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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성일 Jan 05. 2023

나의 버킷리스트는 진행 중이다.

별바라기

별을 보았다.

지리산 자락 산청의 작은 마을이었다. 별이 쏟아진다는 표현이 딱 맞았다. 금방이라도 내 몸으로 우르르 떨어져 내릴 것 같았다. 나는 깜깜한 방에 있었고 천장은 별로 가득했다. 온통 반짝이는데 언뜻언뜻 검은 여백이 있었다. 손바닥에 담아서 자세히 보고 싶었다. 손을 내밀었다. 조금 모자란다. 의자만 있으면 잡힐 듯하다. 벌써 36년이 지났다. 언제부턴가 그 밤하늘이 생각났다. 그것도 20년은 훨씬 지나서. 

        

다시 그 별이 보고 싶어졌다. 

별은 달이 없는 밤에 한꺼번에 나타난다. 도시의 불빛도 싫어한다. 별을 만나려고 산을 찾아다녔다. 설악산과 지리산 정도면 만나주지 싶었는데 몇 녀석만 나왔다. 칠흑 같은 제주 산간 마을에서도 마찬가지다. 내 키만큼 큰 배낭을 메고 산에서 자는 백패킹이 취미가 되었다. 어느 산에서도 별은 그때처럼 한꺼번에 나타나지 않았다.     


히말라야로 가기로 했다.

안나푸르나라면 그 별을 볼 수 있을지 모른다. 보름달을 피해서 일정을 잡았다. 카트만두에서 포카라로 가는 작은 비행기에서, 만년설로 뒤덮인 히말라야가 내 눈높이에서 끝없이 펼쳐졌다. 저 산들은 별을 가득 품고 있을 것 같아서 설렜다. 포카라에서 엿새를 걸어야 안나푸르나다.

이틀째 석양으로 유명한 푼힐전망대가 있는 고라파니에 도착했다. 한참을 오른 푼힐의 석양은 아름다웠다. 깊은 밤 다시 푼힐로 향했다. 세계에서 7번째로 높은 8,167m의 다울라기리와 안나푸르나 남봉 사이가 별로 촘촘하다. 조리개를 최대로 노출하고, 셔터를 20초에 맞췄다. 은하수가 카메라에 잡혔다. 다울라기리가 뿜어낸 빽빽한 별이 점차 간격을 넓히면서 하늘을 수놓았다. 하지만 카메라가 본 은하수는 눈으로는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히말라야의 밤은 계속된다.

사흘째 2,560m 츄일레 롯지에서 별은 세계 3대 미봉 중 하나인 물고기 꼬리 모양의 마차푸차레 위로 촘촘했다. 나흘째 2,360m 시누와에서는 별똥이 떨어졌다. 닷새째 3,200m 데우랄리의 밤하늘은 히말라야에서 본 별 중에 가장 많았지만, 의자 하나로는 어림없었다. 엿새째 드디어 4,130m인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A.B.C)에 도착하는 날이다. 마지막 쉼터인 마차푸차레 베이스캠프(M.B.C)에서 본 안나푸르나는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만년설이 더욱 빛난다. 저 하늘이 오늘 밤 내게 별을 선물할 것이다.

반대편 마차푸차레는 구름으로 살짝 덮여 꼬리가 보이지 않는다. 출발과 동시에 눈이 내린다. 눈이 그치길 기도하면서 계속 걷는다. 눈발은 점점 심해진다. 안나푸르나 턱밑까지 왔는데 어둠과 눈으로 인해 몇 미터 앞도 분간이 안 된다. 베이스캠프 도착 후에도 그칠 기미가 없다. 밤 11시가 되어도 계속 내린다. 1시에 시계를 맞추고 잠시 눈을 붙인다.     


안나푸르나의 황홀한 밤.

알람에 번쩍 눈을 뜬다. 몸보다 마음이 먼저 뛰쳐나간다. 눈이 그쳤다. 8,091m 안나푸르나가 눈앞에 솟아있다. 장엄하다. 숨을 쉬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4천 미터는 더 올라야 정상인데 금방이라도 닿을듯하다.

한 바퀴 빙 돌아본다. 반대편에 6,997m 마차푸차레가 아까 감추었던 꼬리를 내놓고 있다. 그리고 7,291m 안나푸르나 남봉, 6,441m 히운출리, 5,663m 타르푸출리가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하늘은 360도를 에워싼 히말라야 고봉에 갇혔다. 밤하늘은 검지 않다. 낮보다 더 시리도록 푸르다. 안나푸르나 정상에서 하얀 영혼이 스멀스멀 나와서 푸른 밤하늘에 스며든다. 이 시간 내가 여기에 있어서 감사하다.

행복한 순간이다. 몸을 돌려 산봉우리 하나하나에 다시 눈을 맞춘다. 별을 눈에 담는다. 그런데 별보다 하늘이 더 많이 보인다. 혹시나 해서 새벽 3시에 다시 나왔다. 아까보다는 별이 많았지만, 그때 본 하늘과는 다르다. 5시에 또 나왔다. 마차푸차레로 별똥이 떨어진다. 밤을 새우다시피 하늘을 보았다. 두 번 다시 볼 수 없는 장관이었지만 별이 내 마음을 채우지는 못했다. 그때 본 별은 언제 다시 볼 수 있을까? 


나의 버킷리스트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후 차마고도를 찾았다. 차마객잔에서 본 티벳의 밤하늘에도 별은 많았지만, 내 마음은 반짝이지 않았다. 혹시 별에 대한 내 기억이 과장된 것은 아닐까? 아니면 그동안 살아온 세월에 별을 보고도 마음이 무뎌졌을까? 그것도 아니면 깨지 않을 꿈을 계속 꾸고 싶은 걸까?

사막에서 별 보기.

몽고 초원에서 별 보기.

별을 찾아서 앞으로 갈 곳이다.

별을 향한 나의 그리움은 계속된다.


내가 자주 그리고 계속해서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나의 마음을 더욱 새롭고 더욱 커다란 놀라움과 경외감으로 충만시켜 주는 것이 두 가지 있다. 내 머리 위의 별이 총총한 하늘과 내 마음 속의 도덕법칙이 그것이다. - 칸트  



#버킷리스트  #별  안나푸르나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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