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환자 아내의 시점
추석 전날에 남편이 왔다.
그날 오전, 마음이 설렘과 불안으로 뒤섞여 있었다. 오전 내내 남편을 기다렸는데 오후 서너 시가 되어서야 전화가 왔다.
“9단지 쪽으로 마중 나와.”
나는 사랑이를 데리고 빛의 속도로 내려갔다. 남편은 버스에서 내려 무언가를 들고 저만치서 걸어오고 있었다. 그 순간, 그가 휘파람을 불었다. 사랑이는 기다렸다는 듯 줄을 끊을 듯 뛰쳐나갔다. 둘만 아는 신호였다. 매일 아침 나와 달릴 때보다 훨씬 빠른 속도였다.
남편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그러나 예전의 모습과는 달랐다. 어깨를 움츠린 채 조심스레 봉지를 내밀었다.
“아픈데 이런 걸 왜 들고 다녀.”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 봉지 하나에 그의 마음이 다 들어 있는 것 같았다. 명절이라고 무언가를 가지고 오는 마음. 나는 그 마음을 알면서도 좋은 말이 나오지 않았다. 남편은 환자처럼 보였다. 수술 직후보다 얼굴이 더 안 좋아 보였다.
남편의 얼굴에 묻은 피로가, 걸음마다 묻은 세월이, 석연치 않게 아프게 밀려왔다. 환자처럼 보이는 남편을 바라보며, 나는 그가 여전히 이 순간을 견뎌내기를 바랄 뿐이다.
사랑이는 그의 발목에 얼굴을 비비고, 나는 그 모습을 눈으로 꼭 껴안았다.
이사 온 지 6개월 만에 남편이 집에서 하루 묵는 날이다.
요양병원에서의 생활이 몸에 익어서인지, 아니면 병원을 떠나 있는 하루가 불안해서인지, 남편은 내가 알던 그 사람이 아니었다. 낯설 만큼 말수가 줄었고, 집인데도 어색해 보였다.
남편을 위해 정성껏 마련한 반찬들도 손이 잘 가지 않는 모양이다. 한 숟가락씩 뜨다 말고 젓가락을 내려놓는 남편의 손끝에서, 나는 ‘입맛’보다 ‘마음 맛’을 잃은 사람의 기운을 느꼈다. 괜히 그 모습을 보니 나 스스로도 안절부절못했다.
“침대에 가서 좀 누워요.”
내 말에 남편은 고개를 저으며,
“소파가 편해.”
하고 짧게 대답했다.
방 안에 있는 침대보다 거실 소파가 더 편하다는 말, 그건 단순한 습관의 문제가 아니었다. 병원 생활에서 침대는 늘 병과 함께 있던 자리였다. 누워 있는 동안 늘 몸이 불편했을 것이고, 누울수록 더 아프다는 생각이 남편의 마음속에 각인되었는지도 모른다.
거실 한편, 소파에 몸을 기댄 남편은 텔레비전도 켜지 않은 채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산집에서도 거실은 남편의 아지트였지만, 항상 TV 리모컨을 손에 쥐고 놓지를 않은 사람이었다. 살아 있는 생활의 냄새가 있었다.
지금은 그 자리가 너무 조용했다. 숨소리 하나에도 세월이 스며들어 있었다.
나는 조용히 부엌에 서서 남편의 이런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동안 이사 준비에, 새로운 공간을 꾸리는 일에, ‘집이 완성되면 남편이 돌아오겠지’ 하는 마음으로 버텨왔는데, 막상 남편이 돌아온 지금, 적응되지 않는 듯한 그 마음의 자리를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모르겠다.
딸 집에서 사돈과 다과를 하기로 했는데, 남편은 내켜하지 않았다. 내가 보기에도 몸이 더 가라지는 것 같았다. 아픈 모습을 사돈에게 보이기 싫었을까. 아니면, 더 이상 건강한 사람처럼 행동하기 버거웠던 걸까.
그래서 결국 딸 식구가 우리 집으로 왔다.
비가 오는 추석이었다. 아들, 딸 식구까지 오랜만에 모두 모였다. 이런 왁자함이 순간 좋았다.
다음 날, 남편은 다시 요양병원으로 갔다. 만 하루의 집 나들이였다.
비는 여전히 억수로 내리고 있었다. 사위 차를 타고 병원으로 가는 길, 창밖의 빗줄기가 유난히 굵어 보였다.
병원에 도착하니 마침 저녁밥이 나와 있었다.
추석이라 대부분의 환자들이 집으로 가서 병동은 한산했다. 남편은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호박죽이 있다네. 당신 좋아하잖아. 한 그릇 먹고 가.”
그 말에 나는 머뭇거렸다. 병원 밥상 앞에서, 그는 여전히 ‘가장의 자리’에 있었다. 마치 자기 집에서 아내에게 대접이라도 하는 양, 나를 챙기려 했다.
남편의 마음은 여전히 가족을 향해 있었다.
자신이 병원에 있어도, 가족이 평안하길 바라는 마음. 몸은 약해져도 그 마음만은 여전히 단단했다.
그 마음을 지켜보며 무너지는 나의 마음.
먹고 싶지 않았지만, 그 호박죽을 한 그릇을 비웠다. 달고 따뜻했다.
그 호박죽 속에 남편의 마음이 녹아 있었다.
그 순간만큼은, 병원이 아니라 오랜 세월 함께 살아온 우리 집 식탁 같았다.
그렇게 추석날에 호박죽을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