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들레

by Ari

| Taraxacum platycarpum

| 쌍떡잎식물 초롱꽃목 국화과의 여러해살이풀

| 들판의 볕이 잘 드는 곳에서 자란다.


아이들이 선생님을 따라 교문으로 나옵니다. 아직 아장아장 아기 걸음마가 남은 것 같기도 한 여린 모습으로 몸집의 절반만 한 책가방을 메고 걸어옵니다. 교문 밖에 아이를 데리러 온 수많은 어른들 사이에서 엄마,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 선생님, 저마다의 보호자를 발견하고 뛰어나옵니다. 노란 민들레가 여기저기 피어나는 봄학기입니다. "엄마!" 저기 저의 아이가 저를 발견하고는 생긋 웃으며 달려오네요. "엄마 놀이터 갈래!" 아이는 뛰어가기 시작합니다.

우리 집 갓난아기는 엄마 껌딱지, 아빠 껌딱지, 어린이집 다니는 아기, 유치원생 어린이를 차례로 거쳐 드디어 초등학교 1학년 형님이 되었습니다. 남편과 둘만의 힘으로 아이를 돌보면서 몇 번의 육아 위기도 그럭저럭 넘겨왔습니다. 하지만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아이가 1학년이 되면...'으로 시작하는, 맞벌이 부부와 그 아이에게 닥친다는 무시무시한 시련에 대한 예언이 언제나 머릿속에 맴돌았습니다. 어린이집이나 유치원만 해도 저녁까지 아이를 맡길 수 있지만, 초등학교 저학년은 한낮에 하교를 해야 한다는 이야기였죠. 이제 그 예언의 때가 와버렸습니다.


"학원 뺑뺑이 하면 돼, 어쩔 수 없지." 많은 육아선배님으로부터 들었습니다. 어떤 학원이 어떻다는 팁도 들었습니다. 막연하게 각자의 일정을 마치고 저녁에 집에 모인, 이전까지와 같은 모습의 일상을 그려보았습니다. 그런데... 점점 '때'에 가까워질수록 아이가 학교 수업을 마치고 나올 수 있도록 해 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의 어린 시절에서 좋았던 기억, 예를 들면 집에서 빈둥거리거나 재미있는 책을 읽던 일, 비가 억수로 퍼붓고 바람이 많이 불던 날 집에 돌아와서 느꼈던 포근함과 안심, 자전거를 타고 동네를 돌아다니던 일은 모두 학교에서 집으로 올 수 있었기 때문에 할 수 있었던 거였거든요. 그런 기억들이 제가 힘내어 살아가게 하는 연료가 되어 주었어요.

우리 아이에게도 마음대로 놀고, 돌아다니고 쉴 자유를 주고 싶다! 그러려면 누군가 학교 밖에서 아이를 돌봐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세월이 하 수상하여 요즘은 여덟 살 아이가 혼자 집으로 오거나, 집에 있기 어렵습니다. 저희 집은 연로하신 부모님들이 먼 지방에 계시기 때문에 도움을 쉽게 청할 수도 없습니다. 가장 좋은 건 엄마나 아빠가 맞아주는 것인데, 낮에 일을 하고 있다 보니...


일을 하고 있다 보니. 제가 하는 일이란 어느 기업의 사업을 기획하고 개발하는 일입니다. 나름의 사명감과 재미를 느끼며 일할 때도 있었는데 안타깝게도 지금은 그렇지 못합니다. 여기에 대해서 쓰자면 따로 몇 페이지를 써야 할 것 같네요. 간단하게 줄이면, 저의 미래에 대해 고민하고 있던 즈음 회사의 경영 주체가 바뀌었는데, 이들은 구성원들의 비효율과 감정소모를 극대화시키는 놀라운 경영방침을 가진 집단이었죠. 이때부터 '무의미한 일'을 자주, 계속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일을 하고 있다 보니 저도 방향 없이 표류하는 가운데, 저의 시간과 에너지를 입에 올릴 가치도 없는 일들에 쓰게 되어 괴로웠습니다. 이 시간을 다른 가치 있는 일에, 우리 아이에게 쓰지 못하고 나는 지금 뭐 하는 거지? 하는 생각도 매일 했습니다. 그러다 일단 멈추기로 결심했습니다.


저의 휴직 기간이 시작되기 전엔 잠시 일이 뜸한 때였던 남편이 수고를 많이 했습니다. 준비물이나, 숙제, 학교 일정이 어떻게 되는지도 남편이 모두 잘 챙겨주었어요. 저도 할 수 있는 한 휴가를 내서 학교에 아이를 데리러 갔습니다. 덕분에 어찌어찌 학교를 마치고 놀이터에서 아이가 놀게 해 줄 수 있었습니다,

"이제 피아노 학원 갈 시간이야." 그네를 타고 있는 아이에게 가서 말했습니다. 사실, 우리 동네 아이들은 하고 싶은 게 많기 때문에 피아노며 태권도며 배우기 위한 학원을 자발적으로 한두 개씩은 다니고 있습니다. 부모님의 생각으로 더 배우는 것들도 많고요. 그러다 보니 학원 뺑뺑이를 하지 않으려던 결심이 무색하게 아이가 놀 시간은 학교를 마치고 학원 가기 전과 학원 마치고 저녁 먹기 전으로, 학원을 기준으로 정해지게 되었습니다. 흠흠.


"응 알았어!" 아이는 큰 소리로 대답하며 그네에서 뛰어내립니다. 우다다다다 뛰어가서는 하얗게 핀 민들레 씨를 꺾어 푸우 불어 날리고는 웃습니다. "엄마 가자!"

"엄마는 빨리 못 뛴다, 따라갈게." 아이 뒤에서 혼자 가슴 뭉클해하고 있습니다. 이 노랗게 빛나는 웃음을 내가 조금 더 볼 수 있다니, 내가 이 아이를 이렇게 신나게 해 줄 수 있다니. 저는 아주 큰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