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툰 고백
일어나자마자 황톳길을 내려다본다.
해도 뜨기 전, 누군가는 벌써 맨발 걷기를 하고
내 기척을 들은 사랑이가 낑낑댄다.
그러나 오늘은 함께 나설 수 없다.
출장 떠나는 딸을 대신해
손녀의 등굣길을 챙겨야 하니.
세상은 달라졌다,
과보호 아닌 과보호가
아이의 일상이 되었다.
부엌 한쪽, 싱크대 앞에
꽁지를 감추고 웅크린 사랑이.
며칠 전 사위에게 혼난 탓일까,
천방지축일 때보다
기죽은 모습이 더 짠하다.
사위도 출근을 나서고
남은 건 나와 손녀뿐.
“세수하고, 화장실 갔다 와야지.”
“지금이요?”
“응, 지금.”
“지금 가면 나중에 또 가야 하는데요.”
“아, 할머니가 순서를 바꿨구나.
원래 하던 대로 하자꾸나.”
요즘 아이들은
이해되지 않는 건 곧장 반기를 든다.
나는 자꾸 “빨리, 빨리”를 외치고
손녀는 느릿느릿,
시간은 자꾸 나를 다그친다.
겨우 준비를 마치고
가방 메고 현관에 선 순간,
손녀가 말한다.
“할머니, 화장실 갔다 오면 안 돼요?”
“가야지. 그래야 속이 편하지.”
매일 가는 시간보다 늦었다.
정 시간에 등교시키라 하였는데
손녀를 재촉해 학교 앞까지 왔는데
친구를 만났네.
둘이서 느릿느릿.
나는 또 재촉을 하지.
손녀가 나더러
“시간에 민감한 할머니”라고 친구에게 소개한다.
손녀 친구가 하는 말
“나는 느긋하게 살아.”라고 한다.
손녀 친구 말대로 느긋하게 살 수 있을까?
이 아침,
나는 손녀와 작은 전쟁을 치르며
세상에서 가장 평범하고
가장 분주한 행복으로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