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나 찍으세요.

by 복덕


손녀가 초등 2학년 때 쓴 말이다. “가을이 여름을 밀어냈다.” 는 이 말이 순식간에 일어났다. 그러고는 마땅하게 자기 자리를 찾은 양 선선한 가을을 내주고 있다. 무엇이든 지나간 후면 아쉬움이 남기 마련이다. 다행하게도 그 무더웠던 여름에 우리 가족은 함께 경주 여행을 갔었다. 어찌하다 보니 경주 한번 가기가 그렇게 힘이 들었다. 항상 마음으로 그리던 도시였다. 그 옛날, 신혼여행을 경주로 갔었다. 불국사 대웅전 옆 계단에 앉아서 찍었던 사진이 기억에 남아 있다. 그러고는 아이들이 어릴 때 두 번 정도 더 갔었다. 이번에 나이 들어간 경주 여행. 젊었을 때의 추억에 감회가 새로웠다. 신혼여행 때 앉았던 대웅전 옆 계단이 이쪽인지 저쪽인지 아리송했다. 청운대 백운대도 그 자리에 있건만 자꾸 어딘가 달라진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킨다. 시공간을 초월한 마음에서 오는 착각인가 싶다.


무더웠던 여름에 가족여행을 한 덕분인지 가을을 맞이함에도 어려움이 없었다. 멋지게 가을 계획을 세우고 싶다. 2024년 10월 10일, 어마어마한 뉴스가 나왔다. TV에서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받는다고 한다. 노벨상을 우리나라 작가가, 놀라움이 가시지를 않는다. 내 일이 아니건만 내 일보다 더 가슴이 벙벙하다. 이렇게 가슴이 벙벙한 채 가만있어도 되나. 가만있지를 못하겠다. 노트북을 열었다. 밀리의 서재에 들어갔다. 한강 작가의 책이 한 권도 없었다. 속마음으로 어이구 하고는 아들을 불렀다. 때마침 아들이 말했다. “엄마, 한강 작가가 노벨상을 받는대요” 아들한테 빨리 책 좀 주문하라고 재촉을 하였다. 이런 소동이 벌어지고 있는 가을날에 전화가 왔다. 그녀가 말했다. 영정사진 찍는 법을 알려 주겠노라고. 무슨 찬물 끼얹는 소리를 하였다.


매년 은행잎이 노랗게 물들 무렵이면 서너 명이 모여 가을 나들이를 한다. 은행잎이 흩날리는 가을길을 그냥 걸어도 좋을 텐데, 그녀는 그 순간을 가만히 흘려보내지 않는다. 은행나무를 배경 삼아 끊임없이 사진을 찍고, 또 찍힌다. 손에 든 은행잎을 하늘로 뿌려 올리기도 하고, 잠시 서서 있는 듯 없는 듯 포즈를 취하기도 한다. 그녀에게는 모든 것이 사진의 소재이고, 사진을 위해 움직이는 듯하다.

문제는 그 열정이 자기만의 영역에 머무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 카메라를 들면, 그녀는 곧바로 나서서 배경을 어떻게 잡아야 한다, 각도를 조금 더 틀어야 한다 하며 간섭을 시작한다. 심지어 웃는 듯 웃지 않는 듯, 미묘한 표정까지 지으면서. 그러다 보니 그녀의 사진은 놀랍게도 모두 비슷한 얼굴로 채워진다. 어딘가 만들어진 듯한 웃음, 반복되는 표정들.


나는 그런 어색한 모습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억지로 만들어 낸 웃음을 마주하는 것도 피곤하다. 그래서 늘 한 발짝 물러서서 그녀를 바라보곤 한다. 사진을 향한 그녀의 집요함을 이해하려 애써 보지만, 쉽게 납득이 되지 않는다. 사람들은 그런 모습을 두고 ‘자기애가 강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정작 그녀가 왜 그렇게까지 자기애가 강한 사람이 되었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어쩌면 사진 속에서만큼은 자신을 확인하고 싶은 것일지도 모른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나는 단체 사진 속에서 남과 함께 웃고 있는 나를 좋아하고, 그녀는 사진 속에서 오롯이 자기만의 순간을 확인하길 원하는 것 같다. 똑같은 은행잎 가을을 두고도, 우리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추억을 붙잡는다.


그녀를 알고 지낸 지도 이십여 년이 된 것 같다. 지역의 명문 여고를 나왔다고 했다. 명문 여고란 명칭이 참 추억의 일부분 같은 느낌이 든다. 동창회니 반창회니 하며 으쓱하게 갔다 오고는 꼭 나에게 알려 준다. 옛날의 학교 명성에 으쓱해하는 사람이 아직도 남아 있다. 추억의 깊이가 다른가 보다. 잘난 척하고 다녀도 그러려니 한다. 지금 이 나이에 잘나고 못나고를 따져서 뭐 할 것도 없는 일이다. 저 혼자서도 행복하면 다행한 일이기도 하고. 동창생을 제외하고 마음을 준 이가 나인가 보다. 사박사박 하는 소리가 나를 점령한다. 나는 건성건성 들으려 애를 쓴다. 틈을 주지 않으려고도 애를 쓴다. 소용이 없다. 자꾸 그녀가 한 말들이 생각이 난다. 별말은 아니다. 그냥 사박사박 거린다. 내 생각에 그녀가 들어와 있다. 나는 생각지옥에 빠져 있는 모양이다.


가을이 되자마자 그녀에게서 전화가 왔다. 나는 갑자기 졸림이 시작되었다. 잠자러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전화기를 엎어 놓고 잠자러 갔다. 전화 온 걸 보고 잠자러 가는 내가 생뚱맞겠지만 그렇게 했다. 억수같이 쏟아지는 졸림에 깜빡 잠이 들었다. 은행나무 밑에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녀는 다홍색 짧은 패딩을 입고 있었다. 이게 뭐야 꿈이야 생시야. 선명한 색상이 꿈에서도 생시인 것만 같았다. 나의 마음 상태가 정상이 아닌가 보다. 사박거리는 소리에서 탈출해야 된다. 맙소사, 틈을 주지 않고 또 전화가 왔다. 내 목소리를 들어야 안정이 되나 보다. 우리는 둘 다 큰일이다. “여보세요” 한다. 또 사박사박 무슨 말을 할까. 아직 단풍도 덜 들었는데 단풍 보러 가자고는 안 할 거고 어디 아픈가. 나는 항상 이런 생각을 한다. 그녀가 조금 아팠던 적이 있었다. 아픈 소리를 내가 또 들어준다. 그리고는 나도 아픔의 고통을 느낀다. 물론 이런 생각은 나의 기우로 끝나는 일이 많았다. 대뜸 한다는 말이 사진 찍는 걸 가르쳐 주겠다네. 뭔 사진? 죽었을 때 찍는 사진 그를 뭐라 하지 아, 금방 단어를 떠올리기가 싫다. 아! 맞다. 영정사진!, 영정사진을 집에서 찍는 방법을 가르쳐 주겠단다.

“ 으아악 ”

비명을 지르고 싶다. 몇 년째 무슨 단체에 열심이더니 또 배워 왔나 보다. 그렇게 배워 오면 나한테 토해 내고야 만다.


‘너나 찍으세요.’ 했다. 나는 안 찍겠다고 했다. 그러니까 또 나긋하게 섬세하게 되묻는다. 사진관에서 찍을 거냐고 천연덕스럽기조차 하다. 갈수록 할 말을 잃게 만든다. 항상 이런 식이다. 나도 한계치가 있는 사람인데 이 한계치가 소용이 없다. 뭐라나 지금이 영정사진 찍기 제일 좋을 때라나. 너무 늙지도 않고 너무 젊지도 않은 이 가을이 영정사진 찍기가 제일 좋은 때라고 한다. 죽어서도 자기가 원하는 표정으로 남겨야 한다는 것이다. 긴가민가했는데 자기애 갑인 그녀다. 내가 말했다. 왜 자신의 영정사진까지 준비를 해야 하냐고, 자연스럽게 흐름에 따르는 것이 좋지 않겠냐고, 너는 사진도 엄청 찍었으면서 사진 고르기가 뭐 힘들까 했다. 애들한테 엄마 사진도 구경하면서 선택하게 하는 건 어떠냐고 했다. 어련히 예쁜 사진 골라서 해 주려고.


올해 가을은 노란 은행나무 풍경을 보러 가기는 다 틀렸다. 같이 볼 마음의 준비가 안 된다. 우리가 항상 가는 장소는 가포 지나서 태봉병원 사이에 있는 길인데 정확한 지명은 알지 못한다. 항상 친구 차에 실려 다니다 보니 지명 알기가 어렵다. 그녀는 자꾸 나를 가르치려고 한다. 어느새 스며드는 사박사박! 나이 들어서는 나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는 말을 듣기가 불편하다. 아무 말 없이 그냥 있어도 불편하지 않는 그런 관계가 좋다. 함께 조용히 앉아 있는 편안한 관계는 연습이 필요하다고 하였다. 그녀와 나는 연습을 해야 하나. 그녀의 말들이 자꾸 사박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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