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문

by 복덕


새벽 4시 30분, 알람이 울리지도 않았는데 눈이 떠졌다. 벌떡 일어나서 우선 몸을 깨우는 의식을 했다. 눈도 떠지지 않으니 당연히 몸도 일어날 준비가 안 됐으리라. 앉아서 발바닥을 문지르고 종아리도 쓸어주고 각 림프선도 쓸어주고 이런 의식을 끝내고 침대를 나왔다. 남편은 코를 골고 있었다. 저리 곤히 자는데 깨워야 한다. 오늘 병원 정기검진은 6시간 금식인데 지금 계란이라도 한 개 먹으려면 일어나야 한다. 계란 한 개와 콜라겐을 내어 놓고 일어나라고 해 본다. 10분만 더 자겠다고 한다. 남편은 배가 고픈 걸 참지 못하는 사람이다. 12시간 공복을 유지하면 건강에 더 좋다고 하는 데 도저히 그런 건 꿈도 못 꿀 일이다. 아슬아슬하게 공복시간을 지켜 기차 시간을 서둘러 본다.

아파트를 나오니 추웠다. 웃지방은 눈이 몇 센티미터가 쌓이니 하는 뉴스를 들었던 터라 패딩을 다시 내어 입었다. 10일 전에 기차표를 샀는데 오송에서는 입석으로 가야 한다. 이른 아침에 수서 쪽으로 가는 사람이 그리 많다는 것에 놀라고 말았다. 다행히 택시가 빨리 오는 덕분에 기차 시간 늦을까 종종걸음을 안 치게 되었다. 개인택시가 아니라 영업용 회사 택시를 탔다. 남편은 아파트 앞에서 역까지 가는 그 시간 동안 운전사 아저씨와 항상 티격태격한다. 특히 개인택시를 타면 더 그러하다. 일부러 신호등에 걸린다느니, 일부러 느리게 신호 받는다느니 하면서 불만을 토로한다. 오늘은 택시가 쏜살같이 달려 신호등에 멈추는 일이 없었다. 남편도 불만 없이 조용하였다.

차가운 새벽 공기를 맞으면서 하나, 둘 기차 시간에 맞춰 역으로 모여드는 사람들. 눈에 들어오는 늙은 사람들. 혹은 젊은 사람들. 모두들 부스스한 아침의 얼굴빛을 하고는 혼자서 혹은 둘이서 역내를 서성이고 있다. 플랫폼을 내려가 차가운 공기를 맞으면서 이리저리 서성이고 있는데 아는 얼굴이 있었다. 앞 동네에 사는 사람이다. 옛날에 우리 가게 맞은편에서 국숫집을 하던 아저씨와 아줌마다. 섣불리 아는 체를 하지 않고 멀리서 바라보고 있었다. 오늘 날씨가 추운데 둘이 다 옷을 춥게 입고 있었다. 모습을 보니 아저씨가 아픈 모양이다. 온몸에 아픈 기색이 나타나 있다. 한평생을 음식 배달하며 지낸 모습이 선하다.

몇십 년 전에 한 동네에서 장사를 하였다. 신혼 초에 나는 군무원 생활을 하고 남편은 과일가게를 할 당시. 소방도로를 사이에 두고 있는 국숫집. 딸 셋에 아들 하나를 두고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고 있었다. 동네 장사다 보니까 살림집도 바로 동네라서 시어머니도 하루에 두어 번 가게에 다녀가고 아이들도 가끔씩 보곤 하였다. 아이들이라고 하지만 그때 당시만 해도 큰딸은 연세대를 나와서 신랑 아버지가 교장 선생님인 교육자 집안에 시집간다고 자랑도 하고는 했었다. 작은딸 결혼식장에는 나도 참석을 했다. 그러고 보니 아저씨, 아줌마가 몇 살인지도 모르고 이웃에 장사를 하면서 살았던 것 같다. 물론 성씨도 모르고 이름도 모른 채로.

복개천에서 장사를 하다가 복개천을 다시 하천으로 만드는 바람에 같이 장사하던 사람들이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다. 그래도 동네 토박이들이 많은지라 흩어진 사람들과도 오며 가며 인사하며 지내는 일이 종종 있었다. 그렇게 세월이 얼마큼 흐른 후에 자꾸 이상한 소문이 내 귀에까지 들리게 되었다. 우리 집은 버스 다니는 길 아래쪽에 있었고 국숫집은 버스 다니는 길 위쪽 동네에 있었다. 그 국숫집 소문이 자꾸 암암리에 들려오는 것이다. 밤만 되면 국숫집 아저씨가 장독대에 올라와서는 달님한테 기도를 한다는 것이었다.

“달님, 달님 우리 엄마 좀 데려 가이소.”

어찌 이 말이 기도일까. 세상 선하게 생긴 아줌마와 아저씨인데 기도의 내용이 범상치가 않았다. 주택이라 다닥다닥 붙어 있어서 옆집에서도 들리는 이 기도를 달님이 들어주었는지 그해 아저씨의 엄마는 달님 곁으로 스스로 가셨다고 한다. 소문은 꼬리를 물어물어 어디까지 퍼져 나가고 한동안 아저씨 아줌마의 표정 없는 얼굴이 눈앞을 스쳐 가곤 하였다.


. 그날 아줌마는 아저씨를 기차에 태우고, 멀찍이서 손을 흔들며 배웅했다. 저렇게 몸도 불편한 사람을 어떻게 혼자 보낼까, 걱정스러운 마음에 다시 소문이 떠올랐다. 혹시 정말 모진 사람이었을까, 저 얇은 옷 하나 걸친 채 차가운 새벽길로 보내다니, 온갖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하지만 다행히도, 어느 지역에서 내릴 때 아저씨를 부축해 함께 걸어가는 젊은 남자의 모습을 보았다. 아마 아들 같은 사람이었겠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기차가 떠나간 플랫폼에는 아직도 새벽기차를 타고 어디론가 향하는 사람들의 바쁜 뒷모습이 이어지고 있었다. 나는 한참 동안 그들을 바라보았다. 모두가 병원을 향하는 것은 아니겠지. 그래야 할 텐데, 문득 그렇게 바라보며 혼잣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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