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터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빅터 프랭크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읽고 있다. 저자는 유대인으로 정신과 의사이다. 나치의 강제 수용소에서 인간이 겪을 수 있는 최악의 상황과 옆 동료들이 죽어가는 것을 보면서도 살기 위해 동물적 본능과 인간의 이성을 발휘하는 모습에서 살면서 겪는 시련에 대해 생각하는 기회가 되었다. 다음은 '살아야 할 이유' 편에 나오는 내용을 파랑색으로 요약 정리했다.
니체가 말했다.
'왜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그 '어떤' 상황도 견딜 수 있다.
삶은 수시로 해결해야 할 과제를 제시한다. 그리고 그것이 그 사람의 운명을 결정한다. 똑같은 상황이 되풀이 되는 경우는 하나도 없으며, 우리는 과제에 대해 다양한 방식으로 대하게 된다.
첫째, 때로는 그가 처해 있는 상황이 그에게 스스로의 운명을 개척하기 위해 행동에 들어갈 것을 요구할 수도 있다. 이는 즉각적으로 과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둘째, 어떤 때에는 더 생각할 시간을 갖고, 그렇게 하는 것이 자신에게 이롭다고 생각하게 할 수도 있다.
셋째, 때로는 주어진 운명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가야 할 때도 있다.
그런데 시련은 대부분 어느 한 가지 태도만 요구하지 않고, 세 가지 모두를 동반한다. 예를 들어, 빚으로 인한 시련이라면 갚기 위해 돈을 버는 행동을 즉각적으로 해야 한다. 또한, 많은 시간이 필요하며, 그 시간동안 자기 십자가를 지면서 감당해야 한다. 인간 관계의 갈등도 마찬가지이다. 즉각 끊을 수 있는 관계라면 문제가 없지만 그렇지 않다면 삶의 무게로 담당해야 하고, 때로는 견디며 버텨야 하며, 그 가운데 갈등에서 오는 문제 해결을 위해 뭔가를 해야 한다.
시련을 당하는 중에도 자신이 이 세상에서 유일한 단 한 사람이라는 사실에 감사해야 한다. 어느 누구도 그를 시련으로부터 구해 낼 수 없고, 대신 고통을 짊어질 수도 없다. 그가 자신의 짐을 짊어지는 방식을 결정하는 것은 그에게만 주어진 독자적인 기회이다.
시련이 없는 삶은 없다. 시련의 무게는 다르지만 각자에게는 모두 엄중하다. 시련이 왔을 때 그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해결의 출발점이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운명을 탓하거나, 상대를 미워하거나, 남탓을 하는 것은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시련이 있다는 것 자체가 내가 살아있다는 증거다. 모든 행복은 유효기간이 있다. 아무리 좋은 일도 시간이 지나면 점차 그로 인한 행복감이 줄어든다. 따라서 늘 행복할 수 없다는 것, 행복은 시련을 포함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저자는 몇 페이지 뒤에서 또 다시 니체의 말을 인용한다.
나를 죽이지 못한 것은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들 것입니다.
오늘도 살아 낸 하루에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