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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야기

암 환자 아내의 시점

by 복덕


날씨가 생각보다 춥지 않았다. 아파트를 둘러싼 공원들이 온통 단풍빛으로 물들어 있다. 나는 마치 가을 한가운데에 갇힌 채 그 풍경 속 일부가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봄의 화려함은 가슴을 벅차오르게 하지만, 가을의 화려함은 마음을 고요하게 가라앉힌다. 요즘 나는 조금 들떠서 살아보고 싶은데, 정작 그런 마음이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 계절이 주는 무게가 사람의 마음에도 은근히 내려앉는 모양이다.


오늘은 글쓰기 수업에 가야 하는데, 남편은 차에 올랐는지 어쨌는지 소식이 없다. 어제 전화가 왔을 때도 마음이 불편해 통화를 길게 있어가지 못했다. 수술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이 계속 먹을 것만 밝힌다. 괜히 걱정이 앞서서 몇 마디 충고를 건넸다. 소고기만 찾는 건 좋지 않을 것 같아 가려 먹으라고 했다. 남편은 모두들 “이제는 뭐든 잘 먹는 게 좋다”라고 말한다며 되레 따지듯 말했다. 내 말이 듣기 싫었던 것인지, 나는 괜히 욱해 전화를 서둘러 끊어버렸다.


이렇게 생각해 보니, 내가 환자에게 너무 단호하게 말한 건 아닐까 싶기도 했다. 사골 곰국을 먹은 지 얼마나 되었다고 또 소고기 타령인지 모르겠다며 속상해했지만, 사실은 남편의 허기짐과 그 허기 뒤에 숨어 있을 불안한 마음이 고기 타령으로 나왔을 것이다. 건강을 되찾아 무엇이든 마음껏 먹을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 그 마음이 걱정과 잔소리라는 모습으로 튀어나온 것 같다.


가을빛 공원길을 지나며 문득 생각한다. 환자와 보호자는 서로의 마음을 온전히 다 이해할 수 없어서 자주 엇갈리곤 한다. 그래도 결국은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다는 걸, 오늘은 조금 더 따뜻하게 말해야겠다.

기다리다 사랑이를 데리고 마중을 나갔다. 도착할 시간이 되었는데도 전화를 안 하는 걸 보니 꽁해 있는지도 모르겠다. 젊었을 때의 남자다움은 어디로 갔는지 사소한 말에 삐치기나 하고. 버스 정류장으로 걸어가는데 남편이 오고 있었다. 뭘 사 오는지 조그만 쇼핑백도 하나 들고 있었다. 고기 타령을 하더니 고기를 사 오나 보다. 내가 어련히 알아서 할 텐데 끝내 나를 못 믿었단 말인가.


고기를 받아 냉장고에 넣고는 나는 글쓰기 수업에 갔다. 여성시대에 글 쓴 선생님들의 흥분이 조금은 가라앉아 있었다. 일주일 내내 축하 인사를 받고 이삼일 동안 눈물이 났다는 남자 선생님의 심정을 이해하기는 어려웠다. 무슨 마음의 응어리가 있어서일까. 가을은 눈물이 나는 계절인 것은 확실한 것 같다. 나도 어쩔 때 글을 쓰면 눈물이 핑 돌 때가 있으니까. 하지만 이박 삼일로 울 일은 아니지 않은가. 글을 쓴 선생님의 감성이 남다른가 보다.


오 분 글쓰기를 해 보면, 결국 마지막엔 또 남편 이야기를 쓰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이 세상에 소재가 얼마나 많은데, 어쩌다 나는 이렇게까지 남편에게만 매달리게 되었을까. 남편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글 줄기가 끊겨 버리고, 내가 쓴 글 같지 않았다.

이 고민을 알고 있는 작가님께도 조심스레 털어놓아 보았다. 혹시 내게만 없는 특별한 비결이 있을까 기대했지만, 돌아온 답은 담담했다. 그런 건 원래 없다고, 그냥 써보라고. 그 말을 듣고 나니 이상하게 마음이 편해졌다. 억지로 다른 이야기를 찾지 않아도 된다는 허락을 받은 듯해서였다.


그래서 나는 결심했다. 어차피 남편 이야기가 이렇게 쏟아진다면, 오히려 그 길로 깊숙이 들어가 보기로. 브런치에 남편에 관한 글을 서른 편, 아니, 마흔~쉰 편쯤 연재해 보자고 마음을 다졌다. 실컷 쓰고 나면, 마음속에 갇혀 있던 다른 이야기들도 슬며시 얼굴을 내밀 것 같다.

지금은 다소 편중되어 보일지 몰라도, 어쩌면 이게 내 삶의 진짜 중심이자 기록해야 할 첫 번째 층일지도 모른다. 그 층을 충분히 파 보고 나면, 비로소 그 아래에 쌓여 있는 또 다른 나의 이야기들이 자연스레 흘러나오지 않을까. 나는 이제 그걸 믿어 보기로 했다.


오늘도 오 분 글쓰기에 남편의 고기 타령에 관해서 썼다. 오늘은 집에 갈 때 마트에 들렀다. 고기가 보양이 된다고 믿는 사람인데 소원대로 해 주리라 마음먹었다. 직접 고기까지 사 왔는데. 요리 방법을 바꾸기로 하였다. 구워서 먹으면 맛있다는 걸 누가 모르겠는가.

이제부터는 야채와 같이 쪄서 먹게 해야겠다. 새로운 맛에 적응을 시켜야 한다. 그러니 첫맛이 중요하다. 제발 맛있어하면 좋겠다.


다행히도 한입 먹은 남편의 표정이 금세 부드러워졌다. “어, 이거 생각보다 괜찮네?” 하는 말이 나오자 나도 모르게 숨을 고르게 되었다. 고기가 부드럽게 익고 야채의 단맛이 배어 한데 어우러지니, 남편도 새로운 맛을 금세 받아들이는 듯했다.

“이렇게 많이 먹어요.”

그렇게 오늘의 첫맛은 성공이었다. 고기 타령이 이어지는 날들 속에서, 이렇게라도 남편의 입맛을 조금씩 바꿔 갈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뿌듯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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