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아 소설,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읽고
아버지는 1954년 말(馬)의 해에 태어나 올해 칠순을 맞았다. 2023년은 6·25전쟁의 정전 협정이 맺어진 지 70주년이기도 하다. 아버지는 전후 베이비붐 세대로 청소년기에 유신을, 청년기에 광주 5·18을, 30대에 87년 민주화를, 40대에 IMF 환란을, 50대에 미국 발 금융위기를 겪었다. 물론 아버지가 직접 그 모든 사건에 관여했다는 것은 아니다. 아버지는 운 좋게 폭격을 피해 간 경남 합천군 대병면의 밤나무골에서 2남 2녀의 차남으로 태어나 그곳에서 유년기를 보냈다. 부산으로 야반도주하기 전까지.
정지아의 장편소설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읽으며 나의 아버지 ‘박석제’를 떠올렸다.언젠가는 아버지의 자서전을 쓰는 고스트라이터가 되겠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지금까지 실천하지 못했다. 어느 아버지의 인생을 생생하고 유머러스하게 재구성한 작품을 만나 반갑고 부럽고 부끄러웠다. 오랜 수감생활을 마치고 고향 구례 반내골에 정착한 아버지 ‘고상욱’, 그의 딸 ‘고아리’의 아버지에 대한 인식변화가 흥미롭다. 초반에 냉소적이던 화자의 어조가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는 과정에서, 문상객을 만나고 아버지와 그들과의 사연을 알게 되면서 안쓰러움, 자책과 미안함을 거쳐 자신에 대한 성찰로까지 나아간다.
아버지의 자식으로 태어난 것은 내가 결정한 것이 아니다. 하지만 삶에서 나는 무엇을 해야 하며, 어떻게 시간을 보내야 하는 지는 전혀 다른 문제다. 사회나 역사처럼 개인도 ‘진화’한다(‘진보’가 아니다). ‘진보’가 선형으로 흐르는 횡적인 2차원이라면, ‘진화’는 가장 단순한 형태에서 가장 복잡한 것으로 변화하는 3차원의 입체다. 세계는 지속적으로 변화하며 유기체 또한 시간이 경과하면서 변해간다. 한 사회나 개인이 삶에서 늘 진일보를 할 수는 없다. 좌충우돌 고통과 시련을 겪으면서 좌절하고 눈물을 흘리고 실망과 후회하며 삶에 적응한다. 생존하고 사랑하고 번식한다. 인생에서 나에게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것은 무엇인가, 나는 무엇에 의미를 두고 생각하고 행동하고 있으며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고민과 실천이 진화라고 믿는다. 진화는 나에게 삶의 자세와 태도에 가깝다.
나는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거울삼아 나의 아버지 ‘박석제’의 진화를 살펴보려 한다. 아버지가 치매에 걸리거나 눈 감기 전에 아버지에 대한 기록을 남겨두고 싶다. 소설과 달리 나의 아버지는 살아 있고 당신 주위에는 아내를 비롯한 가족과 친지가 많이 생존해 있다. 그 속에는 아버지의 아들인 나의 인생도 포함되어 있으니 어쩌면 이것은 ‘나의 해방일지’ 혹은 ‘나의 진화일지’를 쓰는 일련의 작업일 수도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