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나긴 시간을 견디며

암 환자 아내의 시점

by 복덕


새벽 네 시, 눈을 떴다. 잠이 오지 않아 뒤척이다가 결국 일어나 버렸다. 며칠 전 수술 전 검사에서 마음을 졸이게 했던 결핵 검사가 다행히 ‘수술 가능’으로 나와 한숨을 돌렸지만, 막상 수술 당일이 되니 가슴이 다시 두근거렸다. 잠결에 남편의 핸드폰을 손에 쥐었다. 오늘 수술날인데 혹시나 누군가 전화를 걸어 괜히 마음이 불편할까 봐 전원을 꺼 두려던 순간, 화면에 ‘수술 시작과 종료 등 진행 상황을 이 폰으로 알려드립니다’라는 문자가 떴다. 남편의 폰과 내 폰을 나란히 가방에 넣으면서, 이제 곧 시작될 긴 여정을 준비하는 기분이 들었다.


아들과 딸도 오늘 하루 휴가를 내고 병실로 찾아왔다. 그들의 얼굴을 보니 긴장 속에서도 묘한 안도감이 스며들었다.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 가족이 함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든든했다. 수술실로 향할 준비를 마치자, 병실 안의 공기는 유난히 무겁고도 조심스러웠다. 수술 안내 침대에 누워 수술실로 이동하는 동안 남편한테 걱정 말고 나중에 보자고 인사를 하고 파이팅을 외쳤다. 오늘 하루가 우리 모두에게 얼마나 길고 간절한 시간이 될지, 그때는 미처 다 알지 못했다.


전광판에서 남편이 수술실로 입실했다는 알림이 뜨자, 그제야 긴장으로 바짝 마른 목을 축이려 식당으로 향했다. 기다리는 사람도 지쳐버리면 안 되니까, 나를 먼저 챙겨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메뉴판을 훑다가 목 넘김이 좋은 김치찌개를 골랐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국물 한 숟가락이 목을 타고 내려가자, 그제야 마음 한편이 조금 풀어졌다. 다들 같은 마음일까, 아이들도 각기 국물 있는 음식을 시켰다.


남편은 외과 첫 타임으로 수술에 들어간다고 했다. ‘첫 번째 수술이라 집중력이 더 좋겠지, 실수는 없겠지’ 하며 나름의 위안을 스스로에게 주었다. 그래도 불안은 끊임없이 고개를 들었다. 휴게실로 자리를 옮겨 앉았지만, 시간은 더디게 흘렀다.

그때 지인에게서 문자가 도착했다. "아무것도 안 하고 있으면 마음이 더 무겁지. 무슨 불경이라도 외워봐." 잠시 휴대폰 화면을 들여다보며 씁쓸하게 웃었다. 아무것도 안 해도 이미 머릿속은 복잡한데, 경을 외울 정신이 나에게 있단 말인가. 지금 내 안에는 오직 수술실 문만 바라보는 초조함뿐이었다. 손끝은 괜히 얇은 가방끈을 만지작거렸고, 시선은 텅 빈 벽을 헤매었다. 그렇게 멍하니 앉아 있으니, 시간이 흘러가기는커녕 멈춰 선 듯 답답하기만 했다.


잠시 눈을 감아보았다. 병원 특유의 소독약 냄새,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듯한 신음 소리, 무심한 발자국 소리가 한꺼번에 밀려왔다. 그 모든 소리가 마치 내 심장의 박동과 함께 뒤섞여 울리는 듯했다. 지인의 말대로 경을 외우면 마음이 차분해질까. 하지만 지금은 그저 눈을 감고 멍하니 있는 것조차 내게는 작은 버팀목이었다. 나는 눈을 감은 채, 그저 조용히 남편의 무사함을 빌고 있었다.


점심시간쯤 되자 수술 완료란 전광판의 글자들이 올라온다. 조바심에 우리는 점심도 먹으러 가지 않았다. 그래도 남편의 수술 완료란 글자는 올라오지 않았다. 우리는 한 사람씩 밥을 먹고 오기로 하였다. 내가 나중에 갔는데 그때까지도 감감무소식이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서성이고 있었는데 제일 나중에야 수술실에서 회복실로 간다는 문자가 떴다. 우선은 조금 안심이 되었다. 그래도 수술이 끝났다는 게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명의 찾아서 큰 병원까지 오지 않았던가. 의사 선생님을 믿어야 할 일이다. 회복실에 간 지 한 시간이 지날 무렵 문자가 왔다. 아직 잠이 깨지 않아서 그러니 아무 걱정 말고 한 시간 더 기다리라 했다. 긴 수술에 마취가 세게 들어간 모양이다. 기관지 내시경 할 때도 다른 사람보다 늦게 깨더니 걱정이 올라온다.


마취에서 깨어난 남편이 수술실 문을 나서자, 침대에 실려 나오는 그 모습을 보는 순간 왈칵 눈물이 나왔다. 하얀 이불속에서 두리번두리번 우리를 찾고 있는 얼굴을 보니, 그동안 얼마나 고생했을까 하는 생각에 목이 메었다. 수술이 끝났다는 안도감과 함께, 이제 어떤 말을 건네야 할지 몰라 입술만 달싹거렸다.

긴 시간 동안 온갖 상상을 하며 나도 지칠 대로 지쳐 있었던 터라, 눈앞의 남편은 더욱 애틋하게 다가왔다. 남편은 우리 가족들을 확인하듯 눈을 겨우 뜨더니, 곧 다시 잠의 세계로 빠져 들어가려 했다. 간호사는 앞으로 두 시간 동안은 자꾸 깨워야 한다는 주의사항을 전해주었다. 깊이 잠들지 않도록, 옆에서 끊임없이 불러야 한다는 것이다.


마침 사위까지 병원에 도착해, 우리는 ‘깨우기 작전’에 돌입했다. 딸은 하이톤으로 “아빠!”를 연발하며 애써 깨워보지만, 남편은 고개만 살짝, 미소만 살짝, 하지도 않은 말을 실없이 하기도 하면서 자꾸 눈을 감으려 할 뿐이었다. 다들 한 마디씩 보태며 떠들썩하게 불러도, 남편은 마치 깊은 강물에 몸을 맡기듯 점점 아래로 가라앉는 듯했다.

그러던 중 병실 규정상 보호자 한 명만 남아야 한다는 안내를 받고, 가족들은 아쉬운 마음을 뒤로한 채 병실을 나섰다. 결국, 남편 곁에는 나 혼자 남았다. 모두에게 전해 들은 방법을 머릿속에 새기고, 나는 조심스레 그의 이름을 불렀다. 그리고 어깨를 툭툭 건드리기도 하고, 발을 찰싹찰싹 때리기도 하였다. 큰 소리로 짜증도 내었다가 엄포로 협박도 했다가 별수를 다했지만 남편은 여간해서 깨지를 않았다.


그렇게 두 시간이 그럭저럭 지나고 나니 이제는 그냥 두어도 된다고 했다. 남편의 어깨를 얼마나 찰싹찰싹 두드렸는지. 괜히 미안한 마음이 앞선다. 무뚝뚝한 내 성미가, 다정한 말로는 도저히 남편을 깨우지 못했음이 못내 아쉬울 뿐이다. 시간이 조금 흐르자 졸음도 덜한지, 남편은 말도 곧잘 이어간다. 아들이 “엄마한테 잘하라” 했다는 이야기를 꺼낸다. 같이 있어도 나는 그런 말을 듣지 못했는데, 어쩌면 그것은 남편 마음속 깊이 묻어 있던 마음의 소리일지도 모른다.


엉뚱해 보이는 말 한마디가 남아 있다는 건 아직 정신이 온전히 돌아오지 않았다는 뜻일 수도 있지만, 내겐 오히려 반가운 위안이었다. 여전히 남편은 나를 향해 무언가를 건네려 하고, 그 속에 담긴 애정은 여전히 살아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어깨를 두드리던 내 손길보다, 남편이 전한 그 한마디가 더 큰 울림이 되어 가슴속에 남는다. 결국 나는 또다시 다짐한다. 무뚝뚝한 아내가 아니라, 따뜻하게 마음을 건네는 아내로 남편 곁에 오래 있어 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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