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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 영 Jul 26. 2022

서울 중심에서 템플스테이

타다닥, 타다닥 키보드 소리로 가득 찬 사무실 안에서 문득, 나는 휴식을 갖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정신과 신체 모두를 정화하고 싶다고나 할까. 매일같이 먹는 인스턴트 음식도 지겹고, 사회에서 만난 사람들과 섞여 있으면서 진짜 나를 숨기는 것도 모두 답답해졌다. 그러던 와중에 옆자리에 앉은 A 씨 왼쪽 팔에 끼어진 염주가 눈에 띄었다. 염주? 절? 저번에 듣기로 그녀는 무교라고 했던 거 같은데.  갑자기 개종이라도 했는지 팔에든 염주가 찰랑거리며 호기심을 자극한다. 난 곧바로 그녀에게 메신저를 걸었다.


-A님, 염주 뭐예요?

-아ㅋㅋㅋ 이거 저 템플스테이 다녀와서 사 온 거예요.

-템플스테이요?

-네네. 조계사라고 안국역 근처에 있는 큰 절인데 거기서 템플스테이를 하더라고요. 전 엄청 만족했는데 혹시 관심 있으세요?


템플스테이라면 하루나 이틀 정도 절에서 묵으면서 불교문화를 체험하는 프로그램? 속세에 누구보다 찌들어 있고, 밥반찬으로 고기가 없으면 차라리 굶는 걸 선택하는 나에게는 조금 어색한 일이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지금 난 잠깐의 휴식을 갖고 싶었고, 마침 몸과 정신 수양을 하고 싶은 때였으니 색다른 체험을 할 수 있는 타이밍일지도 몰랐다.



도저히 혼자 가기에는 용기가 안 나 친구를 섭외해 바로 다음 주말에 1박 2일 체험형 템플스테이를 예약했다. 쉬며 힐링할 수 있는 휴식형과 책을 구매하고 읽으면서 서로의 감상문을 얘기하는 체험형 코스가 있었는데, 나는 마냥 쉬기만 하면 조금 지루할 거 같아 체험형으로 골랐다. 그리고 당일날 조계사로 향하는데, 생각보다 절의 규모가 커 매우 놀랐다. 서울 중심에 있으니 어디 산골 중턱에 자리 잡고 있는 작은 절 사이즈로 생각을 했는데 전혀 달랐다.


큰 대문에서부터 작은 상가 건물만 한 부처님 불쌍까지. 크기에 압살 당하고 많은 인파들로 인해 두 번 놀랐다. 우리나라에 이렇게 불교신자가 많은 줄은 꿈에도 몰랐다. 구경을 마친 나와 친구는 곧장 프로그램 인솔자인 스님을 따라 건물 안에서 프로그램 설명을 듣고, 옷과 함께 방을 배정받았다. 우리가 함께 지내는 방은 내 방 원룸보다 더 좋은 크기에 에어컨과 보일러도 다 틀 수 있는 꽤 편안한 시설이었다. 내가 생각한 것과는 정반대의 상황들이 연속이었지만, 절복을 입고부터는 편안하고 잠깐이지만 내가 이 절에 소속된 기분이라 좋았다.


곧장 우리는 스님을 따라 경복궁 길을 걸으며 독립 책방으로 향했다. 일주일 동안 비만 줄기차게 오다가, 오늘은 어쩐 일인지 날씨가 청명하고 하늘이 맑았다. 가는 길에 바쁘게 일하는 사람들도 구경하고, 놀러 온 관광객, 또 이상의 집이라고 하는 가옥도 찾았다. 금요일 연차를 내고 간 거라 외출복 대신 절복을 입고 서울을 돌아다니는 내가 어색했지만 여유롭고 자극적이지 않은 서울구경이 마음을 나른하게 만들어준다. 자연에 있지 않아도 마음의 여유와 휴식을 느낄 수 있다는 게 신선했다.



목적지인 독립 책방은 신기한 곳이었다. 책방 주인장에 자부심과 노고를 알 수 있는 곳이었고, 본인이 재밌게 읽은 책이 아니면 절대 가게에 내놓지 않는다는 철학까지 가지고 있었다. 우리는 모두 지정된 책 한 권과 본인이 사고 싶은 책 한 권을 추가로 구매하고 다시 절로 돌아갔다. 본인이 직접 책을 바라보고 구매하며 읽는 행위를 스님은 얼마나 값진 것인지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나 또한 거대한 대형서점이나 인터넷이 아닌 작고 견고한 책방 안에서 내 책을 내가 고르며 사는 일이 만족스러웠다.


'우리는 아직 무엇이든 될 수 있다.' 퇴사나 졸업을 앞두고 앞두고 있지만 정작 자기 자신은 뭘 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들에게 휴식과 다양한 체험을 하면서 진로를 찾아가는 시간을 갭이어라고 한다. 스님이 지정해준 도서의 주제는 바로 갭이어였다. 충분한 휴식을 통해 진정한 나를 찾고, 그것이 발돋움이 되어 앞으로의 인생 방향을 스스로 개척하는 것. 올해 퇴사를 앞둔 나에게는 정말 필요한 시간이었다.


저녁으로 새싹 비빔밥을 야무지게 먹고, 다시 돌아와 사람들과 책에 대해 이야기했다. 우리가 겪은 감정들을 서로 쏟고 정리하는 시간들이 생각보다 재밌어 시간 가는 줄 몰랐던 거 같다. 은은하게 스며들어있는 향냄새도 스님의 정갈한 목소리도 주변 사람들의 인자함도 모두 마음의 안정을 준다. 이날, 나는 잠자는 환경이 바뀌었음에도 깊게 숙면했다. 몸과 마음이 편안하다는 신호였다.



퇴소 날에는 별거 없이 마무리 인사와 아침식사를 하고 헤어졌다. 집으로 도착하니 30분이 조금 넘어있었다. 서울에 살고 있는 내가, 서울 속 다른 환경에서 색다른 체험을 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비록 불교를 믿는 신자는 아니지만 절의 풍경과 향, 불경을 들으며 종교에 대한 내 인식이 많이 바뀌게 되었다. 앞으로 스님이 해주신 말씀처럼, 휴식을 초조하게 여기기보다는 나를 정비하는 시간으로 생각하고 충분히 즐기며 내일을 나아가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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