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색한 사이처럼

암 환자 아내의 시점

by 복덕


남편이 일박이일로 집에 왔다. 그 짧은 시간 동안 나는 쉴 새 없이 움직였다. 계절이 바뀌니 가장 먼저 신경이 쓰인 건 온도였다. 며칠 전,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날씨가 추워졌으니 공식적으로 난방을 가동해도 된다”는 안내 방송이 나왔다. 그때 나는 ‘난방 트는 것까지 방송을 하나?’ 싶었다. 여름엔 더우면 에어컨을 켜듯이, 추우면 난방을 켜면 되는 일 아닌가. 별것 아닌 방송 하나에 이런저런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하지만 막상 남편이 오니 그 방송이 떠올랐다. 우리는 마주 앉아 온도계를 들여다보며 난방 버튼을 눌렀다. 단순한 버튼 하나 누르는 일인데, 어쩐지 손이 서툴렀다. 며칠 전 딸이 와서 친절히 방법을 알려주었지만, 그때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던 게 화근이었다. 온도 조절판의 숫자가 또렷하게 보이지 않아 한참을 더듬거렸다. 결국 안경을 쓰고 돋보기를 들이대서야 겨우 ‘24도’라는 숫자를 맞출 수 있었다.


버튼을 누르자 따뜻한 공기가 천천히 방 안으로 번졌다. 그 순간 비로소 마음이 놓였다. 보일러에서는 느리게 은은하게 온기가 나왔다. 퍼져 나오는 온기는 단지 실내의 온도만이 아니라, 잠시 집에 머무는 남편에게 건네는 내 마음의 온도 같았다.


남편이 집에 돌아왔지만, 우리는 마치 오랜만에 만난 낯선 사람처럼 서로를 대했다. 그는 거실 한쪽에서 머뭇거렸고, 나는 식탁 앞에서 괜히 물컵을 닦고 또 닦았다.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몰라 입을 떼다가도, 결국은 “몸은 좀 어때?” 하는 걱정 섞인 말만 흘러나왔다. 남편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이며 피곤하다는 듯 눈을 피했다. 아마 나의 걱정이 그에게는 부담이 되었을 것이다.

그래도 나는 그 말을 멈출 수가 없었다. 그것이 내 방식의 다정함이었다. 그러나 남편은 그런 나의 다정함이 불편했던 모양이다. 평소에 잠을 늦게 자던 사람이 그날따라 일찍 불을 끄고 방으로 들어갔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유난히 귀에 거슬렸다.


나는 거실에 남아 티브이를 켰다. 화면 속 사람들은 웃고 떠들었지만, 그 웃음이 내 귀에는 닿지 않았다. 따뜻한 공기가 여전히 방 안을 돌고 있었지만, 마음 한구석은 무언가 이상했다. 그래도 그 온기를 끄지 못했다. 혹시라도 남편이 새벽에 잠에서 깰 때, 이 공기가 그대로 있었으면 해서.

소파에 누워 잠을 청하며 생각했다. 우리는 여전히 서툴다. 마음은 서로를 향해 있는데, 손끝 하나 뻗는 일이 왜 이렇게 어려운 걸까. 따뜻한 공기 속에서도 서로의 체온을 느끼지 못하는 밤, 나는 그저 조용히 남편의 잠든 방을 바라봤다.


집에 있는 사간이 길었는지 남편은 점심을 먹고 서둘러 갔다. 환자티가 나는 헐렁한 옷을 집에 벗어 놓고 계절에 맞게 옷을 입혀서 보냈다. 장사를 할 때에는 꼭꼭 셔츠와 바지를 다려서 입혔는데 지금은 편한 것만 찾는 남편이다. 일인용 전기요를 넣고 패당바지도 한 벌 넣어서 짐을 들고 가야 하는 남편이다. 걱정되는 마음에 버스정류장까지 들어다 주면서 사람은 한순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불원천리 고향을 떠나 이렇게 살 줄 알았을까.


남편은 다 나으면 고향에 가서 살자고 한다.

그 말이 왜 그렇게 가슴을 울리는지 모르겠다. ‘고향’이라는 두 글자만 들어도 왈칵 눈물이 치밀어 오른다.

나는 늘, “내가 사는 곳이 곧 내 고향이지, 무슨 특별한 고향이 따로 있냐”라고 웃어넘기곤 했다. 하지만 돌이켜보니 내 마음 한편에도 언제나 돌아가고 싶은 진짜 고향이 있었나 보다.


세월이 흐를수록 그리움은 점점 깊어지고, 그곳에 두고 온 여러 시절의 냄새와 풍경이 문득문득

마음을 흔든다.

그렇지만 나는 안다.

이제는 여기서 살아야 한다는 것을.

자식들이 곁에 있고, 그 존재만으로도 늙은 마음의 의지가 되어 준다.

멀리 떨어져 사는 외로움보다는, 아이들의 숨결이 닿는 이곳에서 사는 것이 더 든든하고 따뜻하다.


가끔 남편이 말한다.

“그래도 고향이 좋지 않냐. 친구들도 있고, 아는 얼굴도 많잖아.”

그럴 때면 나는 웃으며 대답한다.

“당신 친구들이 다 여기 있는데, 그 친구들 두고 어디 가겠어요.”

내 말에 남편은 잠시 웃다가 고개를 끄덕인다.

생각해 보면, 이제 우리의 고향은 꼭 태어난 곳이 아닐지도 모른다.

정 붙이고 살아온 사람들과의 추억이 쌓인 이곳,

서로의 얼굴을 알아보고 안부를 묻는 이 마을이

어쩌면 지금의 우리에게 가장 따뜻한 고향이 아닐까.


남편과 오랜만에 하루 지내는 것도 어색한데 다시 고향 가서 또 어떻게 적응을 하겠는가. 남편은 버스에 앉아 손을 흔들어 보였다. 이삼일 후에는 내가 또 남편을 보러 가야 한다. 이렇게 사는 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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