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 가면 내 호흡기 담당의사는 항상 이렇게 말했다. “이번에 몸무게 좀 늘었나요.” 하고, 남들은 다이어트에 신경 쓰는 데 나는 살을 찌우는 데 신경 써야 한다. 몸무게가 좀 나가야 면역력도 올라가고 감기몸살도 덜 한다고 했다. 그렇게 말한 담당 의사가 충청도로 가 버렸다. 몇 년 동안의 담당 주치의가 이렇게 불쑥 환자를 두고 가버렸다. 갑자기 서운하다. 마음에 드는 의사라서 내심 의지도 하고 있었나 보다. 그러다 때마침 감기몸살에 걸렸다. 감기몸살 걸리지 말고 살 빠지지 말라고 했는데 조금 찌웠더니 수루룩 일 킬로 빠졌다. 남들은 일 킬로를 가지고 무슨 수루룩 빠졌냐고 하겠지만 나에게는 겨우 일 킬로가 아니다. 몇 달을 노력해야 일 킬로 겨우 찐다. 밥맛이 없다. 입맛도 없다. 자꾸 뭐라도 먹어야 한다는 강박이 들어온다.
아파트 친구와 스타벅스 커피숍에 갔다. 평소에는 동네 커피숍에 가는 데 오늘은 입맛을 찾기 위해 스타벅스에 갔다. 스타벅스에 가면 생크림 카스텔라가 있다. 2년 전 남편이 서울 병원에 입원하였을 때 우연히 들른 스타벅스에서 맛본 생크림 카스텔라가 삶의 활력을 더해 주었다. 한동안 생크림 카스텔라에 빠지기도 하였다, 오랜만에 맛보게 된 생크림 카스텔라! 그 맛은 변함이 없었다. 룰루랄라 하면서 커피숍에서 실컷 수다를 떨다가 남은 커피를 들고 집으로 왔다. 식탁 위에 까만 봉지가 놓여 있었다. 스르륵 소리를 내면서 뭔가가 움직인다. 밥맛없다고 노래를 불렀더니 남편이 장을 봐 논 모양이다. 봉지를 한번 쓱 대 보니 뭔가 납작하니 느껴진다. 뭐지, 납세민가 하면서 봉지를 풀어 보니 꽃게가 뒤엉켜 있었다. 납세미는 손질하기 좋은 생선이고 콜라겐도 다른 생선보다 많다고 해서 되도록 납세미를 사 오라고 주문한다. 봉지 속의 꽃게들은 살아서 집게발로 서로 물어뜯고 난리다.
대여섯 마리만 덜어내고 쌀겨와 뒤엉켜 있는 남은 꽃게를 도로 싸서 냉동실에 넣었다. 살아 있는 걸 어떻게 처치해야 될지 몰라서 우선 냉동실에 넣었다. 생물은 그대로 두면 살이 빠진다고 들은 것 같다. 나는 지금 입맛 돋는 무언가를 먹어야 한다. 손질하기는 좀 버거워도 때마침 잘 사 온 것 같다. 된장찌개를 끓여야 되겠다. 갑자기 군침이 돌면서 입맛이 돌아오는 느낌이 든다. 꽃게를 손질하고 감자를 깎아서 준비하고 청양고추 썰어 놓고 양파, 표고버섯, 마늘, 두부, 맞지 꽃게 된장찌개에는 두부가 꼭 들어가야지. 조금 단단한 부침두부 말고 마트에서 파는 찌개용 두부를 넣어야 야들야들 하니 한 맛이 더 난다. 된장을 풀어서 준비한 재료를 넣고 보글보글 끓였다. 습관적으로 맛 내기 코인도 한 개 넣었다. 얼른 한 숟가락 떠먹어 보았다. 맛이 기가 막힌다.
아들하고 같이 꽃게 된장찌개를 메인요리로 해서 밥을 먹었다. 아들은 꼭 오늘의 메인요리를 따진다. 나는 집밥에 뭔 메인요리냐며 항상 티격태격한다. 집밥에는 메인요리보다는 칠첩반상이니 구첩반상이니 이런 말이 어울리지. 하지만 오늘은 자신 있게 꽃게 된장찌개가 메인요리라고 했다. 아들도 맛있다고 했다. 옛날에는 맛이 밍밍했는데 지금은 깊은 맛이 난다나 뭐라나. 갈수록 음식솜씨가 는다고도 했다. 나는 싱싱한 재료를 써서 넉넉하게 했으니 낼 아침에 또 먹으라고 했다. 입맛 없을 때 후루룩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이런 음식이 있어서 좋다. 나는 맛있는 것은 서너 끼를 너끈하게 먹을 수 있는데 아들은 아무리 맛있어도 두 끼를 못 넘긴다. 까다로운 입맛에 메인요리나 찾고 그래도 나는 꽃게 된장찌개 덕분에 입맛 밥맛이 완전히 돌아왔다.
몇 년 전, 마산 롯데백화점에서 열린 민화 전시회에서 내가 낸 제목 “화색에 반하다”가 공모에 당첨되었다. 감회가 새로웠던 전시회였다. 그 소식을 들은 친구가 축하 선물로 멸치다시물을 건넸다. 정성 들여 멸치를 다듬고 끓여 식혀서 페트병에 담아 얼린 것이었다. 이런 정성이 들어간 선물은 고마운 마음보다 당혹스러움이 먼저 찾아온다. 어떻게 먹어야 할지 막막했고, 당분간 국 끓일 일도 없었다. 결국 내 그림을 옮겨주던 회원 언니께 보답 삼아 나누었는데, 언니 역시 선뜻 받아들이지 못하는 듯했다. 호의로 시작된 선물이 때론 서로를 어색하게 만들 수 있음을 그때 알았다.
옛 직장 친구 모임에서 멸치다시물 얘기가 나왔다. 나더러 아직도 다시물 내어 국 끓이냐며 핀잔이다. 코인을 쓰라고 한다. 요즘 잘 나오는 제품에 본인 이름 걸고 하는 데 몸에 안 좋은 걸 쓰겠냐는 거다. 나는 멸치다시물을 즉석에서 내어 쓰고 조미료는 쓰지 않는데 코인에서 그 맛이 나올까. 집에 와서 홈쇼핑 코인 방송을 유심히 보기 시작했다. 화학적인 재료는 안 들어가는 것 같기도 했다. 멸치 찌꺼기도 안 나올 거고 다시 백도 쓰레기로 안 나올 거고 바쁠 때 종종걸음 치지 않아도 되겠다. 코인으로 바꿔 볼까.
맛의 신세계가 열렸다. 나의 몇십 년의 요리 실력이 절정에 달했는가 싶다. 약간은 밍밍하고 담백한 나의 찌개 맛에 변화가 시작되었다. 기본양념에 살짝 코인 한 개 떨어뜨리면 음식 잘하는 요리사 음식이 된다. 아무도 눈치 못 채는 나만의 비법으로 해야 되겠다. 사실 꽃게 된장찌개에는 코인이 들어가지 않아도 충분히 맛있지만 코인 한 알이 들어가면 맛의 퀄리티가 다르다고 해야 되나. 아들이 꽃게 된장찌개의 비법을 물어도 그냥 싱싱한 재료에 간을 잘하면 된다고 했다. 이렇게 자꾸 문명의 혜택을 받으면서 발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