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더 폰 쇤부르크는 그의 책 ‘어른이라는 진지한 농담’에서 이렇게 말했다 “유머는 지성의 표현이다. 구석구석 꿰뚫고 있는 주제에 관해서만 우리는 진정 위트 있게 말할 수 있다. 우리가 웃는 99퍼센트의 상황은 기분을 맞춰주거나 당황한 경우다. 하지만 나머지 마법 같은 1퍼센트의 순간, 자기도 모르게 웃을 수밖에 없을 때가 있다. 바로 우리가 무언가를 깊게 이해한 순간이다. 유머는 높은 수준의 깨달음을 전제로 한다. 달리 말하면 똑똑한 사람이 유머러스하다.”
가끔씩 이 높은 수준의 깨달음이 암묵적으로 우리에게 왔을 때 박장대소를 하며 웃을 때가 있다. 사람을 깊이 사귀게 되면 그 사람의 면면을 알기 때문에 생각지도 않은 유머들이 나온다. 아침 헬스장에서의 유머도 그랬다. 늘 아침 일찍 운동하러 온 남편들이 늦게 도착한 부인들을 향해 던진 말.
“공주님들 행차하셨네요.”
그 한마디에 모두들 한바탕 웃는다. 작은 유머가 사람들의 하루를 기분 좋게 한다는 사실은 언제나 놀랍다.
아파트로 이사 온 지도 3년이 지났지만 전입 신고를 하지 않고 있었다. 2024년 9월쯤에 두고 온 집이 해결이 되어서 이제는 슬슬 전입 신고를 해야만 했었다. 새로운 동네에 적응을 하고 난 후인 12월 중순쯤에 전입 신고를 했다. 진정한 아파트 주민이 된 것이다. 지금은 동사무소를 행복센터라고 부르지만 그냥 동사무소라고 칭해 본다. 동사무소에 문화 교실이 있어서 접수해 보려고 했더니 인원이 다 찼다고 새해 1월에 신청을 하라고 했다. 처음에는 남편과 탁구교실에 가려고 마음먹고 있었는데 막상 새해가 되니까 마음이 바뀌었다. 평생 해보지도 않은 탁구는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남편은 탁구 교실, 나는 노래 교실에 접수를 했다.
노래 교실에 가려고 마음먹고는 같이 갈 친구를 찾아보았다. 매일 아침 운동을 같이 하는 이에게 노래 교실에 같이 가자고 하였다. 내 생각에는 같이 갈 것 같았는데 의외로 안 가겠다고 하였다. 자기는 예전에 한번 다녀 봤다고 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우스웠다. 대부분의 회원이 나이 많은 어르신들이 온다고 했다. 몇 살 정도냐고 물었더니 60살, 70살이 넘은 사람들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웃고만 있었다. 그 웃음의 의미는 무엇인지 모르겠다. 어차피 우리는 나이가 많게 되어 있는데 나이 많은 사람 타령을 한다.
드디어 노래 교실에 갔다. 친구 없이도 적응 잘하는 스타일이다. 사실 친구와 같이 가면 신경 쓰이는 부분이 있기도 하다. 기대 반 설렘 반으로 노래 교실 문을 열었다. 온통 할머니들 모임이듯, 어르신들께서 서로 안부를 묻고 계셨다. 물론 나도 할머니다. 보니까 멋진 선생님도 젊은 할머니다. 할머니들 세상에 빠졌다. 동네 노래 교실이다 보니까 당연히 할머니 회원이 많을 수밖에 없는 일이다. 나의 하루일과가 책 읽고, 글 쓰고, 그림 그리는 일이다. 너무 정적인 생활이라서 뭔가 활기를 찾아야 되겠다 싶어 노래 교실을 찾게 되었다. 목청도 너무 안 쓰면 목소리도 녹 쓴다고 하지 않던가. 과연 여기서 목청을 튀우면서 노래를 할 것인가 말 것인가 아리송한 순간이었다.
옛날에도 노래 교실을 다닌 적이 있었다. 백화점 노래 교실이었다. 머리에 젤을 발라 반들반들 한껏 꾸미고 노래 가르치러 오신 선생님. 노래 교실이 끝날 때는 회원들과 일일이 악수를 하셨다, 밴드 선생님까지 대동하고 근사하게 유머러스하셨던 선생님이었다. 회원들도 멋지게 차려입고 한껏 폰을 내고는 신나게 웃고 떠들고 노래하고. 선생님의 질펀한 농담 한마디에 그날의 시름을 다 날렸던 날도 있었다. 너무 높은 구두를 신고 화려한 원피스를 입고 온 회원 한 사람. 에스컬레이트에 구두 뒷굽이 끼여 백화점을 들썩거리게 만들었고 병원에 실려 간 사건도 잊히지 않는다. 그때 깨달은 사실도 있었다. 밖에 나갈 때는 단출하게 안전하게 입어야 한다는 것을. 그때의 노래 교실과 지금의 노래 교실을 대조하면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때는 그때고 다시 돌아오지 않을 그때를 생각하면 뭐 하나. 지금 최선을 다해야 한다. 멋지게 반짝이 옷을 차려입은 선생님, 마이크를 잡고 반갑다고 하였다. 노래교실 신청해 주어서 고맙다고 하였다. 멘트가 현실적이다. 하이톤의 목소리 쩌렁쩌렁 울린다. 아파서 1년을 쉬다 온 첫 번째 수업이라고 했다. 아팠던 사람 같지 않게 한시도 가만히 있지를 않고 리듬을 타면서 율동을 한다. 노래하는 어르신들, 음이 맞지 않아도 잘한다고 기를 살려 준다. 노래는 잘 못해도 된다고 한다. 지금 노래 잘해서 대회 나갈 거냐고도 했다. 재미있게 맞장구치면서 으쌰으쌰 하자고 했다.
오늘도 노래교실에서는 선생님의 목청 높은 소리가 울려 퍼졌다.
“오늘은 신곡 배우는 시간입니다.” A팀은 ‘아싸’라고 함성을 지르시고 B팀은 ‘노래 제목’ 크게 소리치세요. 짜라짜라 짠짠짠~
노래가 끝날 때마다 모두가 손뼉을 치며 환호했다. 나 역시 목청껏 노래를 부르며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 본다. 지금까지 사회생활에서 배운 센스로 율무차도 타서 어르신들 앞앞이 건네기도 하고 앉고 난 의자 정리도 하였다. 유머와 웃음으로 가득 찬 이 작은 공간이 더없이 소중하게 느껴졌다.
유머는 지성의 표현이고, 웃음은 삶의 에너지원이다. 오늘도 나는 웃는다. 조금씩 더 유머러스해지고, 조금씩 더 삶에 활기를 불어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