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바라보다.

by 복덕


열심히 사느라고 살았건만 문득 뒤돌아볼 때 도무지 산 자취가 느껴지지 않을 때가 있다. 아마도 생애를 스쳐 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순간들을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 직장도 다녀 봤고, 공부도 해 보았고, 봉사활동도 해 보았네. 독서도 하고 그림도 그려 보았는데 뚜렷하게 남겨진 것이 없다. 섭섭한 마음만 남았나. 눈물 그렁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게 되는 날이 있다.


하루에 감사한 일을 세 가지 정도를 일기로 써 보라고 한다. 누가 했는지 모르겠다. 감사한 일을 찾아보기로 했다. 그냥 일상이지 특별하게 감사한 일이 별로 없었다. 감사한 일보다 서운한 일만 자꾸 떠오른다. 대단한 감사한 일 말고 사소한 감사한 일을 찾아보자. 일기로 안 되면 생각이라도 하자. 이렇게 연습을 좀 해 보기로 했다. 저녁에 감사한 일을 찾지 못하면 아침에 일어나서 생각해 보자. 창문 너머 수평선을 바라보면서 염원도 아닌 애매한 감사함을 기도한다. 오전 7시 이전에 회사 출근하는 사람들을 내려다보면서 출근하는 모습들을 보게 된 걸 감사하다고 해 본다. 어젯밤에 복잡한 생각으로 잠을 잤는데 개운하게 일어날 수 있어서 감사하다고 해 본다. 아침 해가 불쑥 얼굴을 내밀 때 바다 위에 반짝이는 윤슬을 보게 됨에 감사하다. 아! 이런 게 감사한 일이구나. 마음이 편하다.


딸이 10여 년간 주던 용돈을 끊었다. 대형 티브이며. 의료기며 얼마 전에는 휴대폰도 새로 바꿔 주었다. 이것저것 막 사주더니 내가 제일 좋아하는 달마다 주던 용돈을 주지 않는다. 얘가 날짜를 잊었나? 별별 추측을 하면서 나를 괴롭힌다. 자존심을 죽이고 용기 내어 슬쩍 떠 보았더니 내가 주지 말라고 했단다. 나는 속으로 깜짝 놀랐다. 물론 많이 받는 건 맞지만 그래서 흐뭇했지만 그런 말은 하지 않았는데. 감사하다고 한 인사치레 말을 안 줘도 된다고 받아들였을까? 안 그래도 자꾸 마음의 거리가 멀어져만 가는 것 같은데 딸은 한 걸음 더 가버렸다. 사실 용돈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 용돈으로 이어진 무언가가 있기 때문이다. 놓치고 싶지 않은 끈 같은 거라고나 할까. 공허한 마음이 든다.


이웃 친구와 함께 찻집에 갔다. 딸 둘에 아들이 있는 친구다. 우리 엄마들의 성공 기준이 있다. 자식들이 좋은 직업을 가졌거나 아니면 돈을 많이 버는 자식이 있으면 으쓱해진다. 이 친구는 이 조건을 골고루 다 갖추었다. 큰 딸은 돈을 어마어마하게 번다. 둘째 딸은 선생님이고 아들은 공무원이다. 다 결혼을 해서 다복한 생활을 누리고 들 있다. 이 부러움의 대상인 친구가 눈물, 콧물 닦아가면서 내 앞에서 울고 있다. 사람이 속 깊은 이야기를 털어놓기가 싶지 않은 일인데 속 깊은 얘기를 나한테는 좀 하는 편이다. 내가 상대방의 얘기를 잘 들어주는 편함이 있나 보다. 가만히 들어 보니 큰딸이 엄마와 거리 두기를 시작한 모양이다. 친구 딸은 나이가 사십 중반인데 친구는 이제 허전한 마음이 드는지 아니면 참고 있다가 나에게 털어놓는지 알 수는 없다. 나도 딸 때문에 마음 상한 적이 있기에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부모는 거리 두는 게 싫은 데 은연중에 자식들은 자기들의 길을 가고 있다.


친구는 딸이 처음 결혼해서 손자가 초등생 때까지 딸의 부엌살림을 도맡아 해 주었다고 한다. 큰 딸은 결혼을 했어도 공주처럼 살랑살랑 산다고 한다. 이런 딸을 위하여 거실이며 부엌이며 반들 받들 하게 빛날 정도로 최선을 다해서 해 주었단다. 이제와서는 그 공로도 모르고 자기 살림을 엄마 마음대로 하지 않았냐 하더란다. 부모들은 항상 마음속에 자식 생각뿐인 것 같다. 저만치 간 자식의 뒤를 하염없이 바라보는 자식 바라기 하는 부모가 되어 버렸다. 딸들은 가끔씩 엄마들을 공허하게 하기도 한다. 친구는 자기의 이 허전한 마음을 글로 표현해서 큰 딸에게 주고 싶다고 한다. 내가 답을 내려 주었다. 글로 남기면 안 된다고 했다. 만나서 얘기를 하라고 했다. 나도 못하는 걸 친구에게 해 보라고 했다. 친구는 딸하고 가포로 드라이브를 갔다. 엄마와 딸 사이니까 오해랄 것도 없이 칼로 물 베기이리라. 그 후로 친구는 만면에 웃음을 띠고 화려하게 차려입고 파크골프에 푹 빠져 있다. 내가 처방을 잘 내려 주었나 보다.


나는 여전히 창밖을 내다보면서 사소한 감사한 일을 찾고 있다. 불현듯 생각이 났다. 내가 딸한테 한 말이. 딸이 처음 직장을 나갔을 때 일이다. “엄마가 연금을 넣었는데 연금 끝날 때까지만 용돈을 줘” 했었다. 내가 넣던 연금은 끝났고 이제는 연금을 받는다고 했었다. 용돈 주지 말라고 내가 한 말이다. 다 생각해 보면 섭섭함의 끈을 놓지 못한 나의 잘못이다. 아들이 슬쩍 지나면서 내가 글 쓰는 걸 보고는 누나가 용돈을 끊었냐고 묻는다. 엄마가 주지 말라했다고 했더니 주지 말랬다고 안 줘요. 몇 번이고 거절을 해도 줘야지 한다. 나의 서운했던 마음이 일순간 사라진다. 사소한 감사기도가 나에게 답을 한 것일까. 서운함 한 스푼 걷어갑니다.라고


딸이 얼마 전부터 주말농장을 한다고 한다. 첫 번째 작물로 열무를 심었다고 했다. 얼마 후 열무가 빽빽이 나서 실처럼 하늘하늘하다고 농장 관리자가 문자가 왔다고 한다. 그래서 내가 열 개 중에 일곱 개 정도는 뽑아 버려야 한다고 했다. 또 하루는 푸릇푸릇한 열무 사진을 찍어서 보내오기도 한다. 풍성하게 농사도 잘 짓는구나 싶다. 나도 절로 마음이 풍성해지기도 한다. 어느 날은 카톡이 온다. 열무가 씻겨져 있고 물김치 양념한 통이 놓여 있다. 손녀가 열무에 양념 물을 붓는 걸 보여준다. 절로 군침이 돈다. 딸이 나에게 알려 준다. 열무를 뽑아서 시댁에 가져왔다고. 어머님이 어찌나 맛있게 김치를 담가 주신다고 한다. 어머님은 정말 솜씨가 대단하시다고 시어머니 칭찬 일색이다.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충분히 느껴지는 둘의 사이를 꼭 확인을 시켜 준다. 딸 같은 며느리라서 좋겠다.


나를 바라보고 있으려니 괜히 심통이 난다. 걷어간 서운함 한 스푼이 다시 돌아왔다. 사람에게는 저마다 혼자 가꾸어야 할 자기만의 세계가 있다. 적당한 거리의 여백으로 인해 서로 애틋하게 그리워할 수 있는 그만큼의 거리만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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