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입학
초등학교 6학년 진로를 위해 어느 중학교를 갈지 고민하던 우리 집에 눈가를 붉게 칠하고 피부는 백옥같이 희며 머리는 흑단처럼 까만 엄청 이쁜 언니가 방문했다. 키가 엄청 커서 막 문을 열었을 때 얼굴의 하관이 겨우 보이던 그 예쁜 언니는 정중히 인사를 한 후 부모님에게 붉은 비단으로 된 족자와 길이가 한 뼘 정도 되는 작은 곽을 전해주고는 연기처럼 사라졌다.
속세를 벗어난 느낌에 부모님은 당황하셨고 족자를 받았을 때는 몰카인가 싶어 황당했으며 받은 족자를 열었을 땐 빈 종이에 어이가 없었다고 했다.
그런데,
“ 엄마 한자도 읽을 줄 알았어? ”
부모님이 어이없던 이유는 일반인인 그들 눈에 족자의 내용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족자를 책상에 펼치고 이게 뭔지 아빠랑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고 계셨던 엄마는 어느새 어깨에 매달려 족자를 흥미롭게 지켜보던 내 말에 두 번 놀라셨다고도 하셨다. 부모님은 그제야 족자와 동봉되어 온 작은 곽을 열어보셨고 그 안에 들어있던 거북이 등껍질로 테를 만든 안경을 쓰고 나서야 입학 통지서의 내용을 볼 수 있었다고 했다.
안경을 쓰고 나서 일순간 멍하니 계셨던 두 분이 안경 너머 무엇을 보셨는진 모른다. 다만, 이후 칠일 밤낮을 내리 고민하던 부모님은 족자의 한 구석에 도장을 찍으셨고 부모님이 도장을 찍자 족자는 스스로 도르륵 말리더니 족자에 매달린 붉은 실이 알아서 매듭을 지었다. 부모님은 봉인된 족자를 주머니에 넣어 베란다에 있는 태극기 게양대에 걸어놓았고, 깊은 밤에 어느 순간 족자는 사라졌다. 다음 날 부모님은 나를 데리고 한자 학원부터 등록하셨다.
그렇게 겨울방학을 보내던 나는 입학을 2주 앞두고 우리 집에 찾아왔던 그 예쁜 언니를 다시 볼 수 있었다.
“ 백로라고 불러주세요.”
자신을 백로라고 소개한 그 언니는 일반인인 부모님은 어려울 수 있는 나의 입학 준비를 도우러 왔다고 했다. 그날 밤 우리는 어딘가로 향했다. 목적지에 도착하자 백로 언니는 부모님은 차에 계시라 하고 나만을 데리고 차에서 내렸다. 언니가 나를 데리고 간 곳은 산속의 조용한 절이었다. 어둠이 짙게 내린 절의 전각들을 그대로 지나쳐 가장 안쪽의 문으로 곧장 걸어간 언니는 부적을 하나 꺼내 들었고 나를 내려보며 부드럽게 웃었다.
“ 놀라지 말아요.”
화륵!!
부적이 푸른 불길에 휩싸여 불타올랐다. 완전히 재가 된 부적은 신기하게도 공중에서 맴을 돌며 땅으로 떨어지지 않았다. 언니는 이어서 오른손의 검지와 중지로 공중에 크게 원을 그리더니 두 손을 합장한 후 입을 열었다.
” 개문 ( 開門 ) “
푸르게 빛나던 재들이 문틈 사이로 스며들더니 밝게 빛을 내었다. 분명 그 문은 건너편에 아무것도 없는 지나가는 문이었고 높이도 언니 키만 한, 크다고 할 수 없던 문이었는데도 덜컹! 하며 육중한 소리를 내며 열렸다. 문이 열리는 순간에 나는 그 잠깐 사이 흘러나왔던 오색 연기와 빛이 터져 나오는 소리밖에 듣지 못했다. 왜냐면 문이 열리는 순간 백로 언니에 의해 눈이 가려졌기 때문이다. 공간이 스쳐가는 소리와 살짝 속이 울렁였을 때, 언니가 손을 내리며 팔을 펼쳐보였다.
” 소개할게요. 틈의 야시장 ”
나는 아직도 그 순간을 잊지 못한다.
“ ‘백시‘에요. 아가씨가 학교에서 쓸 물건들 및 교복은 모두 이곳에서 살 수 있고, 앞으로도 자주 애용하게 될 거랍니다.”
언니는 이후에도 백시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줬지만, 솔직히 기억나진 않는다. 백시의 대로엔 한옥마을에서나 볼 법한 목조건물들이 대로 양쪽으로 길을 가득 메우고 건물들엔 청사초롱과 붉은 연등이 매달려 길을 밝혔으며 길은 발 디딜 틈 없이 바삐 오가는 괴력난신으로 가득했다.
언니와 비슷한 느낌을 풍기는 아름다운 여인들은 물론, 곰방대를 뻐끔뻐끔 부는 턱수염이 험상궂게 난 장비 같은 몰골의 사람들, 기와집 지붕을 훌쩍 날아다니는 사람들과 검은 양복을 입고 어깨엔 청색 도포를 걸친 뱀 상의 남자 등. 온통 신기한 것 투성이었다.
건물 앞의 좌판엔 문구점이나 마트에선 보지 못할 것들을 팔았는데 수십 개의 사각형으로 나눠진 좌판엔 각종 마른풀들이 가득 담겨 있었고, 도시에서 볼 법한 복식을 입은 사람들도 왕왕 보였다.
정신없이 구경하는 내 뒤에서 언니는 조용히 웃으며 따라왔고 쉴 새 없이 물어보는 질문에 조곤조곤 대답해 주었다. 마음껏 구경하도록 내버려 두면서도 언니는 내 손을 꼭 잡고 다니며 경면주사, 문방사우 등 학교에서 쓸 물건들을 샀다. 몇 군데 들렸다고 벌써 짐이 한가득이었다.
” 이제 다 산거예요? “
” 아뇨 마지막으로 한 곳을 더 들려야 해요. 가장 중요한 준비물이죠. “
마지막으로 향한 곳은 붉은 불꽃이 튀고 큰 망치 소리가 울리는 대장간이었다. 건물 바깥에는 온갖 날붙이들이 시퍼런 날을 뽐내며 전시되어 있었다.
”어···.. 저기에 내가 필요한 게 있어요? “
” 그럼요. 아가씨 같은 도사나 술사가 될 이들에게 없어선 안 될 물건이랍니다. “
문을 열고 들어간 언니는 문 옆에 매달린 풍등을 흔들었다. 그 소리에 대장간 안쪽에서 인기척이 났다.
“ 거 누구요.. 어!”
“ 안녕하시오. 도장.”
” 아이고 이게 누구야! 벌써 새로운 새싹들이 들어올 시기던가? “
안쪽 방에서 장막을 치우고 나온 남자는 검댕에 꼬질한 모양새를 하고 있었다. 안경을 쓰고 길게 기른 머리를 아무렇게나 틀어 올려 비녀로 고정시키고 한복 바지에 검정티를 대충 걸치고 있었다.
백로 언니와 아는 사이였던 듯 반가운 인사를 나눈 남자는 대장간 구석 의자에 아무렇게 걸쳐 있던 한복 상의를 주워 입고는 검대이 묻은 손을 앞섶에 대충 슥슥 닦으며 내게 손을 내밀었다.
” 반갑네. 나는 장도를 만드는 도장인 김 무열이라고 하네. 인간이지. “
새로운 어른의 등장에 아이는 이미 백로의 다리 뒤에 숨어서 눈을 데루룩 굴리며 눈치를 보던 중이었다. 내밀어진 손과 백로를 번갈아 쳐다보던 아이는 자신을 내려다보며 괜찮다는 듯 싱긋 웃는 그녀를 보곤 쭈뼛거리며 앞으로 나와 내밀어진 손을 잡았다.
“ 안녕하세요. 유 소능이라고 합니다..”
“ 그래. 그래. 그럼 다른 거 말고 바로 보러 가지. “
도장은 휘적이며 악수한 손을 가볍게 흔든 후, 허리를 피며 앞장섰다.
” 우리도 갈까요?”
백로언니의 손을 붙잡고 도장을 따라간 곳엔 붉은 융단 위에 수많은 장도들이 올려져 있었다.
“ 아무래도 설명이 아직인 모양인데 내가 간단히 설명해 주지. 장도는 일단 칼일세. 하지만 동시에 칼이 아니야. 백로 선생의 새로운 장도 역시 이 내가 만들었는데 괜찮다면 한번 보여 주실 수 있나? “
이에 백로 언니는 아무 말 없이 소매 안쪽에서 백옥색 민무늬에 금장으로 장식이 된 손바닥 만한 길이의 을자 장도를 꺼내 들었다. 장도의 금장 부분을 살짝 밀며 도를 꺼내자 순식간에 도신이 길어지며 길고 날씬한 검으로 변했다. 장도의 검집 역시 길어지며 긴 검의 검집으로 변했다.
”우와! 이게 이렇게 변해요? “
”아니. “
”예? “
“정확히는, 어떤 모양으로 변할지 만든 사람도 몰라. 왜냐면 다양한 형태 중에 하나로 변하거든. 검은 가장 보편적인 형태 중 하나일 뿐이지. “
이어진 도장의 설명으론,··· 사실 설명보단 벙어리가 어쩌고 첨자니 을자니 팔각이니 하며 자신이 얼마나 예술적인지 일장연설을 했다. 한창 설명하던 도장은 흐린 눈으로 자신을 보는 아이의 표정을 보더니 입을 다물었다.
“음··· 그러지 말고 일단 골라보자꾸나. 생일이 어떻게 되지? ”
“ 저··· 12년 7월 16일···”
“ 아이고 12년생이 걸어 다니네.”
소능의 사주를 들은 도장은 진열대와 서랍장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수가 어쩌니 토가 어쩌니 중얼거리며 3개 정도의 장도를 가지고 나왔다. 그가 가지고 나온 것은 벼락 맞은 대추나무인 벽조목, 새카만 흑단목, 소뿔에 그림을 그린 화각으로 만든 장도 세 가지였다.
대충 내 사주에 토와 수의 기운이 있으니. 그 사이를 받쳐줄 토대가 중요하다나···.. 어쨌든 내 앞에 내려놔진 장도 세 개를 멀뚱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자,
“ 뭐 하니 얼른 골라보렴.”
“······? 이쁜 거 고르면 돼요?”
“뭐··· 그래도 되긴 하는데···. 일단 이걸 한번 봐 보렴.”
도장은 일단 새카만 흑단목으로 만들고 자개로 장식한 팔각장도를 들어 건네주었다. 장도를 열어보려던 나는 다시 물음표를 띄울 수밖에 없었다.
“··· 이거 안 열려요. ”
“음···이 계열은 아닌가 보네. 그럼······ ”
잠깐 고민하던 도장은 팔각장도 하나가 안 열린다고 놓인 세 개 장도를 전부 가져가 구석에 밀어놓더니, 안쪽으로 들어가 뭔가를 꺼내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상자가 무너져 내리는 소리가 몇 번 들리더니 연신 콜록거리며 도장이 검은 곽 하나를 들고 나왔다. 도장은 곽 위에 뽀얗게 올려진 먼지를 소매로 대충 슥슥 닦더니 곽을 열어 전신이 뿌연 한지색의 원통형 장도 하나를 꺼냈다. 중간과 위아래가 백옥과 금테로 장식되어 있었고 백옥 부분엔 연꽃이 가득 음각되어 있는 게 한눈에 보기에도 퍽 이뻤다.
” 그건···.. “
도장이 가지고 나온 장도를 아는 건지 여태껏 가만히 있던 백로 언니가 입을 열었다. 도장은 어깨를 으쓱하더니 꺼낸 장도의 손잡이 부분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 뭐 ··· 다른 의미가 있는 건 아니네. 보통은 기운에 맞춰 꺼내주면 거기서 고르는데 그게 안 맞는 애들에게 한 번씩 꺼내보는 거야. 혹시나 하는 마음이지. “
장도를 이리저리 확인하며 말을 마친 도장은 다시 곽에 넣어 아이에게 이번엔 이걸 한 번 들어보라며 내밀었다.
” 자. 이건 호랑이의 뼈로 만든 호골 장도란다. 백옥으로 장식해 퍽 화려한 아이지. “
소능은 홀린 듯한 표정으로 장도를 집어 들었고, 팔각장도를 열 때는 전혀 열리지 않던 것과 다르게 검은 부드럽게 뽑혀 나왔다.
” ··· 와······“
감탄이 절로 나오는 자태였다. 검신에 호랑이 무늬가 각인되어 있었고 하얀 검신과 희게 빛나는 장도의 손잡이가 하나가 되어 반짝거렸다. 그러다 순간 정신을 차린 듯한 소능이 고개를 휙 돌려 도장을 바라보았다.
” 그런데 아저씨! “
”··· 아저···. “
” 제건 왜 백로 언니 것처럼 멋지게 안 바뀌어요? “
아저씨란 소리에 시무룩한 표정의 도장이 입을 열었다.
” 그건 네가 아직 영로가 열리지 않아서 그러네. 입학하면 영로를 확실하게 다지는 의식을 할 거고 장도의 형태는 그때 알 수 있을 거야. “
소능은 그 소리를 듣고 고개를 주억거리며 장도를 조심스럽게 갈무리해 닫았다. 그 모든 걸 조용히 지켜보던 백로는 검을 갈무리한 소능에게 손을 내밀었다. 소능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백로의 손 위에 자기 손을 올려놨다.
“ 장도를.”
“ 아!···. 여기요 헤헤··· 저는 손 달라는 줄 알았어요. ”
얼굴이 빨개진 소능은 얼른 손을 회수하고 장도를 백로에게 건넸다. 백로는 아무런 의심도 안 하고 장도를 건네는 소능을 잠시 쳐다보더니. 품 속에서 무언가를 꺼내며 말했다.
“ 장도는 무기이자, 영혼의 반려라고 보면 돼요. 술법에 익숙해진다면 장도라는 매개가 없이도 술법을 부릴 수 있겠지만 보통 인간은 매개체가 없인 자연이나 신의 힘을 감당하기 힘드니까요. ”
“ 그렇구나···.”
백로는 품에서 꺼낸 짙은 녹색의 노리개를 장식하며 마저 말했다.
“ 이렇게 달란다고 아무에게 주면 안 된다는 의미입니다. ”
“ ···. 아···죄송합니다. ”
백로는 매듭을 지은 후 노리개의 술을 정리한 뒤 소능에게 다시 건넸다.
“ 사과하지 말아요. 그러면 안 된다는 걸 알려주기 위함이었으니까요. 이 노리개는 앞으로 무운을 빌며 내가 주는 선물이에요. 오늘은 이걸로 준비를 다 마쳤으니 이제 돌아갈까요?”
“ 네!! 도장 아저씨도 감사합니다. “
다시 한번 아저씨란 소리에 딴지를 걸려던 무열은 90도로 인사를 하곤 뒤도 안 돌아보고 대장간을 나가는 소능을 허탈하게 쳐다보기만 했을 뿐이었다. 가볍게 목례를 한 백로까지 뒤따라 나가자 한숨을 푹 쉰 무열은 ‘아저씨라니···.’라고 중얼거리며 구석에 있는 의자에 아무렇게 주저앉았다. 그리곤 소능이 나간 곳을 쳐다보다 고개를 뒤로 젖혀 등받이에 기대었다.
” 그나저나.. 호골 장도가 주인을 찾은 게······. 몇 년 만이지······ “
12년 생. 흑룡 띠. 토의 기운이 가득한 여아.
······.
잠깐 고민을 하던 무열은 이내 고개를 휘적휘적 젓고는 일어났다. 그냥 깐깐했던 장도의 변덕이라고 생각하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