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툰 고백
여뀌를 보았다.
2025.11.18.
햇살이 퍼지면 사랑이 산책을 시키려 하는데
일어나자마자 전화가 온다.
‘사랑이 산책시켰나’ 묻는 남편이 원망스럽다.
그렇게 묻는 남편한테
날씨가 추우니 나다니지 말라고 당부한다.
그러면 사정없이 전화는 끝이 난다.
남편이 그러거나 말거나
햇살이 퍼지면 나는 밖으로 나선다.
딱히 할 일이 없어도
바깥바람은 한 번 쐬어야 하고,
떨어진 낙엽도 밟아 보아야 하고,
한창 피어나는 국화도
눈길 한 번 줘야 하지 않겠는가.
오솔길을 걸으면
잠깐이라도 마음이 고요해진다.
사랑이는 낙엽을 밟으며
앞장서서 나를 끌고 간다.
그 녀석이 이끄는 대로
들어서게 된 곳에서
나는 뜻밖의 풍경을 만났다.
아스라이 분홍빛 무리를 지어
허공에 실처럼 드리워진 꽃들.
뾰족한 송이 위에
알알이 박혀 있는
여뀌였다.
연못가나 물가에서
습기를 품고 자란다던 풀꽃,
그 연한 꽃잎 끝이
가만히 붉어지던 풀꽃.
연꽃을 그리던 시절,
그 넓은 잎 가장자리에
곁들이듯 그려 넣곤 했던 여뀌.
선생님은 꼭 화실에 와서
그리라 하셨는데
그때는 여뀌가 물가에만 피는 줄 알았다.
그 여뀌가
왜 여기 오솔길 한편에 피어 있을까.
연꽃 옆에 붙어 있어야
제자리인 줄 알았는데
이 깊은 가을 산책길에서
또 다른 자리를 찾았나 보다.
바람이 건너오면
여뀌는 고개를 살짝 숙인다.
마치 오래전부터
나를 기다렸다는 듯이.
나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그 여린 분홍빛을 들여다본다.
남편의 짧은 전화,
사랑이의 작은 발소리,
흩날리는 낙엽,
그리고 여뀌.
삶은 이렇게
소리 없이 피었다가
소리 없이 흔들렸다가
또 소리 없이 자리를 잡는다.
오늘은
여뀌가 나를 이 풍경 속으로
살며시 데려다 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