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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 찾기

by 복덕


누군가를 오래 알고 지냈다는 것만으로는 '인연'이라 부르기 어렵다. 수많은 사람들과 스치며 살지만, 그중에 몇몇은 오랜 시간이 흘러도 마음에 남고, 문득 생각나며, 어떤 계기로든 다시 이어진다. 그런 인연은 마치 오래된 물건처럼 손때가 묻고 정이 들어 버리기 마련이다.

어쩌면 인연이란 특별한 순간보다도, 아무렇지 않은 일상을 조용히 함께 걸어준 사람과 맺어지는 게 아닐까.


인생 후반기에 남편의 치료차 이사를 하게 되었다. 낯선 동네에 터를 잡고 나니, 문득 시간이 멈춘 듯 고요한 일상이 주어졌다. 할 일이 없어진 날을 온전히 겪고 나서야, 세상에서 혼자 덩그러니 떨어져 나온 듯한 허허벌판의 기분이 밀려왔다.

마산에서 살던 때가 그리웠다. 모두들 조금만 살다가 다시 오라고 하던 말들이 생각났다. 그때는 그런 말들이 다 쓸데없이 느껴졌다. 다시 올 걸 짐은 왜 싸 들고 갈까. 생각했는데 오자마자 살던 곳이 그리우면 어떡하란 말인가.


창문을 열면 눈부시게 반짝이는 윤슬이 창 너머로 다가왔고, 그 반짝이는 물결을 따라 끝없는 곳에 시선이 머물기도 하였지. 길을 나서면 누구든 아는 얼굴을 만나 안부를 건넸다. 삶이 곧 인연이 되고, 인연이 다시 삶을 지탱해 주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이곳의 풍경은 전혀 다르다. 숲처럼 울창한 나무들이 집을 감싸고 있어 마음이 한결 편안해지지만, 정작 눈길을 나눌 사람이 없다. 길 위에서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조차 모두 낯선 얼굴일 뿐이다. 이런 고요 속에 앉아 있노라면, 사람 사이의 관계가 얼마나 큰 위로였는지 새삼 깨닫게 된다. 마산에서는 누구나 알던 얼굴이 있어 그저 눈인사만으로도 하루가 덜 외롭고 덜 허전했는데, 이제는 그 소소한 교감조차 사라져 버린 셈이다.


그렇다고 해서 단절된 삶을 살 수는 없지 않은가. 아들이 권해서 MBTI 검사를 해보아도 정확한 나를 찾지 못했다. 어떤 면으로는 계획적인 성격도 있다 하고 또 한편으로는 스스럼없는 활달함이 있다고도 한다. 그러나 그런 설명들을 곱씹어 보아도, 나는 본래부터 내향적인 성격이 분명한 듯하다. 전화를 걸어 수다를 떨고 싶은 사람이 있어도 끝내 전화를 걸지 못한다. 혼자서만 궁금증을 키우고, 그마저도 마음속에서 맴돌다 사라진다. 인터넷 글에 댓글 하나 남기는 일조차 쉽지 않다. 그 작은 행동을 앞두고도 수십 번 망설이다가 겨우 한 줄 남기고는, 잘했는지 못했는지 괜스레 마음을 쓰며 돌아보곤 한다.


돌아보면, 지금까지는 ‘엄마’라는 이름, ‘아줌마’라는 이름으로 살아오면서 뭐든지 해내야 하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내 성격의 결을 똑바로 들여다볼 틈이 없었다. 늘 분주하게, 늘 남을 챙기느라 나 자신을 잘 모르고 지나쳤던 것이다. 이제 조용한 틈이 생기니 비로소 드러나는 내 본모습이 있다. 고요 속에서 드러난 이 내향적인 성향은 어쩌면 늦게 찾아온 또 다른 나의 얼굴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용기를 내어 문화센터 글쓰기 모임에 나갔다. 글을 배우는 일보다도 먼저, 친구를 사귀어야겠다는 마음이 앞섰다. 아직 서툴고 어색하지만, 글을 통해 조금씩 마음을 열어가는 과정 자체가 소중하다. 또 황톳길 맨발 걷기를 하면서 마주치는 이들과 눈인사를 나누는 일이 요즘의 작은 즐거움이다. 짧은 눈빛이 오가는 순간, 허전했던 마음에 온기가 스민다.


김달님 작가의 신작 “뜻밖의 우정”이 택배로 왔다. 마산에서 글쓰기를 배우던 시절, 그 강좌는 평균나이 50, 60대들의 학생, 30대의 선생님, 세대를 초월한 인연들이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스승과 제자의 경계를 넘어, 삶을 풍요롭게 채워 주는 귀한 인연으로 다가왔다. 그 인연으로 나는 작가라는 호칭을 사용할 수 있는 합격을 받았다. 뜻밖이었지만, 결코 우연이라 할 수 없는, 내 삶의 큰 선물 같은 인연이 되었다.


마산의 윤슬은 나에게 시적 감상을 주었지만, 이곳의 숲은 인연의 씨앗을 기다리게 한다. 눈인사 하나가 언젠가는 대화가 되고, 대화가 인연으로 자라날지도 모른다. 인생 후반기에 맺는 관계는 천천히 다가오지만, 그렇기에 더 깊고 단단해질 것이다.

허허벌판 같은 고요 속에서도, 분명 꽃은 피어난다. 오늘의 작은 눈인사가 내일의 인연이 될 것을 믿으며, 나는 다시 하루를 걸어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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