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하다 잊고 산 풍경들

by 복덕


일 좀 그만하자고 노래를 부른 적도 있었다. 아마 남편하고 내가 돌아가면서 아팠을 때인 것 같다. 우리가 아픈 게 일 때문이라고 핑계 아닌 핑계를 댔다. 직업의 특성상 남들이 놀 때 일을 해야만 한다. 유흥업소에 과일이나 건어물을 납품하는 일이다. 유흥업소는 직장인들이 쉬는 날 장사가 더 잘 된다. 이런 유흥업소에 물건을 납품하는 우리는 토요일, 일요일이나 명절이나 달력에 빨간 날은 더 열심히 일을 하는 날이다. 이런 일을 30년도 넘게 하다 보니 휴일도 모르는 사람이 되었다. 즉, 휴일에 노는 방법을 모르는 사람이 된 것이다.


아이들 때문이라도 휴일을 보내는 방법을 달리 해야 했건만 휴일에 일하는 방식은 바뀔 줄을 몰랐다. 그렇다고 하루 종일 일을 하는 건 또 아니었다. 오후에 잠깐 하는 일이 일반적인 생활 방식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던 중에 딸이 결혼을 하면서 일 좀 쉬엄쉬엄하라는 바람에 조금 휴일을 찾게 된 적도 있었다.

몇 년 전 추석에는 우리더러 자기 집에서 추석을 쇠자고 했다. 아주 파격적인 제안이다. 딸 집에서 명절을 쇤다는 건 상상도 못 한 일이었다. 이건 좀 선을 넘는 제안이 아닌가. 읽은 책에서 선을 좀 넘어야 인생이 비로소 풍요로워진다고 하더니 예상치 못한 선 넘는 제안에 우리는 빠른 판단을 내려야 했다. 멀리 떨어져 살다 보니까 딸을 만나는 것도 일 년에 두세 번뿐이다. 마음으로 그리워하다가 우리 딸인지 사돈 딸인지 긴가민가할 때도 더러 있는 중이었다.


또 어느 해는 괌 여행을 제안했던 적이 있었다. 딸네는 수원에 살고 우리는 마산에 사니까 같이 움직이지는 못하는 실정이다. “엄마, 괌에서 만나요.” 했다. 우리더러 괌 무슨 공항 로비에서 만나자고 했다. 그날부터 우리는 걱정에 들어가고 괜히 간다고 했나 후회도 했었다. 입국 수속이니 출국 수속이니 인터뷰니 하면서 사람을 어리둥절하게 긴장을 시킨 때도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저희 집에서 추석을 쇠자고 한다. 일단 가겠다고 했다. 주위에서 들어 보면 가니 안 가니 하고 자꾸 뻗대면 다음부터는 가잔 소리도 안 한다고 무조건 오케이 하라고 한다. 우리는 2박 3일 일정으로 딸 집에 추석을 쇠러 가기로 했다. 그리고는 추석 전 날까지 일을 하였다. 단골집에는 이틀 물량을 넣어 주고 가야 한다. 단골로서의 의무이기도 하고 단골을 놓치지 않는 방법이기도 했다. 언제나 그랬다. 어디 가기 전 날은 몸이 녹초가 되도록 일을 했다. 두 배, 세 배의 일을 해야 했다. 그러니 웬만하면 이 삼 일씩 가게를 쉬지 않으려고 한다. 어디 나들이도 각자 다니곤 했었다. 그런데 이런 가족 모임은 같이 움직여야 하는 일이다.


딸 집에서 추석을 보내기로 한 결정이 급하게 이뤄지는 바람에, 느긋하게 KTX 표를 구할 수 없었다. 결국 추석 당일 첫차 고속버스를 끊어 수원으로 향했다. 이른바 ‘역귀성’을 직접 경험하게 된 것이다. 현대 사회를 살다 보니 이렇게 새로운 풍경을 몸소 겪게 된다. 약간 보수적인 남편도 이제는 완연한 현대인이 된 것일까. 딸의 다소 파격적인 제안에도 군소리 없이 동참해 딸 집에서 명절을 보내기로 했다. 시대가 변하면 사람도 자연스레 그 흐름을 따르는 모양이다. 다만, 사돈과 함께하는 추석이 어떻게 펼쳐질지 마음 한편이 복잡해졌다.

다행히 고속도로는 크게 막히지 않아 예정된 시간에 무리 없이 도착했다. 마중 나온 사위와 함께 쇼핑몰에서 점심을 먹게 되었는데, 마치 수원 인구가 죄다 이곳으로 몰려든 듯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북적이는 인파 속에서 우리도 함께 어울려 점심을 먹었다.

추석 당일에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밖에서 식사를 하는 걸까. 예전처럼 차례를 지내고, 친척을 찾아가 맛있는 음식을 나누며 오랜만에 얼굴을 보는 추석 풍경은 사라진 것일까. 손자 손녀의 손을 잡고, 부모님을 모시고, 가족이 함께 쇼핑몰로 몰려드는 이 낯선 장면을 보니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결국 우리 역시 그 진풍경 속 한몫을 차지하고 있었다.


남편과 나는 쇼핑몰에서도 잘 노는 사람들이다. 온갖 놀이시설과 아름다운 풍경들이 마치 유럽의 어느 도시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남편은 사위와 함께 다니며 쇼핑을 하고, 나는 딸과 손녀와 함께 서쪽으로 동쪽으로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구경을 했다. 딸은 나에게 온갖 브랜드의 옷을 입혀 보며 이것저것 권해 주었다. 종류가 너무 많으니 무엇을 사야 할지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해 마치 ‘결정 장애’라도 생긴 듯 망설여졌다. 혹시 남편도 같은 상황이 될까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남편의 유일한 사치는 같은 물건을 두세 개씩 사는 습관이기 때문이다. 오늘도 사위가 진땀을 빼게 되지 않을까 걱정스러웠다.


왁자지껄한 사람들 속에서 남편이 나타났다. 손에는 쇼핑백이 서너 개 들려 있었다. 구두, 운동화, 작업화까지 신발만 세 켤레를 챙겨 온 것이다. 나와 쇼핑할 때는 중저가 상품을 주로 사니 몇 켤레를 사도 부담이 없었는데, 사위한테 저렇게 과감히 지갑을 열게 하다니. 남편은 도대체 언제 철이 들려나 싶다.

이런 호사를 누리며 다닌 것이 참 오랜만이다. 예전 같으면 추석에도 일한다는 핑계로 가족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잊고 지냈을 것이다. 딸이 이번에 먼저 제안하지 않았다면 이런 풍경을 또 놓치고 지나갔으리라. 명절이라고 2박 3일을 온전히 쉰 것도 참 오랜만이다. 거래처에서도 전화 한 통 오지 않는다. 예전에는 하루만 쉬어도 주문 전화가 빗발쳤는데, 일요일에도 못 쉰다고 투정 부리던 그 시절이 떠오른다. 돌이켜보면 그때가 오히려 봄날이 아니었을까 싶다.


요즘 손님이 줄어드는 게 문화가 변해서인지, 아니면 경제가 나빠져서인지 알 수 없다. 혹은 우리 나이가 들어서 그런 건지도 모른다. 조금씩 일을 놓아야 할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번 추석처럼 여유롭게 쉰 것도 결국은 손님이 줄어든 덕분이라니, 참 아이러니하다. 일이 많을 때는 많아서 힘들고, 적을 때는 적어서 또 서운하니 말이다.

오랜만에 만난 사돈도 딸과 오붓하게 지내라며 저녁만 함께하고는 차도 마시지 않고 돌아갔다. 여러 가지 생각을 뒤섞이게 한, 딸 집에서의 추석 나들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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