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들의 침대 발치에서 나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시작하며]
이 글은 낸시 슬로님 애러니의 저서 『내 삶의 이야기를 쓰는 법』을 읽고 깊은 여운에 잠겨 작성한 에세이입니다. 상실의 아픔을 글쓰기로 통과해 낸 저자의 마음에 온전히 닿아보고자, 책 속에 등장하는 치열한 에피소드와 감정선들을 저자의 시점(1인칭 '나')에 몰입하여 재구성해 보았습니다.
슬픔이 내 몸을 절여놓을 때, 나는 펜을 쥐었다.
속으로 삭여낸 슬픔은 결코 증발하지 않고 내 심장, 간, 콩팥 깊은 곳까지 파고들어 온몸을 지독하게 절여놓았다. 숨조차 제대로 쉬어지지 않던 내게 내려진 의사의 처방은 단 하나였다.
“몸속에 깃든 그 손상들을 밖으로 끄집어내어 종이 위로 옮길 것.”
나는 그 가혹하고도 유일한 처방전을 들고 아들 댄의 침대 발치에 앉았다. 도대체 내가 무엇을 원하고 또 무엇을 그토록 두려워하는지 내 두 눈으로 똑똑히 마주하기 위해 나는 펜을 쥐었다.
내 아들 댄은 생후 9개월이라는 너무나도 이른 나이에 당뇨병 진단을 받았다. 이제 막 통통한 무릎으로 거실 매트 위를 부지런히 기어 다니며 눈을 맞추던 때였다. 그 작고 연약한 발뒤꿈치에 차가운 채혈 바늘이 꽂히던 날, 병실의 공기는 무겁게 가라앉았다. 의사들조차 그렇게 어린 환자는 처음 보았기에 쩔쩔맸고, 어떤 조언도 내 무너지는 억장을 위로해 주지 못했다. 돌아보면 아마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내가 아이의 맑은 눈망울보다 혈당 수치와 식단, 투약 시간을 먼저 확인하는 차가운 통제광이 되어버린 것은.
가혹하게도 병마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댄은 스물두 살에 다발성경화증이라는 또 다른 시련을 마주했고, 결국 서른여덟 살에 내 곁을 영영 떠났다. 우리 부부가 아들을 돌보았던 그 16년의 치열하고도 캄캄했던 시간 동안, 내 가슴을 짓누르는 이 막막함을 달래줄 책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었다.
모든 것을 내 방식대로 이끌어야 직성이 풀렸던 나는, 지극정성으로 아들을 돌보는 것만이 유일한 정답이라 믿었다. 어떻게든 규칙을 바꾸고 환경을 통제해서 아들의 삶을 '더 수월하게' 만들어 주려고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어느 날, 한 친구가 내게 던진 말은 내 견고했던 세계를 산산조각 냈다.
"애러니, 네 고통이 너무 커서 아들 댄이 자신의 고통을 느낄 여지가 없잖아."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듯했다. 내가 '지극정성'이라 믿었던 그 모든 보호가, 오히려 아들의 신체적 결함을 매 순간 강조하는 결과를 낳고 있었다. 댄을 불구로 만들고 있는 것은 그의 병이 아니라, 다름 아닌 모든 것을 통제하려는 '나'였다. 고통의 한복판에 있을 때에는 방향을 확 꺾어서 다른 어딘가로 가야 한다는 것을, 나는 그때 뼈저리게 깨달았다.
나는 무언가를 섣불리 판단하고 '좋은 것'과 '나쁜 것'으로 가르는 행위를 멈추기로 했다. 모든 것을 내가 원하는 대로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 보는 법을 연습하기 시작했다. 모든 것을 통제하려는 집착을 내려놓고 내게 주어진 것들과 살아가는 법을 배우기 시작하자, 놀랍게도 모든 것이 달라졌다. 끔찍함 속에서도 심오하고 아름다운 순간들이 피어났다. 불확실성은 더 이상 피해야 할 공포가 아니었다.
틱낫한 스님의 말처럼, ‘폭탄이 떨어질 때 그와 동시에 길이 열린다’는 것을 나는 내 삶으로 생생히 목격했다. 에크하르트 톨레의 말처럼 ‘온전히 받아들인 불확실성’은 내 삶에 더 강한 활력과 예리한 감각, 더 큰 창의성을 열어주었다.
나는 이 비극이 비극으로만 끝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 싶었다.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것은 당연하지만, 가슴이 무너져 내려서 죽는 사람은 없다는 것도 증명하고 싶었다. 내가 '아픈 아이의 엄마'라는 역할에 갇혀 있는 한, 댄에게도 '아픈 아이'라는 역할밖에 주어질 수 없었다. 누군가의 말처럼 이것은 내 영혼을 위한 '인생 대학교'의 학위 과정이었고, 나는 기꺼이 이 끔찍하고도 경이로운 오디세이에서 A학점을 받을 것이다.
가끔 우리 집 싱크대가 눈부시게 반짝일 때가 있다. 내가 온 힘을 다해 땀을 흘리며 청소를 한 것이다. 이유는 명백하다. 슬픔을 마주하기 두려워 글쓰기를 회피하고 있다는 증거다. 고통스러운 부분을 훌쩍 건너뛰고 곧바로 은혜로운 결말로 넘어갈 수는 없다. 내 이야기가 은혜로 바뀌려면 먼저 내 안의 깊은 슬픔을 온전히 마주하고 앓아내야만 한다.
16년의 캄캄한 밤 동안, 내가 그토록 찾아 헤맸던 위로의 책은 세상 어디에도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내 부서진 마음을 달래줄 그 단 한 권의 책은, 유난히 반짝이는 싱크대를 등지고 다시 책상 앞에 앉을 때 비로소 쓰여지고 있다는 사실을.
아들의 침대 발치에서 글을 써 내려가며 나는 펑펑 울었고, 소리 내어 웃었다. 그 기이하고도 아름다운 순간 속에서 굳게 닫혔던 마음들이 하나둘 열렸다. 산산조각 났던 내가, 천천히 다시 숨을 쉬기 시작했다.