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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테토아부지 Jan 17. 2023

한치의 오차 없이 작동하는 우직한 드라마…<교섭>

서러워서 올리는 리뷰 - 서올리

“외교부의 제1 사명, 자국민 보호 아닙니까!”


황정민은 작품 속에서 늘 열심히 일하는 것 같다.


영화 <교섭>(연출 임순례)은 탈레반의 인질이 된 한국인들을 구하기 위해 아프가니스탄으로 향한 외교관 정재호(황정민)와 현지 국정원 요원 박대식(현빈)의 분투를 그렸다. 2007년 샘물교회 선교단이 아프가니스탄 무장단체 탈레반에게 피랍됐던 실화를 소재로 했다. 


영화는 임순례 감독이 연출한 실화 소재 드라마란 키워드 안에서 한치의 오차 없이 정직하게 작동한다. 신념을 관철하기 위해 뚝심 있게 나아가는 실화 바탕 드라마. 그 우직함과 예측 가능성이 ‘교섭’의 강점이자, 한계다. 덧붙여. 황우석 줄기세포 사건을 모티브로 했던 '제보자'(2014)처럼 이번에도 실화는 거들 뿐이다. 아니 관객들이 관심가지길 원하지도 않는다. 이럴거면 왜-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황정민이 맡은 외교통상부 실장 정재호는 피랍된 인질들 구조를 최우선 사명으로 여기며, 능력과 소신을 갖춘 인물이다. 국가의 체면, 재정적 손실 등을 걱정하는 정부 간부 등과 갈등이 생기지만, ‘대통령 찬스’까지 쓰면서 꿋꿋하게 인질들을 구하는 데 전력을 다한다. (외교부 차관, 장관은 나빠도 대통령은 인자하다. 이 영화는 2020~2021년에 촬영됐다.)


영화는 신념에 가득 찬 황정민의 얼굴에 상당 부분 기댄다. 현빈이 맡은 대식은 거칠지만, 자신의 트라우마 때문에 누구보다도 인질을 구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움직이는 인물. 다만 탈레반과의 최종 교섭자는 결국 외교관인 재호일 수밖에 없어 영화가 진행될수록 역할이 겉도는 측면이 있다. (현빈이 시사회에서 대식은 외로운 인물이었을 것이라고 나름대로 자신의 캐릭터를 분석했던 사실을 전하는 순간은 짠했다.) 


이렇게 열심히 뛰는데.. 영화는 현빈에게 활약할 기회를 그리 주지 않는다.


인물에 대한 묘사는 평면적이다. ‘신념을 추구하는 외교관’(황정민)과 ‘인도주의적 마음을 가진 국정원 요원’(현빈)이란 인물의 성격이 처음부터 끝까지 유지된다. 아프간 정부와 교섭을 시도하다 엎어지는 패턴이 반복되는데, 과정이 지난할수록 최종 교섭 순간이 간절해진다. 


기교를 덜고 진심을 담아낸 연출 덕분에 재호가 탈레반 총사령관과 인질들을 구하기 위해 벌이는 마지막 교섭 30분은 힘이 있다. 임 감독 스스로 “영화의 핵심적 장면”이라고 손꼽은 지점이다. (총사령관은 진짜 아프가니스탄 출신 연기자라고 한다. 연기 경력은 별로 없지만 잘해줬다고 임순례 감독은 인터뷰에서 말했다.)


‘샘물교회 피랍 사건’이란 실화를 기반으로 만들었지만, 영화 내에서 인질들은 최소한으로 언급된다. 통역사 카심(강기영)의 “그 사람들 뭐 하러 이런 곳에 와서 엄한 사람들 개고생시키냐고”란 대사 정도다. 여전히 의견이 분분한 소재를 고른 데 따른 불가피한 선택이었을 듯하지만, 아무런 가치 판단없이 소비되는 점은 아쉽다. 


무엇보다 재호나 대식이 목숨까지 거는 동기이자 행동 목표인 인질들에 대한 묘사가 극히 적은 탓에 인물들의 추동력이 약해졌다. 분량이 극히 적은 와중에 등장하는 인질들의 모습이 줄곧 여성의 얼굴이라는 점도 아쉽다. 인질 외엔 여성 캐릭터가 단 한 명도 등장하지 않는 점도 특기할 만 하다.

 

황정민과 현빈은 실제로 친하다고 한다.


요르단 현지 로케이션 촬영으로 구현한 아프가니스탄의 풍경은 황량하면서 웅장하다. 코로나19가 극심했던 2020년 여름에 촬영이 진행됐지만, 되도록 ‘진짜’ 풍경을 담기 위해 어려운 길을 택했다. 영화 속 카불 전경은 실제 아프가니스탄 풍경이다. 현지인이 카불 전경을 촬영한 걸 삽입했다. 18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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