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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찾는 마음 Jul 30. 2022

추억의 홍콩 영화들


오늘 처음으로 인천에 있는 차이나타운을 지인들과 아내와 함께 방문했다. 차이나타운은 묘하게 이국적인 분위기를 풍겼다. 화려한 빨간색의 중국풍 건물과 교토에서 본 일본식 건물들도 즐비했다. 당연히 중국요리점과 중국식 간식을 파는 가게도 거리 주위로 가득했다. 오래된 건물도 많고 특이한 디자인의 카페나 식당도 보였다. 차이나타운은 어떻게 보면 무국적적이고 시간을 초월한 듯한 분위기를 풍겼다. 덕분에 중고등학교 시절 빠져들었던 홍콩 영화들이 생각났다.


성룡


어렸던 초등학교와 중학교 시절의 홍콩 영화의 지존은 성룡이었다. 온갖 묘기와 곡예에 가까운 무술과 액션 장면을 보여주었지만 영화 내내 친구들과의 우정과 유머를 잃지 않는 점도 좋았다. 착한 사람들이 유쾌하게 악당을 물리치는 성룡의 액션 판타지는 극장을 떠나서도 명절마다 TV를 통해 다시 찾아왔다. 요즈음 성룡은 친공산당적인 행보를 보이면서 많은 사람들의 실망을 불러일으켰지만 각자의 사정이 있는 것이니 중국 공산당이 지배하는 홍콩에서 공산당의 심기를 거스르려고 하지 않는 그의 행동도 이해가 간다. 



이소룡


그러나 어느 정도 머리가 굵어지고는 성룡의 액션이 시시해 보이기 시작했다. 그 무렵 성룡보다 더 오래된 중국 무술 영화의 스타 이소룡이 눈에 들어왔다. 책받침에서 보여준 그의 선 굵은 얼굴과 미세하게 갈라진 상체의 잔근육은 오랜 기간 갈고닦은 고수의 면모를 짐작게 했다. 그리고 실제 그의 영화를 봤을 때 호쾌하고 빠른, 엄청난 위력을 보여주는 그의 액션은 나를 포함한 한국의 수많은 청소년들을 전율시켰다. 



성룡처럼 때로는 얻어맞고 때로는 진탕 고생하는 생활밀착형 영웅이라기 보다 상대를 실력으로 압도하는 절대적 위력의 영웅은 훨씬 더 매력적이었다. 성룡의 액션이 짜고 치는 마당극처럼 여겨졌다면 이소룡의 액션은 너무 현실적인 느낌이어서 이소룡의 발차기에 나가떨어지는 상대 배우가 때로는 걱정될 정도였다. 이소룡이 보여준 불세출의 카리스마는 앞으로 어떤 액션배우도 보여주기 힘들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의 무술 스타일은 지금 보아도 촌스럽기는커녕 타격의 쾌감을 제대로 보여주는 세련됨과 시원함이 있다. 서양의 액션배우 중 제이슨 스타뎀이 이소룡과 비슷한 절대적 강함의 아우라를 풍기나 실제 무술의 고수인 이소룡과 비교하여 기량의 차이가 확연한 아쉬움이 있다. 이소룡은 앞으로도 대체불가의 액션배우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천재는 요절한다고 했나? 이소룡도 요절하지 않았다면 얼마나 많은 액션 명작을 남겼을까? 이소룡 같은 불세출의 액션배우가 다시 탄생하길 기원한다. 



왕조현과 장국영


그리고 중학생 시절 소년의 가슴을 설레게 했던 '천녀유혼'. 동양의 스필버그 서극이 제작하고 정소동이 감독했다. 중학생 시절 어느 날 학교에 가니 아이들이 온통 왕조현 이야기를 하였다. 영화를 아직 보지 않았던 나는 왕조현이 누군지 너무나 궁금해서 학교를 마치고 극장으로 달려가지 않을 수 없었다. 실제 거대한 스크린으로 마주한 왕조현은... 정말 아름다웠다. 사실 그녀의 아름다움이 보는 순간 처음부터 어필했다기 보다 영화 속 그녀의 가슴 아린 슬픈 사랑의 이야기가 그녀를 더욱 아름답게 보이게 했다. 그녀를 보호해 주고 싶다는 마음이 더욱 그녀가 매력적으로 보이게 하는 원인이 된 것 같다. 그 시절 왕조현의 상대역이었던 장국영의 풋풋함은 충분히 느낄 수 있었으나 대단한 미남이라는 생각보다는 나약한 샌님처럼 보였다. 이 역시 영화가 가진 스토리의 힘이리라. 어쨌든 한동안 나는 왕조현의 사진이 든 책받침을 사용하였다. 



천녀유혼


마지막으로 모든 남자의 로망 서극 제작, 오우삼 감독의 '영웅 본색'이다. 영웅 본색을 본 남자라면 아마도 남자들의 목숨을 건 우정, 슬로모션으로 보여주는 아름다운 총격 액션, 영화 내내 남자들을 매혹시키는 비장미 등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장국영이 부른 주제가 '당연정'이 명곡이기도 했지만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기억나던 '영웅 본색' 속의 등장인물들의 우정과 뜨거운 피가 노래를 더욱 인상적으로 만들어 주었다. 



영웅본색의 주윤발


영웅 본색은 1편과 2편이 모두 훌륭하지만 영화관에서 먼저 본 2편이 더욱 기억에 남는다. 보통 사람들은 1편을 더 명작이라고 얘기하지만 억지로 저승에서 소환한 2편의 주윤발은 같은 남자가 봐도 반하지 않을 수 없는 쿨함과 강함을 동시에 가지고 있었다. 사실 지금 생각하면 3명의 영웅이 수많은 적을 몰살시키는 마지막 장면은 말이 안 되긴 하지만 어린 소년의 마음에는 전투 후에 소파에 앉아 있는 3명의 주인공이 그리 멋져 보일 수 없었다. 하여튼 영웅 본색은 1편과 2편 모두 명작이었고 긴 바바리코트(트렌치코트)에 성냥개비를 문 주윤발은 많은 추종자를 만들어 내었다. 그러나 필자는 도저히 성냥개비를 무는 짓(!)은 할 수 없었다. 그의 멋짐은 단지 마음속에 묻어두기로 했다. 



오늘은 차이나타운을 방문한 김에 옛 홍콩 영화의 추억을 되돌아보았다. 이제 중국으로 반환된 홍콩은 영국령이었을 때와 같은 자유로운 분위기를 누릴 수 없을 테고 그로 인해 명작이 탄생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중국으로 반환된 후 한국에서 뚜렷이 히트한 홍콩 영화가 없다는 것은 이에 대한 증거이다. 이제 한 시대를 풍미한 숱한 홍콩 명작 영화들도 자유로왔던 홍콩 특유의 무국적적인 분위기처럼 기억 속에서만 존재하게 되었다. 이제는 그런 영화들은 더 이상 나오기 어렵다는 것을 인정하고 보내줄 때도 된 것 같다. 그래도 고마웠습니다. 어린 시절 좋은 추억을 만들어 주었던 홍콩 영화 예술인분들. 행복하세요~


https://youtu.be/ETq0rVrz-KQ


https://youtu.be/0mdR0HA-Lfo


천녀유혼 주제가

https://youtu.be/deyTZzkC51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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