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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사진 - 너를 벗다.

대지와의 스킨십

by 이성일

네 속에 갇혀서 참았던

땀냄새와 답답함을 벗고

대지의 살갗과 스킨십한다.

비로소 자연과 하나되고

나는 자유를 얻었다.


휴일이나 방학이면 아침 식사 후 항상 집 앞 황방산 황톳길 맨발 산책을 한다. 시간은 30~40분 소요.

아침 햇살이 나무 사이를 비출 때 맨발을 번쩍 들고 사진을 찍었다.

내 몸의 모든 기관에서 가장 고생을 많이 하는 것이 발이다. 수업과 강의 때 내 몸을 지탱해 주는 건 작은 두 발이다.


주말마다 등산을 가면 4-5시간은 걷는다.

지리산 2박 3일, 설악산 공룡능선 13시간. 한라산 9시간도 두 발이 해냈다.

북한산, 도봉산, 수락산 암봉을 나흘동안 걸었고, 암벽 등반을 하기도 했다.

제주 동쪽 끝에서 서쪽 끝까지 올레길을 8일 동안 걸었고,

어떤 날은 58,300보를 걸었다.

안나푸르나 트레킹에서는 11일 동안 히말라야의 속살을 매일 걸었다.

처음 나간 마라톤 10킬로미터를 52분 만에 달린 것도,

출퇴근 왕복 24킬로, 1시간 30분 동안 자전거의 페달을 밟는 것도 이 발이다.


그래서 저녁이면 발을 만지면서 감사하곤 한다.

이 발이 오랫동안 나의 발로 잘 지내주기를 기도한다.


내 발에 관한 글벗 임재이 작가의 글을 나는 참 좋아한다. 여기에 소개한다.

바로 위의 사진을 보고 쓴 글이다. 거듭 재이작가님께 감사드린다.


오늘은 아주 특별한 날이다.

나의 주인이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내 모습을 사진으로 담아서 글을 올려 주었다.

나의 주인은 이쌤이고 나는 그의 발이다.


이쌤의 발로 살아간다는 것은 무척 고달프다. 50년 넘게 이쌤의 발로 살아왔지만 갈수록 더 고단하다

고등학교 교사인 이쌤은 수업시간 내내 서 있는다. 물론 교탁에 기대었을 때는 압박이 좀 덜하긴 하지만 계속 서있는 자세는 이쌤의 체중을 오롯이 내가 견뎌내야 하기에 발바닥 전체가 화끈거릴 정도로 힘이 든다. 이쌤이 과체중이 아니라서 그나마 다행이다.


또 이쌤은 사진촬영을 즐긴다.

사진 촬영할 때 남들처럼 편하게 서서 찍으면 좋을 텐데 이쌤은 요상한 자세를 취한다.

낮은 자세로 찍어야 좋은 사진이 나온다며 쪼그려 앉거나, 앉은 것도 누운 것도 아닌 자세를 취하곤 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목이 부러질 것 같고 인대가 끊어질 것 같은 고통을 느낀다.

하지만 나의 주인 이쌤은 내가 어떻든지 간에 사진만 잘 나오면 입 꼬리가 광대까지 올라간다.


이쌤이 나를 힘들게 하는 건 그것뿐만이 아니다.

등산을 엄청 좋아하는 이쌤은 올 겨울만 해도 쉬지 않고 눈 쌓인 설산 등반을 즐기곤 한다.

며칠 전 한라산을 오르던 날 나는 거의 25,000번 걸어야 했다. 두껍고 단단한 등산화 속에서 바깥바람 한번 못 쌔고 산행이 끝난 후 숙소로 돌아올 때까지 축축한 땀과 냄새를 온몸으로 견뎌내야만 했다.


등산은 그렇다 치고 지난가을, 이쌤은 갑자기 암벽 등반을 하겠다고 나섰다.

암벽을 오를 때는 나의 열 발가락이 손으로 바위를 잡듯이 힘을 주어야 해서 특급으로 더 힘들다. 이쌤 나는 코난이 아니라고요.

그렇게 애를 써서 정상에 올라가면 정작 사진은 별 한일도 없는 이쌤 얼굴만 멋지게 찍어줄 뿐 나에 대한 배려는 없다.


그럼에도 여태까지 나는 별다른 불만 없이 그럭저럭 잘 살아왔는데 오늘은 갑자기 양말을 벗겨버리고는 맨 발로 흙길을 걷는 것이 아닌가.

요즈음 맨발로 흙길 걷는 것이 유행이기도 하고 건강에 좋다는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정작 나에겐 너무 가혹하다.

건강해질 수 있는 다른 방법들이 얼마든지 있을 텐데 왜 이리 나에게 가혹한 것만 골라서 하는 것일까?

1월 산중 흙 길엔 눈이 얼어붙어 있기도 하고 날카로운 자갈돌도 있다 보니 내 몸이 찢어지고 베어질 것 같아 불안하고 이쌤에 대한 원망이 커져갔다.


그런데 열 걸음 스무 걸음 걸음수가 늘어날수록 신기하게도 발바닥이 마치 왓포 마사지라도 받은 것처럼 시원하다. 혈액순환이 잘되니 기분도 좋아진다.

또 신발 없이 흙과 직접 스킨십을 하다 보니 흙의 기운이 내게 닿아 마음이 안정되고 그동안 이쌤 때문에 쌓였던 스트레스가 싹 풀리는 것이 아닌가.


열심히 맨발로 걷던 이쌤이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아 불안하다. 또 뭘 하려고 그러는 걸까?’

“날 좀 그만 힘들게 하라고요. 제발”


하지만 이쌤은 뜻밖에도 나를 높이 들어 올려 햇살 속으로 넣어 주었다.


‘와! 이건 마치 내가 햇살 속을 나는 거 같아’


나는 처음으로 이쌤에 속하지 않은 독립된 ‘나’로 하늘을 나는 자유를 느꼈다.

‘이 순간을 영원히 간직하고 싶다’

이쌤은 이번에는 내 맘을 알아차렸는지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어 사진을 찍어 주었다.

오롯이 내가 주인공인 사진이다.


오늘의 주인공은 바로 나 “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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