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어탕과 함께 온 단감

암 환자 아내의 시점

by 복덕


비 오는 날 버스를 타려면 늘 다짐이 필요하다. 우산을 받쳐 들어도 버스 문 앞에 닿는 순간은 어김없이 흠뻑 젖는다. 버스에 올라타면 자리부터 찾아 앉고, 젖은 머리카락을 훔치고 눈썹에 맺힌 빗물을 털어내는 의식을 치른다. 이 모든 일이 익숙하면서도 번거롭다.

마침 퇴근 시간이라 버스 안은 숨 쉴 틈 없이 붐볐다. 축축한 옷과 비 냄새, 사람들의 체온이 뒤섞여 눅눅한 공기가 버스 안에 맴돌았다. 인구가 많아서일까, 아니면 다들 비를 피하고 싶어 버스로 몰린 걸까.


남편 병원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요양병원 문 앞에서 손을 흔드는 남편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조금만 더 서두르면 퇴근 시간과 겹치지 않았을 텐데, “혼자 가서 밥 먹으면 서글프잖아. 밥이라도 먹고 가.” 하는 남편의 말에 결국 늦어지고 말았다.

창가에 앉아 어두운 차창 밖을 바라본다. 빗방울이 유리창을 타고 미끄러지며 서로 엉기고 흩어진다. 거리의 불빛들은 그 빗방울에 번져 물감처럼 스민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우산을 쓰고 종종걸음으로 귀가를 서두르고, 편의점 불빛만이 젖은 거리를 희미하게 밝혀준다. 버스의 진동에 따라 차창에 비친 내 얼굴도 덩달아 흔들린다.

그 흔들림 속에서 나는 문득 생각한다. 남편이 누워 있는 병실 창에도 지금쯤 빗소리가 닿고 있을까. 나 대신 그가 듣는 빗소리가 조금은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 버스는 빗길을 미끄러지듯 달리고, 나는 물기에 젖은 마음을 천천히 말려 가며 집으로 향한다.


아파트 문 앞에 택배가 와 있었다. 붕어탕이 왔다. 남편은 수술 전부터 보신으로 붕어탕을 주문해 먹는다. 처음 결혼했을 때는 영지버섯을 많이도 달여 먹였다. 그 시절에는 직장동료들과 이런저런 정보를 교환하여 단체로 주문도 하곤 했었다. 남편도 자기만의 정보로 붕어를 해 달라고 하여 그때는 집에서 붕어탕을 한 적도 있었다. 그때 먹어 본 붕어탕이 입맛에 맞았는지 아프고 나서부터 몸보신으로 붕어탕을 주문해 먹고 있다. 환자가 되어 보면 일단 입맛이 없어지니까 어떻게 해서든지 입에 맞는 것을 먹여야 한다. 게다가 남편은 평소에도 입이 짧아서 까탈이 심한 편인지라 본인의 입맛에 맞는 붕어탕이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택배를 들고 들어가려니까 무거웠다. 그래서 가방을 택배 상자 위에 얹어서 낑낑 소리를 내면서 안으로 옮겼다. 문을 열고 들어왔는데도 사랑이는 짖지도 않는다. 필시 잘못을 저질러 놓았을 것이다. 희한하게도 잘못을 아는지 모르겠다. 아니나 다를까, 문을 열자마자 잽싸게 거실로 도망을 간다. 나는 사랑이를 잡아서 입마개를 풀어주고 물 먹으라고 소리를 질렀다. 방안은 예상대로 물이 엎질러져 있었고 깔아 놓은 이불은 돌돌 말려 구석에 처박혀 있었다. 아무렴 이렇게 해 놓아도 괜찮다. 혼자서 이렇게라도 분풀이를 해야 하지 않을까. 인간의 조바심에 입마개를 하는 신세이니까.


붕어탕을 냉장고에 넣으려고 택배 상자를 열었다. 그런데 상자 안을 보는 순간, “와!” 하는 감탄이 절로 나왔다. 붕어탕보다 먼저 눈에 들어온 건 주황빛 단감들이었다. 붕어탕 봉지를 밑에 깔고, 그 위에 빈 공간마다 단감이 곱게 들어 있었다. 그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져 왔다.

옛날에 과일 장사를 하며 하루에도 수십 번 단감을 손에 쥐었다. 껍질이 매끄럽고 윤기 도는 걸 고르다 보면, 그 모양새 하나에도 사람의 정성이 묻어 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일로서의 만남이었다. 무게를 달고, 진열하고, 팔기 위해 다루는 단감들. 단감의 향보다 가격표가 먼저 떠올랐다.


그런데 택배 상자 속 단감은 달랐다. 돈의 냄새 대신 정과 마음의 온기가 배어 있었다. 누군가 내게 건네는 ‘수고했다’는 인사처럼 느껴졌다. 그동안 나는 과일의 맛만 알았지, 그 속에 담긴 마음의 맛은 잊고 살았던 것 같다.

상자에서 단감 하나를 꺼내어 얼른 깎았다. “그래, 이 맛이야!” 창원에서 먹던 단감 맛이었다. 이 귀한 단감을 누구와 나눠 먹을까 아는 얼굴을 떠올려 보았다. 우선 딸에게 줄 한 봉지 만들어 놓고, 그리고! 그리고는 봉지에 담아 줄 사람이 없었다.


그 사실이 잠시 마음을 쓸쓸하게 했다. 하지만 이내 생각을 고쳐먹었다. 단감의 단맛은 함께 나눌 사람이 있을 때만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그 마음을 떠올릴 때 이미 완성되는 것임을 문득 깨달았다. 그리운 얼굴들에게 마음속으로 단감을 건넸다.

“잘 지내지? 나, 네 생각하면서 단감 먹고 있어.”

한입 베어 문 단감의 단맛이 혀끝에서 퍼졌다. 달콤하면서도 아릿했다. 그것은 세월의 맛이자, 그리움의 맛이었다.

‘사람의 맛’을 다시 일깨워준 선물이었다. 비 오는 날 받은 단감이.

작가의 이전글나무의 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