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담을 드립니다.

by 복덕


제야의 종소리를 카운트다운 하기 전 침대에 들었다. 내일 아침, 온전히 새해를 맞이하고 싶어서였다. 새해에는 알 수 없는 희망이 펼쳐졌으면 한다. 계획하지 않아도 저절로 다가오는, 그런 희망 말이다.

평소처럼 오전 7시가 되기 전에 일어났다. 창밖은 아직 어둑어둑했고, 새해 아침이라고 해서 특별할 것도 없었다. 언제나처럼 헬스장에 갈 준비를 했다. 그러다 가끔 창문 너머 산봉우리를 힐끗 보며 해가 뜨기를 기다렸다. 단백질을 타서 마시고, 과일 한 조각을 깎아 먹었지만 여전히 해는 뜰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오늘만은 꼭 해돋이를 보고 싶은데, 해는 왜 이리 더딘 걸까 조바심이 났다. 물병에 물을 채우고 있을 때, 남편이 먼저 운동하러 간다며 “한 사람이라도 해맞이를 하고 와야지 않겠냐” 한다.

오전 7시 51분, 마침내 올해의 첫해가 산봉우리 위로 얼굴을 내밀었다. 멀리서도 전해지는 그 찬란함에 가슴이 뭉클해졌다. 두 손을 모아 우리 가족의 평화와 행복을 빌었다. 바닷가 수변공원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해맞이를 하고 있었다.

아파트 헬스장에 가서 이웃들과 운동을 하고 덕담을 나눈 뒤 집으로 돌아왔다. TV에서는 12 간지 동물 가운데 용만이 상상의 존재라며, 그만큼 꿈과 행운을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다고 알려준다. 갑진년, 푸른 용의 해. 청룡의 해라 불리는 올해는 모두에게 강한 에너지와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는 시기라고 한다. 나도 덩달아 희망을 꿈꾸게 된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건강하고 행복한 한 해 보내세요.”

“복된 한 해 보내세요.”

비슷한 덕담들이 카톡방에 쉴 새 없이 올라온다. 나도 아침에 찍은 해님 사진과 함께 덕담을 전했다. 연락이 뜸한 친구에게도 오랜만에 덕담을 보내 보았다. 남편에게도 “나한테도 덕담 좀 해 달라”라고 했더니, “싸우지 말고 화목하게 살자”라는 엉뚱한 말을 한다. 누가 들으면 우리 부부가 매일 싸우는 줄 알겠다. 남들에게는 풍성하고 후한 덕담을 건네면서, 정작 내게는 이런 덕담이라니… 듣고도 괜히 심통이 올라왔다.


올해는 특히 덕담을 꼭 드리고 싶은 귀인이 있다. 얼굴도, 이름도 모르지만 서울역 근방에 살고, 젊은 여성이라는 것만 알고 있다. 선한 영향력을 베풀어 주신 그분께 감사 인사와 함께 복된 덕담을 전하고 싶다.

2020년 2월 말경에 퇴원한 지 3일 만에 남편이 베에 염증이 터져 서울대학교 병원으로 구급차에 실려 가게 되었다. 창원 삼성병원 응급실에서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하는 나는 기침한다고 코로나로 의심받아 검사소에 격리되어야 했었다. 마침 아들이 구급차에 같이 타고 가게 되었다. 긴박한 순간을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한 덕분인지, 처음으로 아버지의 보호자 노릇을 해서인지, 아들의 행동에 변화가 일어났다. 뜬구름 잡는 공부를 접고 이제는 필요한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학점을 체크하고 모자란 점수를 보완하면서 이곳저곳 시험을 치러 다니고 계획이란 것을 세우기 시작했다. 평생을 공부하며 살아야 한다지만 공부도 나이에 맞는 시기가 있지 않은가. 느긋하게 공부만 하기에는 부모가 자꾸 나이를 먹어 간다는 것이다. 남의 집 아들들은 석사 되고 박사 되고 직장에 들어가 고액 연봉받고 자기 몫을 다하고들 있다. 우리 아들은 서른 살이 되도록 직업은 고사하고 이름 지어지는 학위 한 장이 없다. 말은 안 해도 우리 부부의 속 타는 심정은 이루 말로 다 표현이 안 되었다. 양보를 가르치고 배려를 가르쳐서일까. 자식은 부모가 포기하지 않으면 끝내는 자기 몫을 해낸다더니 그 말이 맞는지 어쩐지 부산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해 12월 초. 서울 무슨 대학교에 시험을 치러 간단다. 급하게 가지 말고 하루 전에 가라고 했다. 그날 시험을 못 치면 또 일 년을 기다려야 하니. 여유를 가지고 시험장 부근에서 하룻밤 묵으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부득불 당일 첫 차 새벽 5시 05분 발 KTX를 타고 서울로 갔다. 서울역에 내려서는 택시를 타지 않고 걸어서 길을 찾아간단다. 그런 말을 들을 때부터 불안이 엄습해 왔다. 책에서 읽은 글귀가 있었는데. “길이라는 게 시간 정확하게 들어오는 전철통로일 수도 없는 일이니 그 굴곡의 계산을 무슨 수로 정확하게 알까.” 서울역에 나와서 보니까 시험 칠 학교가 저 멀리 보이고 폰에 거리 측정을 해 보니 거리도 얼마 안 걸리더란다. 시험 시작 전에는 충분히 갈 수 있는 거리라서 폰에 길 찾기 앱을 켜고 걸어서 갔단다. 가도 가도 목적지가 안 나오고 앞이 가로막힌 절벽이 나타났고, 택시를 불러도 오지 않고, 시험시간은 임박하고 후회는 항상 일이 끝난 뒤 오는 게 문제였다.

아, 이번 시험은 못 치겠구나. 큰일 났다 싶을 때 저만치 아파트 출입구에서 나오는 젊은 귀인을 만난 것이다. 뛰어가서 인사를 꾸벅하고 자초지종을 얘기하면서 길을 물었다고 한다. 고마운 귀인은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지금 가면 시험에 늦겠는데 하더란다. 그러면서 “오늘 어쩐지 빨리 나오고 싶더라니” 하면서 학교까지 태워 주고 시험 잘 치라고 손을 흔들어 주고는 부웅 떠나갔단다. 젊은 귀인의 용기에 감사를 표한다. 코로나가 전국을 아니 세계를 공포에 떨게 한 그때에 생면부지의 건장한 남자가 도움을 청한다. 그것도 꽁지머리를 하고 마스크를 해서 얼굴도 확인 안 되는, 선입견에 굴하지 않고 도움의 손길을 잡아 준, 아무나 하기 쉽지 않은 선한 영향력을 베풀어 준 귀인께 덕담을 드리고 싶다.

“귀인이여. 항상 건강하고 행복하십시오.”

세상은 이런 것이구나. 살맛 나는 세상이구나. 젊은 귀인에게서 선한 영향력을 받은 아들은 집에 돌아오자마자 내 눈엣가시 같던 꽁지머리부터 잘라냈다. 아무리 인터넷으로 공부하고, 손가락만 까딱해 음식을 시켜 먹고, 앱으로 길을 찾아도 직접 몸으로 부딪혀 얻은 경험 앞에서는 힘을 쓰지 못한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갑진년 청룡의 해. 이제 아들은 꿈을 향해 한 걸음씩 실천해 나가고 있다. 문득 생각한다. 나 또한 누군가에게 귀인이었던 적이 있었을까. 계획하지 않은 희망을 꿈꾸듯, 언젠가 누군가의 귀인이 되어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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