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환자 아내의 시점
평생을 일하며 살아왔다. 일이 곧 내 삶이자 내 존재의 이유라고 여겼다. 물론 경제적 활동을 하지 않으면 먹고사는 일이 걱정이니 놀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남편이 아프고 나서야 알았다. 사람이 경제적 활동을 하지 않아도, 어찌어찌 살아진다는 것을. 막막할 것 같던 삶도 또 이렇게 이어지는 것을 보면, 인생은 겪어보기 전엔 알 수 없는 일이 참 많다.
때마침 살던 집이 재건축으로 지정된 것도 큰 힘이 되었다. 마치 신이 내려준 한 수 같았다. 덕분에 한숨을 돌릴 수 있었고, 나는 일 없는 날들의 허전함을 조금은 받아들일 수 있었다.
어제 남편이 수술을 잘 받고 퇴원을 했다. 그러나 곧장 집으로 오지 않고 요양병원으로 가겠다고 했다. 그런 남편이 좋으면서도 서운하고, 안심되면서도 허전했다.
그런 남편이 오늘은 점심을 먹겠다며 집에 왔다. 고기를 사 들고 들어오는 모습에 순간 마음이 환해졌다. 겉으로는 태연한 척했지만, 속으로는 오래 기다린 손님을 맞이하는 듯 반가웠다. 계절이 바뀌었으니 옷을 가지러 온 것일지도 모른다. 내가 챙겨다 주기를 기다리지 못하고 직접 찾아온 셈이다. 아프면서도 무슨 외출할 일이 있으려고 직접 옷을 챙기러 오는지.
나는 아침부터 분주했다. 아직 정상적인 일반식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신경이 쓰였다. 일단 흰밥은 물을 낫게 부어 진밥으로 했다. 알 배추와 당근을 썰어서 찜기에 찌고, 어제 삶아 놓은 양지를 썰어 잘게 찢어 뭉근하게 익혔다. 서울 병원에 있을 때 입버릇처럼 장조림, 장조림 하였기에 그 장조림을 환자식으로 했다. 몇 년 전에 아팠을 때 죽집에서 사다 준 장조림이 입맛에 맞아 그 후로 장조림 노래를 불렀다. 밥도 해 놓고 야채도 준비해 놓고 장조림까지 완벽하게 준비가 되었다. 항상 음식을 먹으며 지적질을 하는 남편 특성상 이렇게 해도 좋은 소리는 듣지 못할 게 뻔한 일이지만.
20년 만에 딸과 가까이 살아보는 것은 내 인생의 또 다른 신의 한 수라 할 만하다. 대학에 진학한 뒤로 늘 떨어져 지내던 딸과, 이렇게 수원으로 이사와 다시 일상을 나누게 될 줄이야. 이제는 사소한 점심 한 끼도 함께할 수 있고, 급히 움직일 때 옆에서 딸이 동행해 주니 든든하고 기쁘다. 예전에는 마산의 친구들이 자식들과 우르르 다니며 맛있는 음식을 먹으러 가는 모습을 부러움 섞인 눈길로 바라보곤 했는데, 나도 이제야 그 호사를 조금은 누리는 셈이다.
마침 오늘은 딸과 손녀가 집에 와 점심을 함께했다. 내가 만든 장조림을 맛있다며 칭찬해 주었다. 남편은 여전히 무심한 듯, 장조림에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대신 일 없이 데친 배추를 간장에 푹 찍어 먹는 모습으로 모두를 놀라게 한다. 그 또한 우리 집 식탁의 작은 풍경이다. 식구들과 함께 모여 웃고 이야기 나누는 이 평범한 풍경이 얼마나 귀한 순간인지, 새삼 가슴에 새겨본다.
요양병원에서 무슨 옷이 필요하다고 옷을 챙겨 갈렸는지 알 수가 없다. 거기에 짐을 많이 갖다 놓으면 또 퇴원할 때 모두 내 일이 된다는 사실을 모르는 모양이다. 겨울이 다가오니까 양말은 넉넉하게 챙겼다. 잘 안 마를 수가 있으니까. 셔츠도 두 벌 챙겼는데 또 더 가져온다. 또 한마디 하려다 입을 닫았다. 내 말은 다 잔소리로 알아들으니까. 바지를 넣었는데 또 바지를 가져오고. 그러다 보니 짐이 한 보따리가 되었다. 사위 차에도 가방이 한 개 더 있는데 한 사람이 움직이는데 짐이 이리 많이 따라 붓는다. 나이 들면서 짐을 줄여야 가뿐한데 남편은 그 이치를 알려면 한참 멀었다.
병원에 들어가면 결국 필요한 건 한두 벌의 옷과 약간의 생활용 품뿐일 것이다. 그러나 남편은 아직도 떠날 때마다 가방에 무언가를 더 넣으며 마음의 빈자리를 채우려는 듯하다. 깔끔하게 단출하게 지내면 얼마나 좋을까. 남편병실에 가면 신발이 대여섯 켤레가 쭈룩 있다. 그러면 나는 참지 못하고 잔소리가 나온다. 무슨 신발을 이렇게 해 놓냐고. 나는 그런 게 보기 싫고 남편은 나의 이런 소리가 듣기 싫고. 우리는 이렇게 매 일이 아웅다웅이다.
남편은 아직도 세상 물정을 잘 모르는 것 같다. 내가 곁에 있어 든든하다는 안도감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한 보따리 짐을 안고 병원으로 향하는 길, 나는 멀찍이 서서 손을 흔들어 주었다. 짐 실어 나르는 사위한테도 부끄럽다. 이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남편은 부쩍 자기 말만 한다. 나의 마음도 무겁지만 동시에 그만큼 서로에게 기대어 사는 삶임을 다시 확인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