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환자 아내의 시점
남편의 수술 날짜가 드디어 잡혔다. 처음 병원에 왔을 때, 의사 선생님께서는 일 년 안에 수술이 결정되지 않으면 치료가 길어질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나는 수술이 가능하다는 말을 들었을 때, 당연히 안도할 줄 알았다. 그런데 남편의 반응은 의외였다.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순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수술 말고는 다른 길이 없다는데, 무슨 시간을 더 필요로 한다는 건가. 하지만 곧 마음을 고쳐먹었다. 남편의 마음을 어찌 내가 다 헤아리랴만. 큰 수술을 한 번 겪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두려움, 그 밀려오는 공포가 어찌 없겠는가. 수술의 후유증, 그 뒤에 펼쳐질 긴 회복 과정이 머릿속을 스쳐 갔을 것이다.
그래도 안타까움은 남았다. 남편이 “생각할 시간”을 달라는 그 말로 인해, 정작 수술 날짜조차 잡지 못한 채 병원을 나와야 했기 때문이다. 아이들과 의논해 보겠다는 그의 말은 곧, 나 혼자 감당할 수 없는 복잡한 심경의 표현이었으리라. 하지만 수술 날짜도 못 받고 오는 보호자의 마음은 어떻겠는가.
아내인 나의 조언은 듣지 않았다. 아이들의 말에도 귀 기울이지 않았다. 그런데 요양병원에 들어서자마자 남편은 나를 제쳐두고 환우들에게 수술 이야기를 꺼냈다. “수술하래.” 하며 떠벌리고 다녔다, 환우들은 한 목소리로 “잘 됐다”, “수술이 최선이다”, “용기를 내라” 하며 격려를 건넸다. 남편은 그 말들을 귀하게 받아들였다. 같은 환우들이니까 그들의 격려에 조금은 귀를 기울여 들었다. 심지어 친구들에게도 전화를 걸어 “수술하라더라” 하며 자신을 안심시키려는 듯했다.
모두가 입을 모아 ‘수술이 최적의 치료’라고 알려주자, 그제야 남편은 조금 마음의 안정을 찾는 듯했다. 그리고 마침내 2주 후 담당 교수님을 만난 자리에서, 스스로 “수술 날짜를 잡아달라”는 말을 꺼냈다. 그 순간, 나는 비로소 남편의 마음이 수술을 향해 닿았음을 느꼈다. 물론, 지금부터의 여러 검사들로 인하여 몸은 녹초가 될 것이다. 남편은 겉으로는 사나이의 담담함이 있는 것 같아도 마음은 분명 불안, 초조가 자리 잡고 있을 것이다.
몇 년 전에도 큰 수술이 있었다. 새벽녘, 수술 부위에 갑작스러운 염증이 터져 그 길로 구급차에 실려 서울병원으로 왔다. 응급실에서 통증을 참아내며 얼마나 두려웠을까. 그때에, 나는 코로나 의심 증상으로 집에서 격리 중이었다. 남편 곁에 단 한 발짝도 다가갈 수 없었다. 상황을 직접 확인할 수조차 없어, 딸에게서 전해 듣는 소식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상상만으로도 아연실색할 만큼 긴박한 상황이었다.
그 와중에도 남편은 특유의 세대적 습관을 드러냈다. 남편 세대 특히 ‘나는 사나이 입네’ 하면서 젊은 여성을 부르는 호칭은 으레 ‘아가씨’였다. 특히 남편은 더 그랬다. 아파서 고통받으면서도 간호사님에게도 어김없이 “아가씨”라는 말을 붙여 불렀다고 했다.
“아가씨”
“아가씨”
그 응급실에 있던 모든 의료진들은 남편의 말을 아무도 듣지 않았다고 했다.
놀란 딸이
“아빠! 선생님이라고 하세요.”
하고 가르쳐 주어도 계속 아가씨를 남발하다가 통증만 심해졌다고 했다.
그리고는
“간호사 선생님요.”
불렀다고 했다. 다행히 간호사 선생님들의 관심으로 무사히 응급실을 나올 수 있었다. 그 장면을 전하며 웃음 섞인 목소리로 이야기했지만, 나는 그 웃음 뒤에 가려진 남편의 불안과 두려움을 읽을 수 있었다. 낯선 병원,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 남편은 그 호칭 하나로 간신히 긴장을 풀고, 의지처를 찾으려 했던 게 아닐까 싶다. 같은 세대를 살아오면서 사회의 변화에 빨리 적응 못하는 세대의 비애가 아니겠는가.
오늘도 남편은 검사실에서 남들보다 늦게 나와서 나를 조바심 나게 하였다. 남편보다 뒤에 들어간 사람도 나왔는데 왜 못 나오는지 발만 동동 굴리고 있었다. 이런 사소한 검사도 나를 조바심 나게 만드는 사람이다. 또 겁먹고 있나. 아니면 호칭을 잘못 썼나. 나는 검사실 문이 열리면 재빠르게 얼굴을 들이밀고 “혹시 저혈당 왔는지 좀 봐주세요.” 하면서 남이 보면 별난 보호자라 할 정도로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드디어 검사실 문이 열리고 간호사 선생님이 남편의 팔을 잡고 나왔다. 아직 어지러울 수 있으니 좀 앉았다 가라고 한다. 삼시 세 끼를 꼭꼭 챙겨도 몸무게가 늘지 않는데, 도대체 오늘은 금식을 몇 시간이나 시킨단 말인가. 끝나고도 3시간 후 식사를 하라고 한다. 남편을 보자 짠한 마음과 동시에 안쓰러움이 몰려왔다. 얇아진 어깨와 창백한 얼굴이 그간의 고단함을 고스란히 말해 주는 듯했다. 괜찮다고 웃어 보이지만, 그 웃음마저 힘이 빠져 보였다. 나는 그저 곁에 앉아 손을 잡아 주는 일밖에 할 수 없었다. 마음 한구석이 먹먹해졌지만, 오늘도 서로 기대며 견뎌야 한다는 다짐이 조용히 자리 잡았다.
“간호사 선생님 보고 뭐라고 불렀어요.”
“선생님이라고 불렀지.”
“잘했어요.”
순한 양이 된 남편과 병원을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