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로소 살아 숨 쉰다.
깜깜한 밤, 내 봄날의 아지랑이는 쉬이 보이지 않았다.
고요해야 할 쉼의 시간이건만, 나에게 밤은 적막과 으스스함으로 스며든다. 서늘한 바람이 불어와 채 흩어지지 못한 상념들이 마른 잎처럼 바스락거리며 내면을 소용돌이친다. 억지로 가라앉혀 보려 해도, 짙은 어둠 속을 유영하는 마음은 도무지 쉴 곳을 찾지 못한다.
얼마 전 읽은 책의 기억으로 들어간다. 몹시도 가난한 ㅎ는 가슴속에서 꾸물꾸물 올라오는 욕망이 무엇인지 잘 몰랐다. 다만 현재의 시간을 습관으로 견디며 몰입한다. 자신의 현재만을 들여다보는 것으로 욕망한다. 그는 자신을 '나는 공부하는 노동자입니다.'라고 말한다.
Desidero ergo sum.
데지데로 에르고 숨
나는 욕망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스피노자는 위와 같이 주장한다.
"욕망이란 그 자체로 선하거나 악하지 않습니다. 모든 자연 만물이 따르는 동일한 자연법칙에서 생겨난 것에 불과합니다."
힘 또는 능력의 원천이 바로 '욕망'이라 한다. 나는 욕망을 잘 해석하지 못했던 것 같다. 부족을 느껴 무엇을 가지거나 누리고자 하는 '욕망'을 잘 해석한 ㅎ를 들여다본다.
몸이 약하고 내성적인 그는 천천히 꾸준하게 공부함으로써 약한 체력을 보완했다. 꾸준함이 약한 체력을 덮고 덮었다. 강한 체력의 끈기 없음보다 더 유리하게 만들었다. 친구 사귐이 어려워 그 시간을 온전히 공부에만 썼다.
그에 반해 나는 세상이 정해둔 '적당함'이라는 무채색 기성복에 내 몸을 억지로 욱여넣고, 튀지 않으니 다행이라 안도했던 날들이 슬펐다. 나에게 맞지 않는 뻣뻣한 규정의 옷을 입고 나는 얼마나 웅크려 있었던가. 중간의 삶을 살면 잘 사는 것이라고 하지만 왜 꼭 중간이어야만 할까. 일렬로 늘어선 가로등처럼 똑같은 밝기를 강요할 것이 아니라, 저마다의 온도와 주기로 반짝이는 밤하늘의 별자리처럼 각자의 고유한 빛을 내게 내버려 두면 어떨까. 여러 가지 생각이 일어난다.
ㅎ가 이탈리아 로마에서 유학하던 신부 시절의 일이다. 한 정원 입구를 지날 때마다 어느 걸인이 '너 일본인이니?'라고 물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상냥하게 대답했지만, 자꾸만 반복되는 물음에 화가 났다. 어느 날 라틴어로 '멍청이'라고 욕을 했더니 속이 후련해졌다고 한다. 시간이 흐른 후, 그 멍청이가 자신이었음을 깨달았다. 그 걸인은 동전 한 푼 얻고 싶어서 말을 걸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상대방의 가슴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잘 몰랐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거다. 그의 에피소드는 '신부는 그러면 안 되지!'라는 프레임에 갇혔던 나를 해방시켜 준다. 신부는 신이 아니다. 인간은 그럴 수 있다. 신부를 신의 테두리에 가둬서 내 마음대로 해석했다. 신부의 욕은 내 속도 후련하게 했다. 내가 남의 시선에 갇혀 지키고자 했던 그 무엇이 허상은 아니었을까. 편안함의 위로를 받는 이 기쁨이 짓눌린 무거움을 덜어낸다.
부모에게 분노와 원망이 있었다. ㅎ는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자신이 보낸 서신을 유품으로 받았다. '무언가에 홀린 듯 사춘기 아이처럼 분노와 원망을 내뱉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 뜨거운 불만의 에너지를 폭풍이 휘몰아치듯 어머니에게 퍼부었다. 어머니는 아들의 패악에 대하여 야단치시기보다 그대로 받아주고 기다려 주셨다.' 나에게도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어려운 선택을 하신 부모님을 생각하면 애잔한 마음과 아련함이 느껴진다.
'제가 못되게 굴었던 데에는 부모님이 헤아려 주셨던 것처럼 합당한 이유 같은 게 있었던 것 같지가 않습니다'라며 그것이 어머니의 '거대한 사랑'이었음을 깨달았다고 한다.
이탈리아에서 10년의 공부를 마치고 휴식차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그는 우연히 라틴어 수업을 하게 되었다. 모든 문제는 보는 것에서 시작된다.
"나에게 배운 것 말고 너의 생각은 무엇이니?"
너의 생각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여 중간고사 성적을 학생이 받고 싶은 점수로 준다. 단, 학생들과 기말고사 성적에 반영을 안 하기로 약속했다. A를 받아보지 못했다면 처음 A를 받아봄으로써 그 느낌으로 희망을 소망으로 이어지게 할 수 있다.
그는 동양인 최초로 바티칸 대법원 로타 로마나 변호사 자격을 취득했다. 석사, 박사도 최우등으로 졸업했다. 변호사 시험에서는 두 번 주어지는 기회 중에서 한 번 떨어져서 단 한 번의 마지노선만이 남아 있었다. 대입 수험생처럼 사전을 통째로 외웠다고 한다. 40명 중 마지막 시험까지 통과한 이는 3명뿐이었다. 매일 똑같은 수도승의 옷을 입는 것처럼 그는 공부의 옷을 습관으로 입었으리라.
아침의 태양이 발그레 타오른다. 붉은 해는 정열의 이성이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의식을 하루도 빠짐없이 행한다. 모든 문제의 해결은 보는 것에서 시작한다. 그는 자신의 마음속 아지랑이를 찬찬히 살펴보길 권한다. 주변에서 끊임없이 무슨 일이 일어난다. 문제가 생기는 것은 내가 살아 있음의 표시다. 하여, 고통이 없기를 바라지 않는다. 힘듦이 없다는 것, 그건 죽음이다.
나를 짓누르던 타인의 시선이라는 무거운 겉옷을 벗어둔다. 그리고 대지를 덥히는 아침의 온기에 기대어, 슬며시 가볍고 자유로운 봄날의 아지랑이 옷을 걸쳐 입는다. 비로소 살아 숨 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