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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찾는 마음 Jul 19. 2022

나의 시련에 의미가 있었을까?


출처 : bertvthul from Pixabay


영화 겟아웃을 보신 적이 있는가? 나는 이 영화를 참 재미있게 봤는데 필 조던이라는 코미디언 출신 흑인 감독의 작품으로서 저예산의 작품이지만 미국과 우리나라에서 크게 히트한 영화이다. 흑인인 주인공은 멋진 백인 여자친구를 따라 여자 친구 부모님을 만나러 가지만 거기서 예상치 못한 위기를 만난다. 더 이상의 내용은 모두 스포일러가 될 것 같아서 말씀드리기 어렵지만 필 조던 감독의 다음 작품인 어스와 마찬가지로 일관되게 인간의 정체성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나는 누구인가? 몸이 주인인가? 마음이 주인인가? 



나에게는 항상 나란 무엇인가, 누구인가 하는 질문은 평생을 가지고 갈 질문이다. 원래 나는 자신의 정체성을 따지는 철학적이거나 영적인 사람은 아니었다. 나를 영적 추구를 하게 만든 건 나의 고통이었다. 어린 시절, 그러니까 정확히는 중학교 2학년 정도부터 깊이 잠을 못 드는 불면증을 겪으면서 나의 극심한 고통이 시작되었다. 제대로 잠을 못 자는 날이 이어지다 보니 피로는 점점 쌓였고 체력이 떨어지며 몸의 상태는 더욱더 악화되어갔다. 



학교 수업 사이의 쉬는 시간마다 나는 기절하듯이 책상에 엎드려 잤고 결국에는 수업 시간에도 선생님의 시선을 피해 졸기 일쑤였다. 항상 극심한 피로가 지속되어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 자체가 힘겨웠고 법대를 진학하기는 했지만 사법고시 준비를 포기하게 되었다. 젊은 시절의 꿈을 내려놓으며  고향에서 요양하는 동안 빈번히 나붙던 고향 선후배의 사법고시 합격 플래카드는 나의 마음을 절망의 나락으로 빠뜨리기 충분했다. 삶의 바닥을 헤매고 있던 나는 그들을 축하해 줄 아량보다는 그들과 비교되는 자신의 비극에 더 초점을 맞추게 되었다. 



대학교를 3년간 휴학하고 병의 치료를 도모했지만 몸은 도무지 회복할 기미가 없었다. 더욱 답답한 것은 우리나라의 나름 유명한 의사를 찾아가도 병의 원인을 제대로 모르는 것이었다. 결국 CFS(만성피로 증후군)이라는 애매한 진단명만 받았는데 이 증후군이라는 것이 병의 원인도 모르고 치료법도 몰라서 비슷한 증상들을 모아서 이름 붙인 것이다. 6개월 이상 계속되며 일상생활을 지속하기 불가능할 정도의 피로를 특징으로 하는 증상의 집합을 부르는 명칭일 뿐이었다. 



원인도 모르고 치료법도 모른다 하니 전국에 의사와 치료법을 찾아 이것저것 시도해 보다 시간과 돈만 낭비했다. 결국 회복은 의사의 도움이 아니라 내 스스로의 힘으로 회복하게 되었다. 이때 현대 의학의 불완전함과 한계를 명확히 느꼈고 내 몸은 결국 내가 돌봐야 한다는 것도 뼈져리게 느꼈다. 



이때 나는 내 몸에 너무나 집착했던 것 같다. 건강을 잃으니 제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한창 젊은 나이에 꿈을 위해 노력을 하거나 도전도 하지 못했다. 끓는 피로 연애도 제대로 해보지 못했고 '왜 하필이면 내가 이런 병에 걸리나'라며 세상에 대한 원망과 한탄으로 내 삶을 소모했다. 내 몸을 위해서 온갖 운동도 해보고 이런저런 약도 먹어보았지만 효과를 보지 못했다. 



그러다 오랜 투병으로 강인하다고 믿었던 마음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중학교 때부터 10년 이상을 투병하면서도 미래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았는데 너무 오랫동안 진전이 없으니 평생 이렇게 살아야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이 갑자기 정신을 잠식한 것이다. 마음은 한 번 무너지기 시작하니 걷잡을 수 없었다. 불안함이 온 정신을 장악하고 우울증과 불면으로 집 밖을 제대로 나가지 못한 적도 있었다. 



내가 본격적으로 회복하기 시작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몸의 회복을 내려놓고 만신창이가 된 내 마음을 돌보면서이다. 마음수련을 하고 명상을 하며 마음을 돌아보고 나서야 몸이 회복되기 시작했다. 이는 몸과 마음이 다르지 않음을 의미했다. 



마음이 무너지기 전까지는 나는 철저히 냉철한 이성주의자였고 현실주의자였다. 인생에서 행복하기 위해서는 물질적 성공이 우선이었고 삶은 즐거워야 했다. 그래서 나는 꽤 공부를 잘한 편이라 적당히 전문직으로 성공하여 인생을 즐겁게 살고 싶었다. 정신적 가치나 영적인 추구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쾌락주의자에 가까웠다고나 할까? 인생은 즐겁고 재미있으면 되지 너무 심각하게 살 것 없다는 주의였다. 



그러나 돌보고 단련하지 않은 마음은 연약하기 짝이 없었다. 부서지기 시작하니 유리창 깨어지듯이 와장창 박살 나고 세상이 두렵기 시작했다. 마음수련을 하고 명상을 하며 부질없는 욕망을 내려놓고 잘남을 내려놓으며 마음을 정화해 나갔다. 내 안에 어린 시절부터 쌓여 있던 수많은 트라우마를 확인하고 하나씩 치유하기 위해 노력했다. 



다양한 계층과 직업의 사람들을 만나며 나름 명문고 우등생과 명문 법대 장학생 출신의 절어 있던 우월의식이 무너지며 우월감과 열등감이 같다는 것을 깨달았다. 같이 수련하는 사람들과 대가를 바라지 않고 농사를 지으며 자연에서 흙과 뒹굴고 마음 없이 노동을 하며 땀으로 내 안의 정신적 불순물들을 씻어내었다. 그러면서 사람들과 자연으로부터 위로받고 치유받으며 나는 회복되어 갔던 것이다. 



온통 내 몸뚱아리에 매어 있던 의식이 몸에서 점점 멀어지기 시작했다. 오직 내가 건강만 하면 더 바랄 게 없다고 생각했던 적도 있고. 내가 아프지만 않았으면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할 텐데 하는 아쉬움과 한탄으로 피해의식에 젖을 때도 있었지만 그 모든 부정성이 시간이 지나며 치유가 되어갔다. 



물론 내가 원래 부정적인 사람은 아니었다. 하지만 투병으로 인한 오랜 좌절은 나를 매우 부정적인 사람으로 만들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마음을 제대로 돌보지 않아 건강의 회복도 느렸고 내 몸에 너무 집착해서 오히려 회복이 느려진 면도 있는 것 같다. 정작 중요한 내 마음을 흘러가도록 내버려 두었다가 마음이 무너지니 그 공포는 건강을 잃는 것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이제는 몸도 중요하지만 마음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확실히 깨달았다. 물론 건강한 몸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는 말도 틀린 말은 아니지만 건강한 몸에 썩은 정신이 깃든 사람도 많이 보아왔다. 우리 현대인들은 우리의 몸이 자신이라는 생각이 강한 것 같다. 그래서 몸이 고생하지 말아야 하고 몸이 편하고 쾌적한 삶을 최고로 친다. 



하지만 자신의 행복을 결정하는 것은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누구보다도 건강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지만 지옥 같은 마음에 건강만으로 행복할 수 없고 마음이 무너지면 결국 건강도 무너지게 마련이다. 건강한 몸은 분명 마음에 긍정적으로 작용하지만 그렇다고 마음을 돌볼 필요가 없는 것은 아니다.



많은 사람이 몸과 마음이 하나라는 것을 깨닫고 있다. 그러나 몸 만큼 자신의 마음에 신경을 쓰고 살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나라는 사람을 이루는 몸의 건강에도 빈틈 없이 신경을 써야 하고 자신의 마음도 잘 관리해 주어야 한다. 되는대로 흘러가다 보면 다시 수습하기가 너무 힘들거나 오래 걸릴 수 있다. 내 경우가 그랬다. 



나는 하늘이 나에게 이 삶에서 물질과 쾌락을 넘어 더 소중한 것이 있음을 깨닫게 해주기 위해서 나에게 이런 시련을 주셨다고 생각한다. 건강을 되찾은 지금 아직도 내가 완전히 행복하지 못하다면 아직 내 마음의 결핍을 치료해야 하는 숙제가 남아있는 것이다. 어찌 보면 평범하지 않은 오랜 고난을 겪었지만 완전히 평범한 인생이 이 세상 어디에 있을까?



나는 모두의 인생이 영적 깨달음을 추구하는 여정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이 그것을 깨닫든 아니든. 나는 좀 힘든 방식으로 그걸 깨달았지만 기쁜 마음으로 이 길을 걸어가려 한다. 하느님, 하나님 또는 하늘이시여 이제 제가 길을 잘 찾아갈 테니 저를 도와주소서. 그리고 같이 길을 가며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도와줄 수 있는 능력과 아량을 주소서. 그들을 사랑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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