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하디 귀한 시간

by 복덕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다. 사람과의 관계가 원만하면 행복지수도 함께 높아진다. 생일을 맞이한 날이면 카톡으로 “행복하라, 행복하자”는 메시지가 날아온다. 손으로 만질 수도, 눈으로 볼 수도 없는 행복을 서로 주고받으니, 분명 행복은 우리 곁에 가까이 있는 것이다. 각자의 방식대로 행복을 찾기 위해 애쓰며 삶을 헤쳐 나가는 모습은 참으로 다양하다. 그런데 누군가 행복을 말할 때, “나도 행복하다”며 자기 행복을 덧붙이는 것은 삼가야 한다고 한다. 행복을 말하는 사람은 사실 알아주기를 바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말을 떠올리니 문득 부끄러움이 스친다.


두 사람이 걷는다. 느릿느릿, 세상의 풍경을 천천히 눈에 담으며 바쁘지 않은 걸음을 옮긴다. 이 두 사람을 보기 시작한 지 벌써 3년이 넘었다. 저녁 무렵 가게로 향하는 길, 하천 변 산책로에서 늘 마주치는 이들이다.

남자는 풍채가 제법 있고, 배도 불룩 나왔다. 나이도 있어 보인다. 퇴직한 회사 임원이나 고위 공무원쯤 되었을까. 겉모습이 왠지 그런 자리에서 물러난 사람 같다. 눈빛에는 약간 끈적임이 있고, 괜히 두리번거리며 지나는 사람을 힐끗거리기도 한다. 나이가 들면 괜스레 호기심이 많아지는 걸까. 하지만 나는 이런 눈빛이 반갑지 않아 슬며시 몸을 비켜 지나간다.


여자는 남자와 나란히 걷지 않고, 한 발 뒤에서 조용히 따르듯 걷는다. 얼굴은 곱고 단정하다. 내가 본 미인형의 얼굴들이 대체로 그러했듯, 아무 생각 없는 듯한 담담한 인상이 있다. 그녀도 남자와 비슷한 또래로 보인다. 젊게 꾸며도 세월의 흔적은 가려지지 않는 법이다. 아마 부부일 것이다. 여자는 남자의 걸음에 발을 맞추며 소곤거린다. “바로 걸어요.”, “옆으로 치우치지 말고요.”, “그냥 똑바로 가요.” 비슷한 말을 반복하는 듯하다.

아마 남자는 어디가 불편한 모양이다. 불룩 나온 배와 창백한 얼굴빛이 심상치 않다. 여자는 지인을 만나면 “에구~” 하며 푸념 섞인 한숨을 내쉰다. ‘긴 병에 효자 없다’는 말처럼, 이런 푸념은 저절로 흘러나오는 것일 게다. 지인은 “고생이 많네”라며 위로를 건넨다. 그 ‘고생’이라는 말속에는 여러 겹의 뜻이 숨어 있으리라.


그렇게 두 사람을 3년이 넘게 보고 있는 중이다. 남자의 모습이 날마다, 달마다 변해 간다. 이제는 앙상한 몸으로 바뀌어 있다. 볼록한 똥배도 간 곳이 없다. 사물을 바로 보지도 못한다. 바로 걷지도 못한다. 가다 주춤 가다 주춤한다. 여자는 남자의 허리춤을 잡고 걸음을 시킨다. 여자도 같이 변해 간다. 미인형 얼굴에 수심이 가득하다. 벚꽃이 만발한 봉에도 웃음기 없는 표정이었다. 걸음걸이도 남자와 비슷해져 간다. 천천히 한 걸음 한 걸음, 사라져 가는 모습을 슬로비디오로 보는 것 같다.


나는 매일 그들을 보며 인생의 무상함을 실감한다. 길가에서 아는 사람에게 넌지시 물어본 적이 있다. “왜 요양원에 모시지 않고 집에서 간호하세요?” 그가 대답했다. “요양원에 보내면 금세 죽는다네. 저렇게라도 붙잡고 있어야 목숨이 이어지지.”

여자는 늘 그 자세로 남자의 허리춤을 꼭 잡고 있다. 고통을 고스란히 함께 짊어진 채로.

아는 사람이 알려 준다. 낮에는 요양 보호시설에 보내고 저녁나절에 집에 온다고 한다. 그러면 여자는 산책길에서 남자의 허리춤을 잡고 한 시간씩 걷기 연습을 시킨다고 한다. 그 말을 들으니까 조금은 안심이다. 여자도 조금은 숨 쉴 틈이 있구나. 그렇게 두 사람은 흐느적흐느적 가고 있다. 젊었을 때의 행복한 추억을 끄집어내어 쓰고 있는 모양이다. 남자는 추억을 묻은 채, 여자의 추억만으로 현재를 살고 있는 것 같다. 사람은 행복한 기억, 특별한 추억 하나로 살 수가 있다고 한다. 배우자의 부재가 제일 큰 스트레스라고 한다.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일일까. 지금 이 순간을 충실하게 사는 방법밖에는 대안이 없을 것 같다.


요즘은 어디 가서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남편이 생각난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뜻인가 싶다. 헬스장에서 만나는 회장님 내외와 점심을 먹으러 갔다. 이번에는 우리가 계산할 차례라서 고기를 먹으러 가자고 하였다. 얼마 전에 회장님 내외는 구워 주는 고깃집에 갔다고 자랑을 한 적이 있었다. 먹는 데 옆에서 구워 주면 조금 부담스러울 것 같은 데 맛있었다고 하니 나도 그런 맛을 느껴 보고 싶었다. 즐거움 중에 먹는 즐거움이 최고 아니겠는가. 회장님 네 차를 타고 구워 주는 고깃집으로 간다. 봉암 다리를 지나 귀산으로 향한다. 차를 타고 가는 길이 눈에 익었다. 귀산에 구워주는 고깃집이 있나 구워 나오는 고깃집은 있는데. 그 집에서 점심을 먹으면 고기와 냉면이 같이 나와서 더욱 포만감을 느낀다. 가격도 저렴하고 양도 푸짐해서 고기 맛이 한층 맛있는 집을 내가 알고 있다. 아니나 다를까 바로 내가 아는 집이다. 구워 주는 집이 아니라 구워 나오는 집이라고 해야 되지 않나. 한국말은 쉽고도 어렵다.


이 고깃집에 남편과 한번 오고 싶었다. 지난달에 친구들과 왔었는데 남편과 오려고 버스노선까지 알아두었다. 알아둔 버스노선은 다음에 남편과 오붓하게 한번 와야 되겠다. 오늘 드디어 맛있는 점심을 남편과 같이 먹게 되었다. 맛집으로 소문이 났는지 대기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렇게 줄 서서 기다리는 즐거움도 있다. 기다림 끝에 우리는 창가 시원한 자리로 안내받았다. 기본 반찬이 세팅되고 주문을 받으러 오지를 않는다. 그래도 우리는 내놓은 반찬을 먹으면서도 주문받으러 올 때를 기다린다. 이럴 리가 없을 텐데 하고 주위를 둘러보니 우리와 같이 자리 배정을 받은 다른 테이블에는 음식이 나올 준비를 한다. 그때서야 종업원을 부르니 테이블 옆에 있는 전자기기에서 직접 주문을 하라고 한다.


요즘은 이렇게 세상의 일에 시행착오를 경험하면서 산다. 줄을 서서 대기해도 행복하고 주문이 늦어도 하하 호호 행복하다. 고기와 같이 나오는 냉면을 먹고 느긋한 시간을 즐기는 것도 행복하다. 회장님과 회장님 부인 덕분에 이렇게 맛있는 점심을 먹게 돼서 고맙다고 치하를 하였더니 회장님 부인이 말한다. 이런 치하의 말을 들으니 자신들이 엄청 훌륭한 일을 한 양 으쓱해진다고 한다. 오고 가는 말에도 행복이 넘친다. 한 번뿐인 우리네 인생 이렇게 귀하게 살아야 하지 않을까. 작은 행복을 느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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