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환자 아내의 시점
2025.9.18.
남편은 입원해 있는 동안에도 나에게 막말을 하곤 했다. 마음이 자꾸 오락가락하는 모양이었다. 배가 고프면 평소엔 없던 짜증도 생기기 마련인데, 금식이 이어지니 더 예민해진 듯했다. 나는 괜히 말실수라도 할까 봐, 남편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고 조심스럽게 입을 닫았다. 남편 곁에 앉아 있어도, 마치 얇은 얼음판 위를 걷는 기분이었다.
며칠 전 외래 진료에서 교수님께 여쭌 말이 있었다.
“수술 전에 대장 내시경을 다시 해야 하나요?”
교수님은 단호하게 대답했다.
“이미 했으니 또 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 말을 듣고 안도했었다. 적어도 속을 비워내는 약은 안 먹겠구나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입원하자, 점심 무렵 간호사가 병실로 들어와 조심스럽게 말했다.
“환자분, 오늘 대장 비우는 약을 드셔야 해요.”
남편은 그 말을 듣자마자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아침에도 설사했는데 또 먹으라고? 아무것도 안 먹었는데 이제는 물밖에 안 나와!”
목소리는 날카로웠고, 억울함과 화가 한데 뒤섞여 있었다. 나는 잠시 말문이 막혔다. 그래도 속으로는 ‘원만한 수술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지’ 하는 생각뿐이었다. 나는 최대한 부드럽게 말했다.
“당신, 그냥 처방대로 하는 게 낫지 않을까? 그래야 수술이 문제없이 잘 된다잖아.”
한참 실랑이를 벌인 끝에야 남편은 마지못해 컵을 들었다. 첫 모금을 삼키자, 얼굴이 더 일그러졌다. 그리고는 갑자기 두 손으로 가슴을 부여잡으며 힘든 시늉을 했다.
그 순간 나는 웃음이 터질 뻔했지만, 곧 마음이 저려 왔다. 병상 위에서 억울하고 힘없는 몸으로 투정 부리는 남편이 어쩐지 어린아이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동안 강인한 가장으로만 살아온 사람이었는데, 지금은 약한 모습으로 내 앞에 누워 있었다. 나는 그의 등을 조용히 쓰다듬어 주었다.
남편은 투정을 부리다가도 내 손길에 잠시 마음이 누그러진 듯 눈을 감았다. 그 모습에서 나는 부부라는 것이 결국 이런 게 아닐까, 생각했다. 갈등도 있고, 불만도 있지만 끝내 서로를 의지하며 버텨내는 것. 병실의 고요 속에서, 우리의 삶이 다시 한번 시험대 위에 오른 듯했다.
그리고는 화장실을 들락 낙락 하며 속엣것을 다 쓸어내고 있었다. 그리고는 마지막 분비물을 확인하였다. 간호사한테 검사를 받고 2차 약은 안 먹어도 된다고 하였다. 그리고는 교대 시간이어서 다음 파트 간호사하고 교대한다고 인사를 하러 왔다. 교대한 간호사는 남은 약도 먹어야 된다고 하였다. 남편은 완강히 거부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실로 난감한 일이다. 남편의 강한 거부반응에 주치의한테 보고가 들어갔다. 어김없이 수술을 위해서 2차 약을 먹어야 한다는 조치가 내려왔다.
남편은 2차 약은 먹지 않겠다고 입을 굳게 다물고 있었다. 간호사가 벌써 십 분도 넘게 다정하게, 때로는 단호하게 설득을 이어가고 있었지만 남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환자분, 처방대로 드셔야 합니다. 그래야 수술이 안전하게 됩니다.”
간호사의 목소리는 한결같이 부드러웠지만,
그 부드러움 속에는 ‘이건 꼭 지켜야 한다’는 절박함이 묻어 있었다.
나는 옆에서 거들었다.
“당신, 내려온 처방은 이유가 있으니까 나온 거잖아. 억지로라도 드셔야 해.”
그러자 남편은 불시에 불덩이를 토해 내듯 소리를 질렀다.
“나는 지금 죽을 지경이야! 만약 무슨 일이 생기면, 당신이랑 저 간호사가 책임질 거야?”
책임론까지 들고 나오는 남편의 억지는 당혹스럽기 그지없었다. 저렇게 말 안 듣는 환자를 붙잡고 설득하는 간호사가 무슨 죄가 있단 말인가.
나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절충안을 내놓았다.
“그럼 이렇게 하자. 내시경 검사가 아니라 수술을 위한 필수항목이니까, 남은 약 반만 먼저 먹어보는 거야. 혹시 이상하면 그만두고.”
남편은 한참을 버티더니 마침내 탁자를 손바닥으로 내려치듯 소란을 피우며 소리쳤다.
“좋아! 그렇지만 무슨 일이 생기면 당신이 책임져!”
그러고는 윽박지르듯 약 반 잔을 들이켰다.
나는 안도와 허탈이 뒤섞인 마음으로 남편을 바라보았다. 억지로라도 삼켜낸 그 반 모금이, 투정과 떼의 결과물이 아니라 남편의 몸을 살리는 힘이 되기를 간절히 바랐다.
고픈 배를 부여잡고 화장실을 들락날락하면서 힘겨운 날을 보내고 있는 남편,
나에게 책임지라 한 날이 저물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