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동민 Feb 27. 2024

당신들의 천국에서 우리들의 천국으로 2

한야 야나기하라 소설, 투 파라다이스 1(시공사, 2023)을 읽고 2

3. 제2부 「리포-와오-나헬레」에 대해서도 살펴보자. 1993년 경 뉴욕이 배경이다. 흥미롭게 제1부에 나왔던 데이비드 빙엄, 찰스 그리피스, 에드워드 비숍 등이 다시 등장한다. 물론 이름만 같고 다른 캐릭터다. 찰스는 오십대 중반 파트너 변호사로, 데이비드는 스물다섯의 법률 보조원으로 둘은 연인관계다. 데이비드는 하와이 오아후 섬의 호놀룰루 출신으로 ‘카위카’로 불린다. 하와이에는 할머니와 아버지 ‘위카’가 여전히 산다. 제2부는 다시 #1과 #2로 나뉘는데, #1에서는 찰스와 데이비드의 관계를 중심으로 #2에서는 아버지 ‘위카’가 아들 ‘카위카’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이다. 1부의 가부장이 너데니얼 빙엄이라면 2부에서는 그 역할을 데이비드의 할머니가 맡았다. 다만 낙원을 향해 걸음을 옮기는 이는 데이비드(‘카위카’)가 아니라 그의 아버지 ‘위카’다. 발작증세, 시력 감퇴 등을 앓는 ‘위카’는 요양원에서 유폐생활을 하고 있다. 특히 #2에서 하와이 왕족인 ‘위카 빙엄’이 동성 연인 에드워드와 “자신의 쓸모라는 판타지”(488쪽)인 ‘리포-와오-나헬레’(Lipo wao nahele)라는 사실상 버려진 땅에서 낙원을 건설하려는 노력이 묘사된다. 또한 ‘위카’와 데이비드의 생모인 앨리스와의 만남과 이별과정, 그로 인한 ‘위카’의 발작, 데이비드가 유년기를 지나 결국 아버지 ‘위카’를 떠나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  


  제2부가 제1부와 다른 점은 죽음의 그림자가 훨씬 짙다는 것이다. 찰스는 죽음이 예정된 병이 있고(아마도 에이즈), 그의 옛 애인 피터는 다발성 골수증으로 죽음의 문턱에 있다. 찰스의 친구들도 상당수 병을 앓거나 죽음에 이르렀다. 요양소에 있는 ‘위카’ 또한 활동이 불가능한 상황이고 착란 증세도 보인다. 또한 하와이의 독립 문제를 직접적으로 언급하고 국가와 개인의 관계 설정을 암시하는 정치적 사안들이 소설 속에 짙게 녹아 있다.


  데이비드(‘카위카’)는 장애가 있는 아버지로부터 도망치고 혼돈스러운 현실의 벽에 저항하거나 부딪혀보지 않고 침묵을 택한 것에 대해 수치와 부끄러움을 느낀다. 하지만 낙원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지 못했다. 머리에서 가슴까지 내려온 이성이 가슴에서 발까지의  실천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자신의 분노를 대면하는 대신 거기서 숨으려고 했다. 하지만 숨는다고 일어나는 일들을 막을 수는 없었다. 숨어서 막을 수 있는 유일한 일은 결국 발견되는 것뿐이다.” (334쪽) 나는 ‘카위카’의 심정을 이해한다.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마음을 부끄러워하면, 결국 부끄러움이 없는 것과 같다고 하지 않는가. 부끄러움을 아는 자는 부끄러운 자가 아니다. 



4. 당신들의 천국에서 우리들의 천국으로


- 하지만 그가 떠나온 곳이 천국이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건 다른 사람의 천국이지, 그의 천국은 아니었다. 그의 천국은 다른 곳에 있지만, 그의 눈앞에 나타나지는 않을 것이다. 그곳은 그가 찾아야 한다. 사실 그게 바로 그가 평생 배웠던 바, 희망하라고 배운 바 아닌가? 이제 찾을 때가 되었다. 그래서 그는 무거운 가방을 손에 든 채 이곳에 잠시 서 있다가 심호흡을 한 뒤 첫발을 내디딜 것이다. 그의 첫 발걸음을. 새로운 인생을 향하여- 낙원을 향하여. (267쪽, 밑줄은 인용자)

- 아직 너무 늦지 않았어, 늦지 않았어, 결국 늦지 않았어. 그리고 나는 걷기 시작할 거야-어머니 집이 아니라, 리포-와오-나헬레가 아니라, 다른 곳으로, 네가 가 있길 바라는 그곳을 향해서. 난 멈추지 않을 테고, 쉴 필요도 없을 거야. 거기, 네가 있는 곳에 다다를 때까지, 낙원을 향하여. (530쪽)


  제1부, 제2부의 끝부분이다. 데이비드와 ‘위카’의 낙원을 향한 다짐으로 마무리되는 장면이다. 이청준의 소설『당신들의 천국』이 생각났다. 소록도 원생들을 동원해 바다 간척사업을 해서 나병 환자들의 낙토를 만들어주겠다는 조백헌 원장의 약속에는 원생들의 자유의지와 선택이 빠져있다. “선택과 변화가 전제되지 않은 필생의 천국이란 오히려 견딜 수 없는 지옥일 뿐”이다. 그 목적이 아무리 선하다고 해도 그건 ‘당신들의 천국’이지 ‘우리들의 천국’은 아니다.


  그렇다면 데이비드와 ‘위카’는 낙원에 도착할 수 있을까. 에드워드의 사기적인 유혹과 정신병을 앓는 ‘위카’의 신체적 능력을 볼 때 성공을 장담하기는 힘들다. 무모하고 무용한 결정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나는 그들의 선택을 존중하고 지지한다. 스스로 선택하고 자존감을 가지고 사는 삶이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하는 낙원도 마찬가지다.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나의 바람과 욕구대로 행동하고 만족을 얻는 삶이다. 결론적으로 옳지 않았다고 해도, 애초에 그 방식 자체가 최선이어서 선택한 것이 아니다. 거꾸로 자기 방식대로 사는 길이기 때문에 결과에 관계없이 바람직한 것이다. 자기결정권을 제대로 누리는 삶만이 당신들의 천국이라는 무덤을 열고 우리들의 천국으로 가는 유일한 방법이다. 


사족) 제2부의 시간적 배경인 1994년에는 장동건 주연의『마지막 승부』,『우리들의 천국』과 이병헌 주연의 『내일은 사랑』이라는 드라마가 있었다. 『마지막 승부』의 OST였던 장현철의「걸어서 하늘까지」를 흥얼거리며 이 글을 썼다. 


“어둔 미로 속을 헤매던 과거에는/ 내가 살아가는 그 이유 몰랐지만/ 하루를 살 수 있었던 건/ 네가 있다는 그것/ 너에게 모두 주고 싶어/ 너를 위하여/ 마지막 그 하나까지” 

작가의 이전글 당신들의 천국에서 우리들의 천국으로 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