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은 희망
|Hydrangea macrophylla , 水菊
|쌍떡잎식물 장미목 범의귀과의 낙엽관목
|물을 좋아한다.
아이를 학교에 보낸 후, 오전의 자유시간을 맞닥뜨렸습니다. 느긋하게 여유를 즐기든, 보람찬 어떤 일을 착착 하든 하면 좋았을 텐데. 머릿속에서 '하고 싶지만 꼭 먼저 하고 싶은 건 아닌' 여러 가지 일의 목록이 펼쳐졌습니다. 더 솔직하게 말하면 '이 일을 고르면 다른 더 중요한 일을 못 하는 게 아닐까 조바심이 나서 결국 이도저도 못 고르는' 일의 목록이었습니다. 쫓기어 살다가 자율적으로 시간을 보내는 법을 잊어버린 슬픈 직장인, 워킹맘입니다.
그렇게 며칠을 보내다가 문득, 어떤 결심도 없이 팔다리를 걷어붙이고 베란다 문을 열었습니다. 사실 베란다는 2,3년 정도 청소하지 않은 작은 정원입니다. 주인이 잘 돌보지 못해 말라붙은 꽃과 풀들, 주인이 돌봐주지 않아도 무서운 생명력으로 꿋꿋이 살아가는 녹색 전사들, 잡동사니들, 먼지와 벌레들. 처음에는 귀찮아서 청소하지 않았는데 이제는 건드리면 뭐가 나올지 무서워서 점점 더 묵어가는 중입니다. 온통 마른 잎들 투성이... 여기는 봄도 찾아오지 않은 건가요?
무관심하면서도 종종 '시간만 있으면' 저기를 청소하고 다시 싱그러운 공간으로 꾸미리라 생각했었습니다. 이제 시간이 있고, 오랫동안 이 순간을 기다려왔습니다. 어느 순간 몸이 무심하게 움직였습니다.
입을 일자로 꾹 다물고 화분을 하나씩 현관 앞에 깐 신문지 위로 옮깁니다. 심호흡을 크게 하고 흙먼지와 쓰레기를 쓸어 담습니다. 이맛살을 찌푸려가며 물뿌린 수세미로 바닥을 닦습니다. 휴, 작게 숨을 뱉어내며 물로 쓸어냅니다. 베란다에 드는 햇살과 습기가 힘든 일을 하고 개운한 사람의 기분을 제법 내줍니다. 드디어 깨끗해졌다!
밖으로 나온 화분들은 며칠간 하루에 한두 개씩 정리했습니다. 우아한 꽃을 갖고 싶어서 작약과 수국을 들였던 때가 생각납니다. 수국은 물을 좋아하니까 꼬박꼬박 물을 주었어야 했는데, 어쩌다 저 같은 사람이 들여와서 메마른 여름을 아슬아슬하게 보냈습니다. 꽃을 달고 있다 말라버렸고, 시든 뒤에는 새 봄이 와도 깨어나지 않았습니다. 흙 속 뿌리를 캐어 버립니다.
그리고 또 정말 하고 싶던 것... 다시 수국 두 그루를 샀습니다. 하나는 흔히 보는 푸른 꽃이 피어있고, 하나는 요즘 새로 나온 종인 듯한 별수국이라는 분홍색 꽃나무입니다. 빈 갈색 토분 하나씩에 심고, 특별히 현관 앞에 자리를 마련해 주었습니다. 정리하는 김에 현관 앞의 잡다한 물건들도 치우고, 늘 생각만 하던 예쁜 우산꽂이도 하나 가져다 놓았습니다. 이제 저희 집 현관에서는 예쁜 수국이 반겨줄 거예요.
오래 묵은 마른 잎을 걷어낸 베란다에도 반짝이는 초록이 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