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 만든 악기 중 단연 가장 아름다운 악기는 인간의 목소리다. 그래서 음악에서 보컬이 빠지면 아무래도 밋밋하게 들릴 수밖에 없다. 그러나 보컬이 빠진 자리를 아름다운 선율과 빈틈없는 연주로 꽉 채우는 명곡들이 있다. 오히려 보컬이 들어가면 그 특유의 분위기가 사라져 버릴 것 같다. 많은 연주곡들 사이에도 특히 낭만과 우수에 찬 아름다운 선율을 들려주는 명곡들을 엄선해서 여러분께 소개하려 한다.
첫 곡은 세계 3대 기타리스트로 꼽혔던 제프 벡(Jeff Beck)의 'Cause we've ended as lovers(우리는 연인으로 헤어졌기 때문에)'이다. 원래는 스티비 원더의 곡으로 제프 벡은 때로는 구슬프게, 때로는 날카롭게 연주를 이어간다. 세계적인 기타리스트의 화려한 연주 스킬은 곡의 흐름을 방해하지 않으며 보컬이 있는 곡 못지않게 마음을 후벼판다. 비 오는 밤에 아무도 없는 거리를 홀로 걷는 것 같은 쓸쓸함을 느끼게 하는 이 매력적인 곡은 하루를 마무리하며 조용히 소파에 앉아 와인과 함께 들으시면 만족스러운 휴식을 여러분께 선사할 것이다. 아니면 지나가버린 사랑이 떠올라 가슴이 아려올지도..
다음 곡은 류이치 사카모토의 'Merry Christmas Mr. Lawrence(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로렌스). 원래는 동명의 영화 주제곡이다. 영화의 원곡은 일렉트릭 사운드를 들려주는데 이번 곡은 많은 악기가 필요 없이 피아노 한 대로 연주된 버전이다.
숨 막힐 듯한 고요함 속에 흐르는 동양풍의 절묘한 인트로. 그의 부서질 듯 가냘프지만 또한 섬세하고도 절제된 감성은 일본의 다도나 정원에서처럼 극도의 정제미를 느끼게 한다. 한 음 한 음 어느 것 하나 허투루 선택하지 않은 이 장인의 음악은 높은 경지에 이른 현자처럼 화려한 악기 편성이 없이 단지 피아노의 몇 개의 음을 가지고서도 청중의 풍성한 감정을 이끌어 낸다. 그의 음악의 깊은 서정성에 잠겨 보시기 바란다.
다음 곡은 미국의 전설적인 블루스 기타리스트 로이 부캐넌(Roy Buchanan)의 'The Massiah will come again(메시아는 다시 올 것이다).' 레코드 사의 상업적 성공에 대한 강요와 아내와의 불화에 로이는 파멸로 치닫게 되고 유치장에서 목을 매어 그 생애를 마감한다. 첫 곡으로 소개한 'Cause we've ended as lovers'는 제프 벡이 로이 뷰캐넌에게 헌정한 곡이라 한다.
이 명곡은 기타의 한 음 한 음이 폐부를 찌르며 가슴 깊이 박힌다. 기타리스트의 깊은 슬픔과 메시아를 기다리는 간절한 희망이 교차하는 진한 감동의 연주는 거장의 면모를 느끼게 한다. 필자에게 블루스 음악의 매력을 깊이 각인시킨 이 곡을 강력 추천한다. 부작용으로 갑자기 술 한잔하고 싶어질 수도 있다.
다음은 라틴 사운드의 진수를 들려주는 기타 연주곡 산타나(Santana)의 'Samba Pa Ti(삼바 파티)'이다. 이 곡의 연주자인 카를로스 산타나가 멕시코 출신이라 그런지 그의 곡들은 남미의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이 곡을 들을 때마다 필자는 붉은 저녁 놀이 찬란하게 지는 남미의 멋진 어느 해변에서 친한 사람들과 파티를 여는 기분에 휩싸인다. 참 낭만적인 곡이 아닐 수 없다. 언젠가 꼭 남미의 멋진 해변에서 지인들과 파티를 열며 이 곡을 플레이할 것이다.
보너스로 우리나라 사람들이 매우 좋아하는 산타나의 또 다른 명곡 'Europa(유로파)'도 같이 링크한다.
다음 곡은 영국 밴드 캐멀(Camel)의 'Stationary Traveller(움직이지 않는 여행자)'. 모순적인 제목과 앨범 재킷의 고독한 여행자처럼 보이는 모델의 사진은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이 음악을 들을 때마다 먼 이국 땅에서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는 여행자가 된 느낌을 받는다. 고독하지만 나름의 운치가 있고 정착할 수 없는 운명을 받아들이며 평생을 떠돌아다니는 방랑자. 때로는 정처없이 떠나는 방랑자가 되고 싶을 때가 있다. 이 음악을 들으면 간접적이나마 그런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장기간의 해외여행을 하실 때 이 음악을 들어보시라. 끝없이 이어지는 길 위에서의 여행자의 감성에 푹 빠지실 수 있을 것이다.
(아래 유튜브 링크의 정지 화면이 앨범 재킷 사진이다)
마지막 곡으로 언제 들어도 좋은 히사이시 조의 '인생의 회전목마'. 유명한 스튜디오 지브리의 애니메이션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메인 테마이다. 나에게는 낭만적인 연주곡이라고 하면 첫 번째로 떠오르는 곡이다. 왈츠풍의 쿵짝짝, 쿵짝짝하는 박자와 함께 유럽의 낭만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애니메이션의 배경도 마법과 과학이 공존하는 19세기 유럽으로 설정되어 있어 의도적으로 유럽의 왈츠곡 같은 분위기를 내려 한 듯하다.
나는 지브리의 수장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애니메이션을 매우 좋아하는데 '하울의 움직이는 성'은 그의 작품들 중에 그렇게 인상적인 작품은 아니었다. 그러나 메인 테마에 대한 압도적인 선호로 이 애니메이션 제목은 잘 잊히지 않는다. 이 작품에도 졸지에 마녀에 의해 노파로 변하는 마법에 걸린 소녀 소피가 자신의 정체성을 되찾기 위해 모험의 여행을 떠난다. 어딘가로 떠나는 여행의 설렘과 낭만이 음악에서 풍겨 나온다.
보컬이 빠진 현대의 연주곡들도 깊은 감동을 주는 곡들이 많다. 또 다른 명곡들은 다음 기회를 기약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