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냄새 하나가 나를 20년 전으로 데려갔다. 어디서 날아온 냄샌가 했더니 딸이 된장찌개를 끓이고 있었다. 제법 된장국
냄새가
솔솔 난다
.
그 순간
,
오래전 내가 끓이던 된장찌개의 냄새가 떠올랐다
.
아이들 학교에서 돌아오는 시간에 맞춰 부지런히 장을 보고
,
냉장고에 있는 두부 한 모
,
호박과 감자를 썰어 넣고
,
푹푹 끓이던 그 냄새
.
언제부턴가 내 손에서 멀어진 그 냄새를 이제는 딸이 끓이고 있다니
,
조금은 낯설고 조금은 뿌듯했다
.
갑자기 딸 집 가까이로 이사를 오게 되었다. 마산집은 전세를 놓고, 남편과 나는 이곳 수원에서 전셋집을 구하게 되었다. 남편이 치료를 받는 동안 병원 가까이 있으려면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이사하기 전 두세 달은 딸 집에서 살게 되었다. 아침잠이 없는 나는 새벽에 일어나서 거실에 나가지 않는다. 출근할 아이들 선잠 깰까 싶어 내가 머무는 방에서 창문을 열어 새벽공기를 마신다.
창문을 열면 아직 어둠이 남아 있는 하늘 아래로 아파트 단지의 가로등 불빛이 희미하게 깜빡인다. 먼동이 트기 전의 그 고요한 시간, 나는 찬 기운을 마시며 하루를 시작한다. 낯선 집이지만, 이 고요함은 내 마음을 다독인다. 그렇게 창가에 앉아 있노라면, 문득 오래전 마산집의 새벽이 떠오른다. 그 집에서도 나는 늘 새벽에 일어났다. 아이들 도시락을 싸고, 남편의 아침을 준비하던 시간. 된장국을 끓일 때면, 조용히 피어오르던 된장 냄새에 마음이 포근해지곤 했다. 한 숟가락 맛을 보며, 간이 맞는지 확인하고, 아이들이 좋아하던 감자를 더 넣기도 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냄새는 단순한 국물의 향이 아니라 내 하루를 여는 알람 같았다. 그리고 이제 그 알람을 딸이 울리고 있다.
딸의 부엌에서 풍겨오는 냄새는 제법 그 시절의 내 냄새와 닮아있다. 그것만으로도 이상하게 든든하다. 요즘 딸은 된장국을 끓일 때마다 나를 부른다. “엄마, 간 좀 봐줘요.” 그 말 한마디에 나는 방에서 나와 부엌으로 간다. 조심스레 국을 한 숟가락 떠서 입에 머금는다. 그리고는 “응, 괜찮네. 어쩜 맛을 잘 내네.” 하고 말하면, 딸은 어린아이처럼 웃는다.
이렇게 다시 시작된 부엌의 일상이, 낯설지만 참 따뜻하다. 병원과 치료, 이사와 적응이라는 어쩔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얻은 뜻밖의 선물이다. 나의 시간이 딸에게 이어졌고, 그 냄새와 정성이 이제 딸의 집 안에 퍼지고 있다. 언젠가 그 아이도 이 냄새를 기억하게 되겠지. 엄마와 함께 살던 어느 시절의 새벽 공기와 된장국 냄새를.
시간은 참 묘하다. 모든 걸 바꾸는 듯하지만, 이렇게 다시 이어주는 순간도 있다. 이 아침의 냄새처럼 말이다.
된장 냄새가 나를 끌어안듯 감싸고, 어느새 마음 한편이 말랑해진다. 남편의 치료가 힘들고 길게 이어질 수도 있지만, 이 냄새가 우리 곁에 있다면, 이 또한 견딜 만한 시간이 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