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기 옥중수상록, 새로운 백년의 문턱에 서서》을 읽고 2
■ 내가 생각하는 행복
법원공무원시험을 합격하고 발령 대기기간에 어학원을 다녔었다. 한 과목을 들으면 프로모션으로 원어민이 번갈아가면서 수업을 했는데, 선생님들의 국적이 미국, 영국, 남아프리카공화국, 나이지리아 등 다양했다. 그 수업에서 공통적으로 한 번 씩은 접하는 질문이 있었다.
Are you happy now? What do you think happiness is?
당신은 지금 행복합니까? 당신은 행복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당시 서른이 넘었는데 한 번도 진지하게 행복에 대해 고민하지 않았기 때문에 질문을 접하고 충격을 받았다. 행복은 객관적인 기준이 없기 때문에 간단히 정의하기 어렵다. 아무리 부유하고 권력을 가졌어도 행복하지 않은 사람들이 많다. 그렇다면 우선 나의 기준을 정립하는 것이 중요하겠다.
내가 생각하는 행복한 삶이란, '스스로 선택하고 자존감을 가지고 사는 삶'이다. 즉 자기결정권을 제대로 누리는 삶이다.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나의 바람과 욕구대로 행동하고 만족을 얻는 삶이다. 자기를 아끼고 남이 아닌, 나를 비교 대상으로 살고 싶다. “누구든지 웬만한 정도의 상식과 경험만 있다면, 자신의 삶을 자기 방식대로 살아가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그 방식 자체가 최선이기 때문이 아니다. 그보다는 자기 방식대로(his own mode) 사는 길이기 때문에 바람직하다는 것이다.”주2)
물론 이런 반론이 있을 수 있겠다. “나도 주체적으로 싶은데 현실은 정말 팍팍해. 취업도 안 되고, 취업을 해도 하루하루 생활하는 것만으로도 벅차. 결혼하려면 돈도 모으고, 결혼해도 자식 키우려면 다른 것 신경 쓸 여유가 없어.”
생활을 포기하라거나 이기적으로 살자는 말이 아니다. 하루에 조금이라도 시간을 내서 내가 잘할 수 있는 것, 잘하지는 못하지만 열정적으로 할 수 있는 것, 열정적으로 할 수 없더라도 꾸준히 할 수 있는 것을 찾아보면 좋겠다. 여러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찾으면 더 좋다.
► 불교에서는 ‘수처작주(隨處作主)’란 말이 있습니다. 어느 곳이건 가는 곳마다에서 주인이 되라는 말입니다. 감옥에 있든, 그렇지 않든 내 삶의 주인은 나입니다. (옥중수상록, 18쪽)
2016년 우연한 계기로 부천문화재단에서 개설한 시 창작 교실을 등록해서 매주 화요일 저녁에 빠지지 않고 꼬박 일 년을 다녔다. 처음에는 내가 쓴 글을 누군가에게 보여준다는 사실 자체가 부끄러웠다. 하지만 매주 나를 들여다보고 시적인 이미지를 찾고 감정을 상상력으로 발전시키는 과정 자체가 즐거웠다. 모은 원고를 문예지에 투고 했는데 운 좋게 당선되었고 그 이후 2019년에 부천신인문학상을 탈 수 있었다. 시를 쓰고 발표하는 일은 경제적 관념으로 접근하면 쓸모없는 일이다. 그러나 내 생각과 감정을 나만의 언어로 표현하고 남들과 나눌 수 있다는 점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쓸모다. 누구에게나 찾아보면 ‘쓸모없음의 쓸모’가 하나는 있지 않을까. 임제선사의 말씀으로 알려진 수처작주 뒤엔 입처개진(立處皆眞)이 따라온다. 어느 곳에서든 그 곳에서 스스로 주인이 된다면 그 모든 것이 참될 것이라는 말이다.
주2) 존 스튜어트 밀, 앞의 책, 14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