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친아들을 처형한 로마 황제의 서늘한 질투
권력과 핏줄, 그 사이에서 인간은 얼마나 나약하고 잔인해질 수 있을까.
밀고자를 사주해 황제인 자신에게 친아들을 고발하게 만들고, 결국 죽음에 이르게 한 로마의 황제 콘스탄티누스. 나는 이 참혹한 역사의 한 페이지를 넘기며 인간의 끝없는 야심과 질투, 그리고 관계의 방향에 대해 깊이 묻게 되었다.
여관집 딸인 어머니와 용맹한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콘스탄티누스. 그는 탁월한 야심가였다. 일급 참모로 승승장구하면서도 제 속내를 철저히 숨길 줄 알았다. 반면 그의 아버지는 겉치레를 모르는 온화하고 겸손한 군주였다. 아버지는 황제가 된 지 불과 15개월 만에 세상을 떠났지만, 임종의 순간 32세의 훌륭한 아들인 그에게 제국과 남은 어린 이복동생들을 흔쾌히 맡겼다. 그 역시 동생들을 다독이며 끈끈한 우애로 그 믿음에 보답했다.
황제 자리에 오른 콘스탄티누스의 전성기는 눈부셨다. 정규교육을 받지 못한 결핍을 독서와 사색으로 채웠고, 시민들의 고소장을 직접 해결하며 영웅으로 추앙받았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권력의 정점에 서자, 굳게 닫혀있던 야심의 상자가 열렸다. 밀라노 칙령으로 기독교를 공인하고 수도를 옮기며 권력을 중앙집권화한 그는, 점차 탐욕에 물들며 14년 동안 혐오스러운 폭군으로 변해갔다. 가장 끔찍한 비극은 권력의 가장 찬란한 순간에 찾아왔다.
타깃은 다름 아닌 그의 친아들, 크리스푸스였다. 온화하고 교양 넘치는 젊은 황태자는 늙어가는 황제가 더 이상 가질 수 없는 시민과 군대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 사람들의 무한한 희망과 찬사가 늙은 아비가 아닌 젊은 아들을 향해 쏟아졌다.
관계를 수직으로 보는 순간, 사랑은 경쟁이 된다. 늙은 황제는 아들이 자신과 대등한 위치에서 빛나는 것을 끝내 용납하지 못했다. 아들이 반역을 꾀한다는 거짓 소문을 퍼뜨린 것도 모자라, 밀고자를 사주해, 아들이 새어머니인 황후와 간통했다는 참혹한 누명을 씌웠다.
'아들은 궁정 안에 갇혔다. 죄수처럼.'
늙은 황제는 자신의 집권 20주년 기념행사에 축제라는 위선의 베일을 화려하게 드리웠다. 그리고 모두가 환호하던 그 축제의 날, 아들은 죽었다. 아비의 명령 아래 비밀스럽고도 순식간에 처형되었다. 이 참혹한 죽음 앞에서 나는 조용히 사람의 마음을 짚어본다.
"수평인가, 수직인가."
콘스탄티누스가 아들을 수평적인 시선으로 바라봤다면 그토록 눈부신 청년이 얼마나 자랑스러웠을까. 하지만 수직의 잣대를 들이대는 순간, 아들은 내 권력을 위협하는 적이자 끌어내려야 할 경쟁자가 되고 말았다. 어제 아무리 훌륭한 만찬을 즐겼어도, 오늘 내 앞의 맛있는 밥을 양보하기란 그토록 어려운 것일까.
사람은 나이에 따라 생각하는 방식이 달라진다고 한다. 평생 기독교를 정치적으로 교묘하게 이용하며 병사들에게 '죽으면 천국에 간다'라고 외치면서도 정작 자신은 믿지 않아 세례를 거부했던 그. 그는 죽음의 문턱에 서서야 자신의 악행에 대한 두려움에 떨며 쫓기듯 세례를 받았다. 인생 전체를 돌아보게 되는 임종의 순간에 마주한 진실은, 늙고 나약해진 두려움뿐이었을 것이다.
아버지는 정녕 아들을 질투해야만 했을까. 권력의 정점에서 스스로 지옥을 만든 늙은 황제의 그림자가 서늘하고도 길다. 책장을 덮으며 조용히 내 마음의 방향을 점검해 본다. 나는 지금 내 곁의 사람들을 '수평'으로 안아주고 있을까, 아니면 '수직'으로 잣대질하고 있을까.
북텔러의 서재에서 덮은 이 책의 마지막 장이, 평범한 일상 속에도 의미 있는 질문 하나로 피어나기를.
참고: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30년(AD 306~337)을 재위했다. 당시 로마에서는 황제가 전쟁의 선두에 나섰기에 전사하는 일이 잦아 재위 기간이 1~2년, 길어야 6~7년인 경우가 많았던 것에 비추어 보면 대단히 이례적으로 긴 권력을 누린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