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베란다에는 이름을 잘 모르는 풀꽃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아파트로 이사 오기 전에는 화단에서 사시사철을 보내다가 겨울이면 얼기도 하고 어느 해는 없어지기도 한 풀꽃들이다. 다들 제 화분을 차지하지 못하니까 다육이 옆에서도 자리를 잡고 개운목 옆에서도 자리를 잡았다. 아파트로 이사 온 후 풀꽃이 자라고 꽃이 피고 지고 해도 뽑아내지 않고 가만히 두었다. 아파트 베란다에서는 풀꽃도 제 몫을 단단히 하기 때문이다. 작년에는 이사 온 지 이년이 지났는데도 화분의 흙 속에 묻혀 있다가 잡초처럼 싹이 난 풀꽃이 있었다. 성장속도가 어찌나 빠른지 빈 화분에 흙을 채워서 옮겼더니 일 년 동안 노란 꽃을 주저리주저리 피웠다.
소용없는 잡초도 이름이 있다고 했는데 자꾸 풀꽃들의 이름 알기를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다. 화분의 주인보다도 더 왕성한 이들의 이름을 알아줘야 되겠다. 네이버 검색 렌즈를 돌렸다. 다육이 옆에 번성한 네 잎 클로버를 닮은, 잎과 색깔이 예쁜 분홍색인 풀꽃은 자주괭이밥이고 개운목 밑에서 자라는 풀꽃은 봉의꼬리라는 양치식물, 이름을 알고 나니 흡사 봉황의 꼬리처럼 생겼다. 성장이 빠른 노랑꽃을 주저리주저리 피운 개불주머니, 키 큰 산세베리아 밑에 밥공기만 한 화분의 주인 풀꽃은 선괭이밥이다. 아무 걱정 없이 피고 지고를 되풀이하는 풀꽃들이다. 모두들 번듯하게 자리를 잡았다. 이름난 고급식물 보다 이렇게 생명력이 강해 제 살길은 스스로 개척해 기개를 펼치고 사는 이런 식물들이 좋다.
식물을 좋아하는 나와는 다르게 동물을 좋아하는 남편 때문에 마음앓이를 한다. 가게서 장사를 할 때도 그렇다. 지나가는 강아지들을 그냥은 못 보낸다. 이름을 묻고는 쓰다듬고 간식을 주면서 흠뻑 정을 쏟는다. 그런 강아지가 몇 마리 된다. 이들의 관계가 얼마나 끈끈한지 남편이 없을 때도 강아지들은 주인을 이끌고 꼭 가게를 거쳐서 간다. 나는 싫은 내색도 못하고 이런 광경들을 덤덤한 척 받아들이고 있다. 그중 좀 사나운 강아지는 남편이 간식을 줄 때 과격하게 받아먹을 때도 있다. 그러면 나는 전전긍긍 걱정하는 사람이 된다.
사연의 발단은 강아지가 아니었다. 비둘기, 이 비둘기 때문에 무슨 일이 일어날 줄 알았다. 주위의 상인들은 남편 때문에 비둘기가 온다고 하였다. 남편은 이런 주변의 시선에 별 신경을 안 쓴다. 가끔씩 내 잔소리를 피해서 가게에서 떨어진 곳에서 비둘기와 놀기도 한다. 더구나 평화의 상징이었다는 비둘기를 이런 지경으로 만들었다고 푸념을 늘어놓는다. 살다 살다 비둘기가 내 삶에 뛰어들 줄 누가 알았겠는가.
가게 이층에는 유흥업 십장 일을 하는 남자가 세 들어 있다. 한날 저녁 시간에 폰에 비둘기가 벌여 논 청소거리를 찍어 와서는 신문을 읽고 있는 남편더러 이 사진 좀 보라고 한다. 남편은 그 사진을 왜 보여 주는 지도 깊게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냥 그러려니 할 뿐이다. 민감한 나는 저 남자가 무슨 트집을 잡으려고 저런 걸 찍어서 보여주나 예의 주시하게 된다. 나는 또 잔소리를 늘어놓는다. 비둘기와 떨어지라고. 알았다고 해도 그때뿐이다. 다음날도 이층 남자는 곱지 않은 시선으로 힐끗거린다. 그날도 그랬다. 비둘기 두 마리, 남편이 좋아하는 비둘기 다. 저녁이 되도록 그 두 마리는 가지 않는다. 남편은 그 비둘기 두 마리가 애처롭다며 땅콩을 몇 알 으깨어 가게 앞에 뿌려 놓는다. 땅콩껍질이 이층 남자의 심기를 건드리고 말았다. 나는 돌아앉아 있는데 빗자루를 들고 구시렁대면서 먼지를 일으킨다. 상식적으로 따져도 그 몇 알 되지도 않는 땅콩껍질과 이층 남자가 무슨 연관관계가 있는지 아리송하다. 왜 그러냐고. 속으로 겁먹으면서 차분하게 물어보았다.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할 외계어를 한다.
비둘기 모이 주는데 이층 남자는 왜 열을 받는지 이해하기가 싶지 않다. 남편한테 눈짓을 했다. 나와서 싸우라고, 남편은 내가 싸 온 도시락으로 저녁을 먹다가 생각했으리라 저녁을 다 먹고 나갈까 하고. 짧은 순간이지만 극도의 적막감이 돌았다. 이층 남자는 더 화가 나는가 보다. 고함을 치면서 말을 하는데 정확하게 무슨 말을 하는지 못 알아듣겠다. 혼자 흥분을 하였다. 저녁밥을 다 먹은 남편도 나와서 못 알아듣는 말로 고함을 쳤다. 일단은 고함을 치고 볼 일이다. 목소리가 커야 이긴다 하지 않았던가. 이층 남자는 위아래도 없는 듯 안면 몰수로 막 나가고 있는 중이다. 나이로 따져도 열 살은 넘게 적을 텐데 멀쑥하게 어른한테 고함질이다. 못 배워먹은 티 내는 것도 아니고. 왜 남편 때문에 비둘기가 날아온다고 생각을 할까. 독일 동화책에 나오는 피리 부는 사나이도 아닐 진데. 무슨 일이든 여지를 남겨야 할 텐데 이렇게 관계를 완전히 깨 버리고 만다.
사람들은 더불어 살면서도 소음을 일으킨다. 이렇게 글을 적어 이 층남자 흉을 보지만 사실은 그날 이후 이층 남자와 마주칠까 가게 밖으로 나오지도 못했다. 이런 소음에 나는 자꾸 걱정 인형이 된다. 베란다의 풀꽃들은 묵묵히 제 자리를 지키는데. 나도 풀꽃처럼 흔들림 없이 유유자적 살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