리는 소리 따윈 아무런 관심도 갖지 않는다. 있는 듯 없는 듯 괘종시계는 여전히 안방 벽을 차지하고 있다.


40년의 세월 동안 괘종시계는 변화됨이 없이 여전히 묵묵하게 본분을 다하고 있지만 우리들의 삶은 변화를 거듭하고 있다. 자의든 타의든 만났다 헤어지기를 반복하기도 한다. 오랜 세월 같이 해 온 계모임도 각자 집안의 대소사가 끝남으로 인하여 하나, 둘 계모임에 불참을 알리더니 급기야 완전히 계를 깨 버리고 만다. 몇십 년을 정해 놓고 만난 정을 하루아침에 와장창 해 버리는 일이 허다하게 생겼다. 나는 또 왠지 서운하다. 사람들과의 헤어짐은 여전히 익숙지가 않았다. 사람은 옛사람이 좋다 했는데 어디서 또 이런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을까. 모임을 안 해도 언제든지 만난다는 장담들을 하였다. 그 장담들을 지켜진 예가 있든가 알고 싶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고 하지 않았던가. 어쩌다 만나면 괜히 어색할까.


남편의 알친구 계모임도 한두 명이 불참을 선언하고 있다. 타 지역에서도 꼭꼭 참석하더니 갑자기 나빠진 가정형편으로 모임에 나오지를 못한다. 언제든지 형편과 상관없이 나와도 된다고, 기다린다고 하였지만 쉽지 않은 일이란 걸 우리는 다 알고 있다. 해마다 외국 여행도 다니는 여행 모임이기도 하였다. 마음에 안 들어 티격태격한 적도 있었지만 몇십 년을 알고 지낸 막역하게 좋은 사람들이다. 코로나가 끝나고 들뜬 마음으로 여행계획을 세웠더니 대부분이 여행 가기를 포기하고 만다. 코로나로 인한 탓일까. 아니면 흘러간 세월 탓일까. 무엇이든 우리의 많은 것이 변하고 있다. 이제는 예전으로 돌아가지 못하리란 생각이 드는 것은 기우였으면 좋겠다.


모임회장도 그때 뽑아진 그대로이고 모임 총무도 그때 그대로인데 모두가 그때 그대로이면 얼마나 좋을까. 어느 해 눈이 펑펑 내리던 새해 아침에 제주도 성산 일출봉에서 젊음의 즐거움을 만끽하였고, 40도의 무더위 속에서 캄보디아의 역사에 경악을 금치 못한 적도 있었고, 중국 계림에서는 월계수 나무를 바라보면서 보이차를 마시기도 하였다. 이런 우리들의 젊은 날의 초상화는 그대로인데 우리의 희망은 변해 버렸다. 안방 벽에 걸려 있는 괘종시계는 안방과는 어울리지 않는데도 어울리는 양 태연하게 있다.

우리는 예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지만, 그때의 웃음과 기쁨은 여전히 현재를 살아가게 하는 힘이 된다. 변하지 않는 추억이 있기에 변화하는 오늘도 견딜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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