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문 ( 영혼의 소리를 듣다 )

3. 입학

by 검정봉지

소능은 올라오는 내내 바빴다. 2차선 크기의 흙길을 따라 양쪽으로 계단식으로 서 있는 전각들은 기본이 2층이었다. 건물 사이 사이에 개나리가 화려하게 피어있어고 벛꽃과 목련이 꽃망울이 맺혀 필 준비를 하고 있었다.

“ 와아아··· ”

정신없이 건물과 풍경을 둘러보며 뒤쳐지던 소능은 결국 엄마 손에 이끌려 반쯤 질질 끌려가게 되었다.

절반쯤 올라오자 계단 위로 대웅전이 모습을 드러냈다. 대웅전 뒤로 커다랗게 자리한 부처상이 눈을 감고 자애로운 표정으로 대웅전으로 향하는 모든 이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거기까지 올라와서야 소능은 똑같은 곳으로 향하는 입학생들이 눈에 보였다. 대략 열댓명의 아이들이 보호자들과 함께 대웅전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 중 눈에 띄는 아이들이 두엇 있었는데 앞장서는 아이들의 뒤로 검은 옷으로 휘감은 사람들이 뒤따르고 있었다. 그러다 굵게 굽슬거리는 갈색 머리를 하나로 올려 묶은 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앗. 하는 생각과 함께 나는 거의 반사적으로 자유로운 한 손을 들어올려 흔들었다. 눈이 마주친 아이는 손을 흔드는 소능을 보고는 ‘ 왜 저래? ‘ 라는 표정을 지었다.

머쓱해진 소능은 눈길을 먼산으로 돌리며 잠자코 발길을 옮겼다. 대웅전으로 통하는 커다란 문 옆으로 넓은 천이 깔려있고 먼저 도착한 아이들이 가져온 짐가방들이 올라가 있었다. 그리고 그 옆으로 책상 하나와 백로 언니와 똑같은 옷, 비슷한 느낌을 가진 외모의 언니들이 도열해 있었다.

” 안녕하십니까. 여기 이름표를 드릴 테니 짐에 학생의 이름이 써 있지 않다면 잘 보이는 곳에 써서 한곳에 모아놓아 주시기 바랍니다. “

아빠가 이름표를 받아 이름이 적혀있지 않은 이불가방에 이름을 마저 적은 후, 짐을 한 곳에 정리해 내려놓고 오자 안내인이 다음 사항을 얘기했다.

” 입학식 이후 바로 이어지는 영로의식에는 보호자가 동행할 수 없고 영로의식 이후엔 바로 기숙사 배정이 이어질 예정이니 사진을 찎을 시간이 없습니다. 그러니 사진을 찍고 싶다면 입장 후 찍으시고 자리에 착석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보호자 분들의 좌석은 뒤쪽에 준비해 두었으며 학생의 좌석은 가나다 순이니 참고해주세요. ”

그리고는 나를 보며 책상위에 놓여있던 명함크기의 작은 종이를 집어들었다.

“ 학생의 이름이 어떻게 되죠? ”

“ 아. 유 소능 입니다! ”

내 이름을 듣고, 한 자 씩 끊어 정확한 이름을 확인한 안내인은 종이를 세로로 들고 궁서체로 멋들어지게 이름을 적어 내렸다. 적힌 이름이 맞는지 재확인 시킨 안내인이 가슴께에 종이를 가져다 대었다. 가만히 눈을 반쯤 감고 종이에 집중한 안내인의 입이 열리자, 이중으로 겹쳐져 울리는 듯한 목소리가 나왔다. 그래 그 때, 백로 언니가 틈의 야시장으로 가는 ’문‘ 을 열던 목소리랑 비슷했다.

“ [ 인 (印) ] ”

짧은 단어를 내뱉자 작은 불꽃이 튄 금색 종이가 타닥거리며 가장자리부터 타들어 가기 시작했다. 안내인이 손을 치웠을때는 종이에 적혀있던 ‘ 유 소능’ 세 글자만이 금박을 박아놓은 것 마냥 옷 위에 새겨져 있었다.

“ 우와..”

“어머나···..”

소능은 저고리를 주욱 아래로 잡아당겨 가슴께에서 빛나는 금색 글씨를 신기한듯 바라보았고 뒤에서 구경하던 엄마도 감탄사를 내뱉었다. 하지만 이번엔 신기함을 느낄 시간도 없었다. 바로 안내인이 의례 순서가 적힌 종이를 부모님에게 배부해 주며 입학식이 30분 이후에 시작될 예정이고 5분 전 착석해주길 바란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서둘러 대웅전 안뜰로 들어서자, 문 밖에 있던 안내인 언니들이 너무 인상깊어 못 느끼고 있었는데, 문 전체가 열려 안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대웅전은 여기까지 오며 보았던 건물들은 명함도 못 내밀 정도로 화려하고 웅장하게 장식되어 있었다.

대웅전 앞 하늘엔 붉은 연등이 홍색의 술로 장식되어 빽빽히 달려있었고 안뜰 가장 앞으론 4개의 기둥에 천장은 없고 뒤로 흰색 천이 드리워진 단상이 준비되어 있었다. 단상의 양 옆으론 청색 흰색 홍색의 휘장이 병풍처럼 걸려 있었는데 휘장은 2m 남짓한 크기도 크기였지만 전부 자수로 그려져서 그런가 화려했다. 엄청. 푸른 휘장은 야밤의 산수화를 배경으로 중앙에 올빼미가 노란 눈을 빛내고 있으며, 붉은 휘장의 상아색 배경엔 구름문양이 가득하며 구름을 뚫고 승천하는 용이 커다란 불꽃을 감싼 모양이 , 노란 휘장엔 푸른 물결 그리고 금색 잉어가 헤엄치고 그 중심에는 활짝 펼쳐진 커다란 연꽃이 있었다. 각각의 휘장은 테두리를 둘러 진한 남색, 금색, 은색의 술이 달려있어 이따끔 불어오는 바람에 살살 흔들리고 있었다.

“ 딸. 저기 깃발 멋지다 가서 서 볼래 ? 사진 얼른 찍고 자리에 앉자. ”

” 네엡~”

소능이 달려가고 사진을 찍으려고 하는데 핸드폰을 만지는 소능 아빠의 뒤로 어느 가족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 저기요~ ”

“예? ”

”안녕하세요~. 재영아 인사해야지? “

말을 건 것은 아이의 엄마로 보이는 사람이었다. 어머님의 뒤로 반쯤 가려서서 어색하게 꾸벅 인사하는 재영이라 불린 아이는 소능과 비슷한 키에 끝이 말려들어간 곱슬을 가진 새카만 단발머리를 하고 있었다. 재영이네 어머님은 가족이 함께 사진을 찍는게 좋지 않겠냐며 사진을 찍어드려도 되냐고 말을 이었다. 그에 소능의 엄마는 좋아하며 답했다.

“ 어머 감사해요. 그럼 부탁드립니다. 찍고 저희도 재영이네 찍어드릴게요! ”

그렇게 한참 서로 사진을 찍어주다보니 의례시작 5분전이니 자리에 착석해달라는 방송이 나왔다. 소능의 부모님은 그새 친해진 재영이네 부모님과 수다를 떨며 학부모를 위해 준비된 좌석으로 갔고 소능은 힐끗 옆에 남은 재영을 보다가 말을 걸었다.

“ 그··· 우리도 갈까? 자리는 가나다 순이래.“

” ··· 그래. “

어색하게 자리를 옮기는 시간동안 소능의 머리론 만감이 교차하고 있었다. 아까부터 너무 티가 나서 알아챈 거지만 부모님들이 떠나고 부터 재영이는 유독 눈동자가 많이 흔들리고 있었다. 사실 소능은 그래도 먼저 말도 걸고 다가가는 편인데 재영이가 너무, 너어무 긴장한 것이 눈에 보여 안쓰러울 정도라 같이 긴장하기 시작해 말수가 적어진 것이었다. 아 ··· 미안하다 친구야 울 엄마와 다르게 나는 이 상황을 어떻게 타개해야 할지 감이 안 온다···.하얗게 질려 긴장한 재영을 옆에 두고 속으로 엄마를 부르짖으며 소능은 앞부터 자리를 찾아나갔다.

‘ ···다..라마바.. 사···. 아, 찾았다! ‘

자리를 하나씩 살피며 뒤로 가던 소능은 자신의 이름표가 붙은 자리를 발견했다. 재영은 이씨라 소능의 옆옆 자리였는데, 제 자리를 찾은 소능은 앉기 전 재영이 앉은 곳을 살짝 바라보았다. 그나마 안면을 익힌 소능이 같이 앉는게 아니라는 걸 알자 더욱더 파리해지던 얼굴을 봤는데 그걸 어떻게 모른척하나. 다행이도 재영은 눈만 의례순서가 적힌 종이에 고정한 채 잘 앉아있었다. 고개를 들 생각은 없어 보였지만 그래도 마음이 놓인 소능은 의자 위에 놓인 이름표와 종이를 들고 자리에 앉았는데 갑자기 눈 앞으로 불쑥 손 하나가 들어왔다.

” 안녕? 나는 왕 윤이야. 왕이 성 이름은 윤. 외(外)자야. “

” 어..? 어. 나는 소능. 유 소능. “

소능의 바로 옆자리에서 내민 손의 주인은, 그 애였다. 소능이 어색하게 손을 흔들었을 때, ‘ 왜 저래 ’ 라는 표정을 지었던 애. 그 때 그 표정과는 너무 다른 모습에 어리둥절하며 손을 맞잡았다. 그 뒤로도 계속해서 학생들이 하나 둘 자리에 앉았다.

대웅전 앞에 마련된 단상에서 모든 학생들의 착석을 확인한 남자가 곧 단상의 오른쪽 아래에 서 있던 여성분을 모시고 올라와 가장 상석으로 안내했다. 여성이 자리하자 하나 둘 선생님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뒤이어 들어와 앉았다. 맨 처음 착석한 여성은 가장 화려한 의상을 하고 있었는데, 회색 당의에 정장바지 그 위로 짙은 자색 비단에 금실로 꽃과 학, 구름이 수놓아진 쓰개치마를 어깨에 걸쳤고 희게 샌 머리를 하나로 묶어 틀어올리고 봉황과 주황색 산호로 장식된 금비녀를 꽂았다. 비녀를 꽃은 머리채 위로 길다랗고 얇은 상아색의 비단 줄이 갈래갈래 늘어져 있었고 각 줄의 끝에는 진주가 몇개씩 매달려 있어 움직일때마다 스치는 옷소리와 함께 잘그락 거리는 소리를 내었다.

“ 안녕하십니까 귀빈 여러분 그리고 학생 여러분 저는 오늘 입학식 진행을 맡은 이 도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

소개를 마친 남자가 단상 옆으로 나와 가볍게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하자 좌중에서 박수가 나왔다.

“ 입학식에 앞서 전달사항이 있겠습니다. 사전에 이유가 전달되었겠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희 영문관은 학생 및 학부모분들을 학교로 직접 모시지 못함에 무척 아쉬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래서 학생들과 학교 행사에 관한 자료를 모아 일년에 한 번 사진집 ’운심생리’을 무료 배포하고 있습니다. 사진집은 각 댁의 자제분들이 겨울 방학을 맞아 집으로 가는 날 가지고 가게 되며, 학교의 행사와 1년 동안 자제분들의 사진들을 한눈에 보실 수 있습니다. “

한 템포 쉬고 좌중을 바라본 사회자는 이내 말을 이었다.

” 그러면 지금부터 영문관의 입학식을 거행하겠습니다. “

입학식은 기타 평범한 학교와 비슷하면서 달랐다. 먼저 개식사와 입학 허가 선언까진 비슷했으나 국민의례가 없었다 정확히는 하늘에 제를 올리는 것으로 대신한다고 했다. 안내 이후 단상 뒤 흰 천이 걷어지고 잘 차려진 제사상이 나왔다. 상의 제일 위쪽엔 소능은 아직 읽을 줄 모르는 어려운 한자들이 가득 적힌 글귀가 올려져 있었다.

“ 이어서 영문관 관주, 시무조 님의 헌정문이 있겠습니다. ”

아무래도 아까 그 화려한 여성이 관주, 즉 교장선생님의 위치인 모양이다. 우아하게 일어선 관주는 진행을 돕는 이도가 향에 불을 붙여 건네주는 것을 받아 앞으로 내밀고 고개를 숙여 간략히 절을 했다. 그리고 향로에 꽂아놓은 후 이도가 들고 있던 한지를 펼쳐들었다. 헌정문의 내용은 대략 ‘ 인간의 업을 거슬러 천지신명의 힘을 빌게 되는 이들로써 인의를 지키며 옳은 곳에 힘을 쓰겠노라 ‘는 문장이었다.

“ ···.. 하여 모월 모일 모시. 영문관 관주 시무조 바리가 하늘에 고합니다. ”

말을 마치자 천천히 관주를 중심으로 바람이 일어났고 그 가운데에서 관주가 종이를 향에 가까이 가져가 태웠다. 뜨겁지도 않은지 손바닥 위에서 완전히 재가 될 때까지 종이를 태운 관주는 일으킨 바람으로 재를 하늘로 올려보냈다. 의식을 마친 관주가 자리에 앉자 사회자 이도가 다음 순서를 진행했다.

“ 이어서, 신입생대표의 선서가 있겠습니다. 신입생 대표 ‘왕윤’ 앞으로. ”

네? 얘가요? 놀란 표정으로 옆을 돌아보자 일어나 나갈준비를 하는 왕윤과 눈이 마주쳤다. 상큼하게 웃어준 왕윤은 가벼운 걸음걸이로 앞으로 나갔다. 앞으로 나간 왕윤은 사회자의 지시에 따라 뒤를 돌아 족자를 펼쳐들었다.

“신입생 대표. 선서. ···..“

입학식은 눈 깜짝할 사이에 흘러갔다. 어느 새 폐식사까지 끝나고 부모님과의 작별 시간이 다가왔다. 여기저기 우는 아이들도 가끔 보였지만, 아이들은 이제 겨우 6학년을 졸업한 아이들로 앞으로 시작될 기숙사 생활에 대한 기대감이 더 컸기 때문에 사실상 울먹이는건 부모님들쪽이 더 했다.

“···딸···.. 아빠는 그래도 아무것도 모르는 세상에 딸만 보내는게 너무 걱정돼··· 그러니까 까짓 학교 다시가면 되지. 응? 이상하다 싶으면 다 때려치우고 집으로 와. 알겠지?”

두 손을 꼬옥 잡고 울먹거리며 말하는 아빠를 삐질 웃으며 쳐다봤다. 아니나 다를까 뒤에서 웃고 있던 엄마가 눈썹을 팔자로 만들며 냅다 아빠 등을 후려치셨다.

“ 오호호 인간도 참. 같이 뭐 하는 학교인지 봤으면서 쓸데없는 소릴 하고 있어. 딸. 아빠도 걱정해서 하는 소리긴 하지만···.. 진심으로 하는 말이야. 엄마 아빠는 언제든 여기에 있어. 네가 우리와 다른 사람이라 다른 세상에서 너를 위한 교육을 받게 하고 싶었던 거야. 그러니 네가 안 맞으면 언제든 돌아와도 좋으니 하고 싶은거 배우고 싶은거 마음껏 경험했으면 좋겠어. “

“··· 으잉. 엄마···.”

툭 터진 눈물에 엄마 품으로 푹 안겼다. 엄마 말을 듣기 전까지 나는 이제 이어질 영로의식과 기숙사를 기대하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에 들은 엄마의 진심은 감수성 풍부한 중학생을 울리기 충분···

“ 알립니다. 이제 영로의식이 이어질 예정이니 학생 여러분들은 다시 대웅전 안으로 들어와 주시기 바랍니다! ”

대웅전 문 바깥에서 안내를 맡던 이가 큰 소리로 외쳤다. 오랜시간 떨어져 있어야 하는게 슬프긴 하지만 이젠 정말로 부모님이랑 헤어질 시간이다. 잔뜩 기대한 얼굴을 사랑스럽게 바라보던 부모님이 말했다.

“ 잘 다녀오렴. 여름에 보자. ”

“ 다녀오겠습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