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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찾는 마음 Jul 28. 2022

페르소나

출처 : Ingrid from Pixabay


페르소나란 고대 그리스 가면극에서 배우들이 썼던 가면을 뜻한다. 영어의 인격(personality)의 어원이기도 하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많은 페르소나를 썼다 벗었다 한다. 가정에서는 남편, 아내의 페르소나를 썼다가 아이들 앞에서 부모의 페르소나를 쓴다. 직장에서는 상사나 부하의 페르소나를 쓰고 직업의 관점에서 교사, 회사인, 전문직, 공무원, 자영업자 등의 페르소나를 썼다가도 친구들을 만나면 철없던 학창 시절의 추억을 간직한 소년, 소녀 같은 페르소나를 쓴다. 


페르소나를 각 역할에 맞는 인격으로도 볼 수 있다. 우리는 그 역할에 맞게 인격을 창조하고 그 역할을 하는 동안 그 인격의 가면을 쓴다. 그러나 그 가면이 진정한 나를 대변하는가를 생각해 보면 회의적인 경우가 많다. 정말로 좋아하고 나의 성격이나 적성과 너무나 잘 들어맞아 그 역할을 선택한 경우는 그 가면은 적절히 나를 대변하고 위화감 없이 즐겁게 쓰고 살아갈 수 있다. 


우리가 가장 오랜 시간 동안 역할을 수행하는 것 중의 하나가 우리의 직업이다. 또한 직업은 우리의 정체성을 말할 때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꼽힌다. 그렇게 중요한 직업의 페르소나를 자신의 본성이나 적성과 맞지 않은 것으로 착용했을 때 우리가 느끼는 고통은 클 수밖에 없다. 마치 다른 사람의 삶을 살고 있는 듯 느껴지지 않을까? 그래서 직업을 고를 때는 정말 좋아하는 것을 고르라는 말이 있는가 보다.


직업을 선택할 때 잘하는 것을 해야 하나, 좋아하는 것을 해야 하나는 오랜 질문이다. 좋아하는 것을 잘하면 직업으로 삼으면 그만이다. 어떤 것을 좋아하고 잘하면 성공할 확률도 매우 높다. 그러나 그런 행운을 누리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자기 직업을 정말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는 것은 그리 쉽지 않다. 그래서 우리는 타협적으로 잘하는 것을 일단 직업으로 삼아 경제적 기반을 마련하고 좋아하는 것은 취미로 하면 된다고 얘기한다. 그 말도 일리가 있다. 


사람마다 가치기준이 다르니 그 기준에 맞게 선택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안정과 편안함이 최선의 가치인 사람은 경제적 여유가 제일 중요할 것이다. 그래서 일단 잘하는 것을 골라야 한다. 그에게는 못하지만 좋아하는 것을 직업으로 추구하는 과정이 너무 고통스러울 수도 있다. 


그러나 도전과 성장에서 기쁨을 얻는 나 같은 부류들은 어떤 것을 잘하든 못하든 결국은 좋아하는 것을 직업으로 선택하는 것이 옳다. 그리고 좋아하는 것에 맹렬히 정진하다 보면 결국 어느 정도의 경지에 오르게 된다. 


또한 어떤 사람은 무언가를 잘하게 되니 좋아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무엇을 좋아하는지 모른다면 일단 어떤 분야든 뛰어들어서 시도해 보는 수밖에 없다.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서 잠시 동안 좋아하지 않는 일로 경제적 기반을 마련할 수도 있다. 많은 유명 배우들이 무명시절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온갖 일을 했던 경험을 얘기한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이 진정 원하는 일(연기)을 놓치지 않아 크게 성공한다.



출처 : Jondolar Schnurr from Pixabay


나는 가르치는 것을 좋아해서 내 직업을 싫어하지는 않지만 궁극적인 나의 열정이 내 직업에 있는지는 모르겠다. 정말로 내 열정을 들끓게 할 일을 아직도 모색 중인 것도 같다. 결국 인생은 진정한 자아를 찾고 자신의 타고난 재능을 이용하여 세상에 보탬이 되는 일을 하는 것이라 생각하는 나는 진정 내 재능과 영혼이 원하는 일을 하고 싶다. 


지금으로선 글쓰기에서 내 열정을 찾고 있는데 이 여정이 어디로 이어질지는 나도 아직 모른다. 여태까지 내 삶에서 나름의 도전을 했지만 정말 내가 원하는 일을 추구할 용기는 없었던 것 같다. 내가 과연 그런 일을 할 수 있을까? 너무 비현실적인 꿈이 아닌가? 현실적으로 살아야지, 언제까지 꿈을 꿀 것인가? 이런 식의 자기 회의적인 마음들이 내 발목을 잡아 어쩌면 '비현실적'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나의 꿈을 모두 파묻어 버린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자기 스스로 마음속에 한계를 만들고 그 안에 갇혀 있다. 간수도 없는데 자기 스스로 자신의 마음의 감옥 속에 갇혀 있는 것이다. 


모든 페르소나를 한 번에 벗어버렸다고 가정해 보면 우리는 너무나 자유로운 존재가 된다. 새하얀 도화지가 되어 그 위에 뭐든지 그릴 수 있는 가능성은 우리의 가슴을 뛰게 한다. 내가 10대~20대를 되돌아보면 힘들었지만 자유로움과 설렘이 느껴지는 것은 그 시절 무한한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이제 나는 그런 가능성을 포기해 버렸는가? 삶에서의 좌절과 시련의 경험에서 더 이상의 상처를 입지 않기 위해 스스로 자신의 가능성을 봉인해 버린 것은 아닌가? 이제는 너무 늦었다는 말로 합리화하면서.


우리는 어떤 페르소나도 쓸 수 있는 존재다. 물론 우리의 타고난 본성과 재능에 맞는 것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어쩌다 보니 내가 타인의 페르소나를 착용하고 있다면 그 삶은 그리 재밌고 가슴 뛰는 삶은 아닐 것이다. 나에게 제대로 맞는 페르소나를 쓰고 삶이라는 무대에서 한바탕 놀다가 내려가고 싶다. 이제 낡은 페르소나에 그리 매달릴 필요는 없다. 친숙하고 편한 가면이겠지만 실제로는 불편하고 어울리지 않는 가면도 오랜 세월 동안 단지 적응되어 편한 것일 수도 있다. 삶의 여정이 나를 어디로 데려가든 나는 나에게 맞는 진정한 가면을 찾을 거라 믿는다. 그리고 새로운 가면을 쓰는 것도 두렵지 않다. 어차피 인생의 끝에서 우리는 어떤 가면이든 내려놓고 무대를 퇴장해야 하는 배우들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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